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 담비의 '숨은서식처', 이곳을 없애려 한다니요

정수근 2023. 9. 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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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식물들의 '숨은서식처' 팔현습지를 지켜야 하는 이유... 환경부는 관련 사업 재검토해야

[정수근 기자]

 금호강 팔현습지에서 목격된 멸종위기종 담비.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지난 8월 초 금호강 팔현습지에서는 멸종위기종 담비가 발견됐다. 250만 대구시민이 사는 대구 도심에서, 그것도 바로 강 건너에 아파트단지가 즐비한 곳에서 목격된 멸종위기 야생동물 담비인지라 놀라움이 컸다. 중앙지 <내일신문>은 1면에 이 소식을 실었고, 지역의 여러 언론도 담비의 대구 도심 출현을 비중 있게 전했다. 

담비가 출몰하는 팔현습지 왕버들숲은 '숨은서식처'

보도가 이어지면서 담비도 담비이지만 그 담비가 출현한 곳이 주목받고 있다. 금호강 팔현습지 왕버들숲은 그 자체로도 참 아름다운 숲인데, 팔현습지에서도 가장 사람들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곳이다. 산지 절벽으로 이루어진 하식애 구간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제봉이라는 낮은 산과 강이 잇닿아 있는 곳이다. 요즘은 강 양안을 따라 도로가 건설되면서 산과 강이 철저하게 단절돼 있는 구조가 많은데, 이곳은 금호강에서 거의 유일하게 산과 강이 자연 그대로 연결돼 남아 있다.

그래서 각종 야생동물의 서식처이자 보금자리로 이용이 될 만한 지역이다. 이곳에서 이미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와 남생이가 목격됐다. 
  
 금호강 팔현습지의 터줏대감이자 깃대종인 수리부엉이. 팔현습지 왕버들숲에 자주 출몰한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그런데 수리부엉이와 남생이에 이어 최근 담비까지 출몰한 것이다. 그만큼 산지 벼랑인 하식애 앞에 자리잡은 팔현습지 왕버들숲은 특별하다고 평가받기에 충분한 곳이다. 이곳에 자리잡은 10여 그루의 왕버들 또한 수령이 100년은 훌쩍 뛰어넘을 정도의 고목들로 여러 다발로 자라나 더욱 특별하다.

지난 9월 1일 달성습지에서 만난 전 계명대 생물학과 교수이자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인 김종원 박사는 이곳에 대해 중요한 평을 내놨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팔현습지 무제부 구간과 달성습지 화원동산 하식애 같은 곳은 비무장지대처럼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다 보니 식물과 희귀 야생동물들이 은신처로 삼은 귀한 공간이라고 한다. 생태학적인 용어로 이런 곳은 '크립틱 사이트', 다른 말로 '숨은서식처(cryptic habitat)'라고 한단다. 
 
 산과 강이 잇닿아 있는 팔현습지의 전경. 야생동물들이 이곳에 깃들어 살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팔현습지 왕버들숲. 희귀 야생동식물들의 마지막 보루로, 숨은 서식처다.
ⓒ 정수근
     
이러한 '숨은서식처'는 각종 개발사업과 같은 여러 교란 요인을 피해서 야생동식물들이 마지막으로 피신할 수 있는 곳으로, 이러한 숨은서식처들이 사라지게 되면 그 종은 결국 멸종에 이를 수도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공룡이 멸종하는 중생대의 종말 세상에도 생명이 살아남아 오늘 같은 풍요로운 생물 다양성의 세상으로 이어진 것은 바로 '숨은서식처'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숨은서식처는 흔해 빠진 삶의 거처가 아니라 본래 아주 희귀한 서식처이다. 공룡시대에도 지금 같은 인류세에도 그렇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은 국토가 좁고 인구 밀도가 높지만, 생물다양성이 명맥을 잇고 있는 건 숨은서식처가 여태껏 개발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땅의 숨은서식처는 정말로 마지막 생명의 보루이다. 이러한 숨은서식처는 국립공원이나 천연기념물 이상의 수준으로 국가적 보호 대책을 즉각 수립해야 한다. 국회가 서둘러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숨은서식처가 곳곳에 존재해, 희귀 야생동식물들이 그곳을 최후의 보루로 삼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이 숨은서식처가 사라지면 그곳에 깃들어 살았던 희귀 야생동식물들은 멸종할 수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를 지키기 위해 국회가 서둘러서 관련 법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강변이다.
 
 달성습지 화원동산 하식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김종원 전 교수.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그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비무장지대는 사람이 의도로 만든 숨은서식처 같은 곳이지만, 자연이 빚은 숨은서식처는 그 의미와 차원이나 가치가 전혀 다르다. 인간이 이 세상에 출현해서 잘 살다가 이제는 그런 자연이 빚은 숨은서식처마저 파괴한다면, 인간은 존재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생태윤리다."

'숨은서식처'를 밀어버리고 새로운 길을 내겠다니 

그런데 이러한 중요한 가치가 있는 숨은서식처에 지금 환경부가 '삽질'을 예고하고 있다. 팔현습지 왕버들숲을 모두 베어내고 그 자리에 다릿발을 세워서 1.5㎞ 정도의 교량형 산책로를 조성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팔현습지 하식애 앞으로 인간이 드나드는 새로운 길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생태적으로 너무나 중요해 법제화해서 보전해야 한다고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숨은서식처에 새로운 길을 내겠다는 말이다. 이것이 이 나라 환경부의 수준이고 현 주소인가?
 
 숨은서식처 팔현습지 하식애 앞으로 길을 내겠다는 환경부.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지금이라도 금호강 고모지구 하천정비사업을 재고해야 한다. 저명한 생태학자이자 식물사회학자의 입을 통해서 이곳이 중요한 숨은서식처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면밀한 재검토가 이루어져 할 것 같다.

경관적으로도 너무 아름답고 생태적으로도 중요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면 환경부가 해야 할 일은 '삽질'이 아니라 보전 방안을 수립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환경부의 존재 이유일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마지막 남은 야생동식물들의 숨은서식처, 금호강 팔현습지를 꼭 지켜서 환경부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밝혀주면 좋겠다. 이 사회를 위해서도, 이곳에 깃들어 살고 있는 야생의 친구들을 위해서도. 
  
 금호강은 야생동물의 집이다. 팔현습지 망치는 보도교 공사 즉각 중단하라! 금호강 삽질을 중단하라!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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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수근 시민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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