[현장] 서이초 교사 '경건한 애도'는 순간…"윤석열 방류·탄핵하라" 궐기대회 방불
서이초 교사 추모하고 채 상병 사망사건 특검 요구
박광온 목소리 "탄핵""이재명" 외침에 묻히고
이재명과 바톤터치 서영교 "윤석열 방류하라"
서이초 사망 교사의 49재였던 4일, 윤석열 정권 폭정 저지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2차 촛불문화제는 숨진 서이초 교사를 애도하듯 경건한 분위기 속에 막을 올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단식을 하고 있는 텐트 근처에서 고성을 지르던 정치 유튜버들의 발길도 이날만큼은 끊긴 듯 했다.
"이재명을 구속하라"라고 외친 이는 한 명 정도 눈에 띄었지만 문화제 진행 자체에 큰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촛불과 함께 참가자들이 나눠가진 피켓 앞면에는 '해양투기 STOP'이, 뒤로는 '민주주의 바로 세우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참가자 사이에 '우리가 이재명이다' '윤석열 퇴진 윤석열 타도하자'라는 팻말은 눈에 띄었지만, 그래도 초반까지는 차분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도종환 민주당 의원이 애도사를 낭독하는 동안 참가자들은 잔잔한 대금 연주에 맞춰 색색의 LED 촛불을 조용히 흔들 뿐이었다. 이재명 대표도 단식 5일 차에 접어든 탓일까, 땅을 멍하니 보는 것을 반복하면서 기력이 조금은 소진된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은 이날 저녁 국회에서 촛불문화제를 개최하면서 서이초 사망 교사를 추도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이번 문화제 개최 배경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수해 구조 작업에 나섰다가 숨진 해병대원 사망 사건에 대한 대통령실 개입 의혹을 주장하면서 이를 향한 규탄이 곧바로 뒤를 이었다.
애도 순서가 끝나고 4성 장군 출신 김병주 의원이 "대통령실발 국기문란 사건을 규탄한다"라고 외치자, 현장에 참석한 이들은 모두 "규탄한다"를 복창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꽤나 질서정연한 분위기에서 문화제가 이어졌다.
김 의원은 "고(故) 채 상병의 황망한 죽음을 규명하기 위한 수사가 대통령 외압 논란으로 길을 잃었다"라며 "상황을 이렇게 만든 대통령실과 국방부를 규탄한다. 국정감사와 특검만이 이 문제의 답"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채 상병 사망 사건을 수사하다 집단항명 혐의로 입건되고 보직해임된 해병대 수사단장과 관련해선 "군 검찰은 엉터리 수사를 중단하라"라고 했다.
다만 김영호 서울시당위원장의 발언 순서가 되면서, 현장은 본격적인 정권 규탄대회로 바뀌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 하나하나에 현장에 참석한 이들이 술렁거렸다. 김 위원장이 "규탄으로 끝낼 게 아니라 이제 망설임 없이 윤석열 정부를 당장 심판하자"라고 하자, 계단 사이에서 갑자기 '굴욕외교 친일매국 윤석열 탄핵'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때를 기점으로 국회본청 앞은 탄핵을 외치는 소리에 잠식됐다.
김 위원장은 "제1야당 대표의 목숨을 건 투쟁이 시작됐는데 정부·여당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나. 웰빙, 출퇴근 단식이다(라고 한다)"라며 "전두환 정권때도 야당 총재가 단식을 하면 정무수석을 보내 위로하고 요구사항을 받아들여 타협하려고 노력했는데 이 정권은 야당 대표도 탄압, 민주당도 탄압하고 국민의 목소리도 외면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전두환 정권보다 더 무도한 독재정권이다"라는 발언을 이어갔다.
우렁찬 연설 소리에 사람들은 "탄핵"이란 단어를 연신 반복해 외치며 화답했다.
고조된 분위기는 뒤이어 마이크를 잡은 박광온 원내대표를 도리어 난처하게 만들었다. 취재진 뒷쪽 어딘가에서는 비이재명계 의원을 비하하는 은어인 "수박"이라는 단어도 들려왔다. 곳곳에서 "탄핵"이라는 외침이 계속해 울리면서 박 원내대표의 소리는 묻혔고, 박 원내대표가 이내 목소리를 더 높여 발언을 하는 듯 했으나 금세 또 다른 난관이 이어졌다.
현장에 모인 이들은 박광온 원내대표의 발언 도중에 이재명 대표의 이름을 연호하기도 했다. 박 원내대표는 몇초간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박 원내대표의 발언 중간중간 "말로만 하지 말라"(실제로 탄핵하라)라는 훈수 성격의 외침도 이어졌다. 이날 문화제는 당 소속원과 일반 시민이 참여대상이었으나, 이재명 대표 개인 지지자 비중이 월등한 것과 같이 느껴졌다.
이 대표 지지자 위주 참여에서 외연이 확장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지, 이날 본청 앞 계단은 사람으로 빼곡히 들어차지 않았다. 촛불문화제 시작 5분 전에도 "국회를 등지고 왼쪽 자리가 많으니 왼쪽으로 이동해 달라"라는 주문이 있을 정도였다. 이 대표의 단식 전에 이뤄졌던 국회 '촛불집회' 때처럼 계단 외의 곳에도 참석자들이 꽤 자리해 있다거나, 현장 내에서 이동하기가 불편하다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다.
곧이어 이 대표의 발언 순서가 되자 사람들은 이 대표의 이름을 연호했고, 이 대표는 언론을 등진 채 계단에 앉은 사람들을 마주 보고 마이크를 잡았다.
이 대표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경험해보지 못한, 전혀 예측하지 못한 거대한 장벽이 앞을 가리고 있다"라면서도 "한명 한명 따로따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치고 우리 안의 작은 차이를 넘어서서, 밖을 향해서 함께 힘을 쓴다면 반드시 이 거대한 장벽도 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참가한 이들은 끊임없이 이 대표의 이름을 외쳤고, 이 대표가 "내가 조금씩 힘이 빠져가는 만큼, 여러분이 힘을 내달라. 점점 말하기 어려워지는 만큼 여러분이 조금 더 말해달라"라고 하자 "안돼요"라는 절규가 돌아오기도 했다. "이재명 청와대 가자"라는 외침도 어디에선가 나왔다.
이 대표는 "나 대신 서영교 최고위원이 내가 할 말을 대신하겠다"고 했다. 곧바로 서영교 최고위원을 향한 함성이 쏟아졌다.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이들은 문화제 시작 전에도 서영교 최고위원의 이름을 연호한 바 있었다.
이 대표에게 마이크를 건네받은 서 최고위원은 이 대표가 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주먹을 불끈 쥔 채 이 대표의 이름을 외쳤다.
서 최고위원은 "이재명 대표가 힘이 빠지는 거 같은데, 가슴이 찢어지게 아픈데 우리가 모두 이재명이 돼서
윤석열과 싸워 주시겠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표가 단식을 시작하고 5일째 되는 날이다. 여러분 5일째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이재명' 하면 '힘내라'를 외쳐달라"라고 주문했다.
서 최고위원과 현장에 모인 사람들은 "이재명 힘내라" "이재명과 함께 싸우자" "민주당과 함께 싸우자" 등 구호를 외쳤다. 계단 중간에서 갑자기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깃발이 나타나 휘날리기도 했다. 계단에 앉아있는 이들 모두 약속한 듯 "탄핵"이란 단어를 또 외치기 시작했다.
서 최고위원이 "나는 윤석열을 규탄한다고 했는데 여러분은 윤석열에 대해 다른 용어를 쓰는 것 같다. 나는 규탄하라고, 심판하라고 외쳤다. 그러나 서울시민들의 뜻은 바로 여러분과 똑같다"라고 하자 "탄핵"이란 외침은 더욱더 커졌다. 서 최고위원은 앞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수 방류 저지 규탄집회에 참석했던 이들의 발언을 언급하면서 "윤석열을 방류하자"라는 외침도 유도했다.
또 서 최고위원은 "이재명 대표를 보고 싶으셨나. 우리 함께 마음 닫는 여러분, 보고 싶으셨는가"라면서 "우리는 이렇게 모였고 내일은 더 많이 모이자. 모레는 더 많이 모이자"라고 소리쳤다. 아울러 "그래서 대한민국을 이지경으로 만든 윤석열 정권에 확실하게 본때를 보여주자"라고도 힘줘 말했다.
문화제는 가수 문진오 씨의 '껍데기는 가라' 등을 들으면서 마무리됐다.
이번 촛불문화제는 이 대표의 단식 이후 두 번째로 이뤄졌다. 민주당은 이번주에만 3~5차의 촛불문화제를 추가로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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