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10% 준다더니, 500만보 걸어야" 낚시성 우대금리의 함정
직장인 고장석(32)씨는 월 100만원씩 부을 적금 상품을 알아보다가 가입을 포기하고 말았다. 최고 연 6~13%대 금리를 준다는 상품들에 관심을 가졌지만, 까다로운 우대금리 조건에 실망하면서다. 고씨는 "실제로는 연 2~3% 이자만 받게 되는 '무늬만' 고금리 상품이 많았고, 가입 금액도 월 30만원 등 제한을 뒀다"며 "차라리 돈을 파킹통장(수시입출금 통장)에 두고 입출금이라도 편하게 할까 고민"이라고 했다.
금융사들이 높은 '최고금리'를 앞세우는 예·적금 특판 상품들이 따져보면 '미끼'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까다로운 우대금리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최고금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입자가 과제를 수행하는 '미션형' 상품은 달성 가능성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평이 많다. 웰컴저축은행의 '웰뱅워킹적금'은 최대 연 10% 금리를 주지만, 1년에 500만보 넘게 걸어야 최대 우대금리인 연 8%포인트를 받을 수 있다. 365일 동안 매일 약 1만4000보를 걸어야 나오는 수치다.
우리은행의 '데일리 워킹 적금'은 최고 금리가 연 11%에 달한다. 하지만 연 10%포인트의 우대금리를 받으려면 입금일마다 ▶1만원 이하 입금 ▶1만보 이상 걷기 ▶우리WON뱅킹에서 인증 ▶마케팅 동의 조건을 지켜야 한다. 우대 조건을 어기면 기본금리인 연 1%만 적용된다. 상품의 계약 기간(6개월)과 가입금액(일 1만원 이하)에도 제한을 뒀다.
주변인을 가입시켜야 하는 상품도 있다. KB국민은행의 'KB 특별한 적금'은 친구 3명을 같은 적금에 가입시켜야 최고 연 2%포인트의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다. 부산은행의 '너만 솔로(Solo)' 적금은 최고 연 8.9% 금리를 제공하는데, 이 중 5%포인트는 가입 기간 중 결혼해야 받을 수 있다. 적금 가입자 간 결혼 시 0.5%포인트의 추가 우대금리가 있다.
광주은행의 '행운적금'은 최고금리가 연 13.5%에 달한다. 여기서 10%포인트가 우대금리이고, 이를 받으려면 행운번호 추첨에서 당첨돼야 한다. 전북은행의 JB카드 재테크 적금(정기적립식)은 카드 실적을 충족해야 우대금리 4%포인트를 받을 수 있다. 이 밖에도 다수 상품이 급여·연금 이체, 카드 실적, 청약 보유 등 우대 조건을 걸었다.
이런 상품은 금리를 과대 포장해 신규 고객을 유인하기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풀이된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인터넷은행과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금융상품이 다양해지는 등 고객 확보가 어려워졌다"며 "금융사에게는 전략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우대금리는 소비자의 후생을 해치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우대 조건을 신경 써야 하더라도 이자를 많이 주는 상품에 재가입하는 고객들도 상당하다"면서 "고금리 상품은 고객들에게 금융사와 상품을 알리고, 앱 이용 시간과 빈도 등을 늘리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에 금융 소비자들의 '니즈'를 파고들어 복잡한 조건 없이 최고금리를 지급하는 상품도 많아지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토스뱅크의 '토스뱅크 자유적금'은 12개월 이상 가입하고 매월 자동이체를 하면 최고 연 5% 금리가 적용된다. 케이뱅크의 '코드K자유적금'도 우대금리 조건 없이 가입 기간에 따라 연 3.3~4.4% 이자를 준다.
저축은행 업계에서도 우대금리 조건 없는 상품이 나왔다. OK저축은행은 별도의 우대 조건 없이 연 4.41%의 금리를 제공하는 'OK e-안심앱플러스정기예금6'을 내놨다. 상상인저축은행·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도 특별한 우대금리 조건 없이 연 4.2% 금리를 제공하는 상품인 '9개월 회전 정기 예금'을 출시했다.
금융당국은 최근 "예·적금 상품의 최고금리를 보고 가입했으나 우대금리를 적용받지 못하는 등 금융사의 사전 안내가 미흡하다는 민원이 지속해왔다"며 "소비자가 오인할 가능성이 큰 금융상품을 점검·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관해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4일 "구체적인 방안을 업계와 논의하고 있고, 9월이나 10월 중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지원 기자 seo.jiwo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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