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국회 앞 모인 5만 교사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교권보호합의안 의결" 요구
초등교사 비롯, 다양한 주체 모여
"현재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제2, 제3의 서이초 선생님은 언제든 생긴다. 문제 해결 전까지 우리는 모두 서이초 교사다."
한 교사가 4일 국회의사당 앞에 마련된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 집회' 버스 위에 올라 외쳤다.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49일을 맞아 이날 오후 국회 앞은 검은 옷과 검은 마스크를 쓴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들은 지난 7월18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20대 교사 추모 집회에 참석했다.
평일 집회임에도 이날 국회 앞에는 주최측 추산 5만명이 모였다. 앞서 교육부가 이날 집회 참가를 자제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적지 않은 인파가 몰린 것이다. 참가자들은 국회를 향해 마련된 연단 앞에 차례로 앉아 '진상규명이 추모다', '교권보호합의안 의결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는 집회가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였다.
초등 교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교사, 유치원 교사 등 교육현장에서 다양한 문제를 겪은 교사들이 목소리를 보탰다. 한 공립 유치원 교사는 연단에 올라 "유아 학부모로부터 '그게 선생이냐, 양심이 있음 그만둬라'라는 말을 들었다"라며 "차라리 죽어버릴까 생각했다. 저 역시 극단적 상황에 몰렸던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고인에 대한 확실한 추모는 진상규명"이라며 "진실을 밝혀야 선생님을 편히 보낼 수 있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다른 초등교사는 "6년 전 학부모가 반에 난입해 아이들을 보내고 '미친X이 담임이라 애들이 이 모양이다'라며 욕설을 퍼부었다"라며 "교내 교권보호위원회는 쌍방 화해를 권고했다"고 발언했다. 이어 "재심을 청구했지만 도교육청은 학부모의 지속적인 민원제기를 교권 침해로 볼 수 없다며 각하 처분을 내렸다"며 "전 알고 있었다. 동료 교사도, 관리자도, 교육청도 누구도 우릴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라고 호소했다.
한 고등교사도 "학생 평가 관련 민원이 1년에 4차례나 됐다"라며 "자녀의 틀린 문항에 문제제기를 하거나 복수 정답 처리가 될 때까지 민원을 넣는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서이초) 선생님, 미안하다. 나만 참으면 되는 줄 알았다"라며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사망한 교사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건 이후 정부의 대응 자체를 문제삼았다. 검은 복면을 쓴 사회자도 이날 연단에 올라 전날 호소문을 발표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향해 "교권 보호 대화에 뒤늦게 나타나 학교 지켜달라는 호소문 읽는 순간 그 의도가 읽혀 낯부끄럽기 짝이 없었다"라며 이 부총리를 처벌해야 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집회에 참석한 교사들도 교육부가 내놓은 교권 보호 대책에 대해 비판을 표했다. 특히 '학생생활기록부 기재'가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경기도에 근무하는 초등 교사(38·여)는 "교육부가 파면, 해임하겠다고 하니 학교 관리자들도 자신의 안위가 걸려있어 쉽게 휴업 결정을 하지 못했다"며 개인 연차를 쓰고 집회에 참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사들은 학생들의 학생부 기재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라며 "학부모와 학생이 아동학대를 신고하는 경우 교사도 맞받아칠 수 있는 조치,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연대해 논의할 수 있는 방안을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에 근무하는 또 다른 초등 교사(44·여)도 "현재 아동복지법이 가정에서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을 살리지도 못하면서 교사들에게 맡기고 있다"라며 "그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금쪽이'라는 아이를 통제를 못하는데 교사들이 소극적으로 대하면 방임이라고 비판받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동 학대에 해당하는 조항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교사에 대해 엄격하게 직위해제 판결을 내리는 법 조항에 대해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연가를 내고 집회에 참석하는 교사를 징계하겠다는 교육부의 대응에는 대부분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서울의 한 유치원 교사(30·여)는 "오후 조퇴를 하고 집회에 참석했다"며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을 보고 학부모의 민원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라며 "교육부가 병가나 연가를 쓰면 징계를 주겠다고 했는데 정상적인 대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교사 이외에 지지와 연대의 의사를 표하기 위해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날 충남 천안에서 온 퇴직교사 황성현씨(68)는 "제가 학교에 있을 때도 학부모들의 요구사항이 하늘을 찌르고 욕설부터 하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힘든 교사들에게 힘을 보태주기 위해서 멀리서 왔다"라고 말했다.
49재인 이날 서울 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집회가 열렸다. 같은 날 오후 강원·경북·충청·전북·대전·광주·전남·대구·울산·경남·부산·제주 등 전국 13곳에서 크고 작은 규모의 집회가 개최됐다. 주최 측은 총 전국 각지에서 10만여명이 모였다고 밝혔다. 다만 4일 집회에 반대 의사를 표한 교사들도 많아 연차 또는 병가를 내고 개인적인 추모를 하는 교사들도 상당수였다.
한편 이날 오후 5시 기준 교육부가 추산한 임시휴업 실시 초등학교는 전국 38개교였다. 이는 전체 초등학교 6286개교 중 0.6%에 해당한다.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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