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제자가 날 죽이려…" 검은 옷 입고 거리 나선 교사들 울분

김홍범, 이찬규 2023. 9. 4.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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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지난 7월 사망한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 사망 49재일에 맞춰 진행된 교사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묵념을 하고 있다. 이찬규 기자


4일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한 교사들이 분필 대신 피켓을 집어 들고 교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주최 측 추산 4만 여명이 7월 사망한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 A씨(24)의 사망 49일 째에 맞춰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였다.

오후 4시 30분, 검은 옷을 입고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교사들은 A씨 등 동료교사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최근 나흘간 고양·군산·용인 등에서 교사 3명이 잇따라 목숨을 끊은 사실이 알려지며 “더 이상 교사를 죽이지 말라. 억울한 죽음들의 진상을 하루 빨리 규명하라”는 현장 목소리는 더 고조됐다. 단상에서는 “많은 선생님들이 경찰의 수사를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국정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터져나왔다.

교육부도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며 비판 대상이 됐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수많은 교사가 민원과 고소의 위협으로 무너져 갈 때 교육부는 어디에 있었느냐”며 “징계 위협으로 교사들의 입을 억지로 막으려 한 교육부는 각성하라. 교육부는 징계 협박을 당장 철회하고 본분에 맞게 교사들을 보호하라”고 주장했다.

국회를 향해서는 “법이 바뀌지 않으면 학교가 바뀌지 않고 학교가 바뀌지 않으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며 ▶아동학대 관련법 ▶유아교육법 ▶초중등교육법 ▶교원지위법을 개정하라고 요구했다.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교육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골자다.

이날 검은 옷을 맞춰 입고 추모에 나선 교사들은 ″사망한 교사들이 겪은 어려움은 모든 교사들에게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찬규 기자


현장에서 만난 교사들 역시 각자가 겪은 교육현실에 대한 개탄의 목소리를 냈다. 27년차 중학교 교사 김모(55)씨는 “지난 7월 제가 가르치던 중학교 1학년 아이가 온라인상에서 저를 살해할 사람을 모집하는 걸 보고 우울증을 얻어 병가 중”이라며 “정말 이래선 안 된다는 심정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에서 근무하는 6년 차 교사 박모(33)씨도 “지난해 문제 아이가 있어 주의를 줬다가 부모가 버럭 화를 내고 민원을 제기해 마음 고생을 했다”며 “선생님들 사이에선 괜히 피본다고 훈육하지 말라고 한다.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 연가를 쓰고 왔다”고 했다.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 이후, 교사들의 평일 첫 집단행동인 만큼 이날 집회는 시작 전부터 긴장감이 고조됐다. 집회 참여를 위해선 학교장이 집회 당일을 재량휴업일로 지정하거나 교사가 개별적으로 병가‧연가를 내는 ‘우회 파업’을 해야 하는데, 교육부는 집단 연가나 병가를 사용하는 교원이나 이를 승인하는 교장에게 최대 파면·해임 및 형사 고발까지 할 수 있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기준 임시휴업을 실시한 초등학교는 전체 6286개 학교 중 37곳이었다. 집회 참여 교사들이 모인 온라인 단체 대화방에선 “아직 연가 결재가 나지 않았는데 참석이 가능한가요?”라는 문의부터 “혹시 모르니 집회 현장에 갈 때는 휴대전화 위치 추적 기능을 끄고, 현금만 사용하자”는 등의 대화가 오갔다.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서이초 교사 추모 및 입법촉구 7차 교사 집회가 열리고 있다. 뉴스1


교사들이 거리로 나선 데 대해선 바람직하지 않다는 교사·학부모 목소리도 나왔다. 초등학생 학부모 오모씨는 “집회 취지 자체는 이해하지만, 그 볼모의 대상이 어린 학생들이 된다는 점에서 방학이 아닌 기간 교사들이 단체 행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 이모(29)씨도 “심정이 복잡하지만 학교로 출근했다. 교사는 학생의 곁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엄문영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일회성 평일 시위가 학생 교육권을 심각하게 침해하진 않는다. 우리 사회가 교권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면서도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일인 만큼 장기간 이어지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홍범·이찬규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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