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신청서에 담긴 학생·학부모의 지지 문구... 눈물 납니다 [이게 이슈]
[정혜영 기자]
▲ 지난 2일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집회'가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렸다. |
ⓒ 권우성 |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사랑해서 교사가 된 이들이 왜 스스로 생을 놓는 일이 자꾸만 일어나는 걸까요? 서이초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 뒤, 7월 22일 첫 교사 집회를 시작으로 30도가 넘는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토해내던 교사들의 외침과 절규가 7차 집회까지 이어지는 동안 교육 현장은 무엇이 바뀌었을까요?
주말마다 교사들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것은 '진상규명'과 '공교육 정상화'입니다.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2년 차 교사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히고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의 학습권과 교사의 교육권이 조화롭게 실현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제도를 마련해 달라는 것입니다.
바이올린을 켰고 그림을 잘 그렸다는 다재다능했던 선생님. 활발한 성격에 가르치는 일에 열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 살았던 선생님. 항상 따뜻한 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주변 이들을 대했다는 선생님. 열심히 살아온 날들보다 더 많은 날이 기다리고 있었을 24살의 꽃다운 청춘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선생님은 왜 힘든 아이들의 심신 안정을 위해 정성껏 마련한 장소에서 생을 놓을 수밖에 없었을까요.
▲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대강당에서 서울시 교육청 주최로 열린 서이초 교사의 ‘49재 추모제’에 동료 교사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아이들과 만나는 3월 첫날. 30여 명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처음으로 마주하며 교사들은 다짐합니다. 이 아이들과 올 한 해 잘살아 보자고. 나라는 프리즘을 통과한 아이들이 더 밝고 찬란한 빛을 발하도록 해 보자고 말입니다. 더러 말과 행동이 예쁘지 않은 아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아이들도 내 아이들입니다. 우리는 함께 가야 할 운명공동체인 것입니다.
아이들은 '학교'라는 공교육을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배워갑니다. 서로 결이 다른 말과 행동 양식을 가진 친구들과 어울리며 서로의 다른 모습에서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각양각색인 30명의 아이들 하나하나와 눈 맞추고 품어 안는 것이 교사입니다.
아이 하나가 소우주라면 30개의 소우주를 품는 담임교사는 은하계가 되어야 할 테지요. 그러나 은하계가 되어야 할 교사의 마음이 일부 학부모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소모되는 게 현실입니다.
혹시라도 아이들과 생활 지도를 하다 잘 해결되지 않았을 때, 학부모로부터 '교사의 자질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면 나는 어떠할 것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 일을 천직이라 여기고 20년 넘게 교직을 지켜왔지만, 그런 말을 듣는다면 저 역시 떠날 때가 되었구나, 싶어질 것 같습니다. 몇몇 악성 민원이 그동안의 제 교직 인생을 다 말해 주는 것이 아님을 알지만, 교사의 마음이란 그런 것입니다.
▲ 한 학생의 현장체험학습의 일부. 다른 체험학습 신청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
ⓒ 정혜영 |
다음 날 아이들은 비슷한 문구의 체험학습 신청서를 줄줄이 제출했고, 결국 15명 정도의 가정에서 자발적으로 '공교육 정상화의 날'을 지지하는 체험신청서를 제출해 주셨습니다. 두툼히 쌓인 신청서 앞에서 눈물을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누군가의 험한 말로 상처 입은 교사들은 상식적인 누군가의 말로 위로를 받습니다.
<하얼빈>의 저자 김훈 선생님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기득권자들의 선의에 호소하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이상 귀하디귀한 젊은이들이 생을 놓도록 손 놓고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아동복지법 남용으로 손과 발이 묶인 채 홀로 외롭게 견디는 선생님들에게 무능의 죄를 씌워서는 안 됩니다. 나이, 성별을 떠나 30만 교사들이 함께 피켓을 들고 조금이라도 목소리에 힘을 보태는 이유입니다.
교육 현장에서 매일 고군분투하는 선생님들에게가 아니라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교육 당국에 물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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