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은 거대한 정신병동"…불면증∙마약∙도박, 의사가 파헤쳤다

홍지유 2023. 9. 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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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이 화려해 보이지만 이면엔 아픈 사람도 많아요. 어떤 환자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강남은 정신병동 같다'고. 그 말을 듣고 이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김정일 의학박사(정신과 전문의)가 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강남은 거대한 정신병동이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지유 기자

28년째 서울 강남에서 정신과 의원을 운영 중인 김정일 의학박사(정신과 전문의·65)가 수많은 환자를 진료하며 느낀 점을 기록한 에세이『강남은 거대한 정신병동이다』(지식공작소)의 출간을 앞두고, 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취재진을 만났다. 김 박사는 "95년도에 강남에서 정신과를 개업했는데 정말 많은 부자가 스스로 인생을 망치고 있었다"며 "대부분이 사람을 믿지 않고 돈만 좇다 보니 관계 맺음을 어려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박사가 강남에 주목한 것은 과도한 경쟁에 따른 열등감, 배금주의, 계급 의식, 비정상적인 교육열 등 한국 사회의 문제가 가장 극명히 드러나는 곳이 강남이라는 인식에서다.

강남은 거대한 정신병동이다 사진 지식공작소

김 박사는 "남을 배려하고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이 많다"며 "그래서 끊임없이 공허함과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데 강남에 그런 분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감을 배우기 전에 경쟁을 시작하는 교육 환경이 이런 현상을 만들어냈다며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의 이기심이 문제"라고 했다. 공감 교육을 위해서는 "부모의 동일시 모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부모가 모범을 보이면서 아이가 남을 배려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인색하고 이기적인 부모가 아이의 정신을 병들게 한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마약 사범 증가는 공동체 해체와 관련이 있다고 봤다. 그는 "소속감과 유대감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데 강남에서는 돈을 중심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며 "거기서 생기는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도박이나 마약에 빠지는 경우도 자주 봤다"고 했다. 또 다른 사회문제인 은둔형 외톨이에 대해서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중에는 밖에 나가면 누군가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는 망상을 가진 이들이 많다"며 "정말로 그렇게 믿기 때문에 과잉 방어, 즉 공격 성향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남형 정신병'은 부(富)에 뒤따르는 권태에서 시작된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돈이 많으면 열심히 살 필요가 없잖아요. 인간은 한가로운 상태를 고통스럽게 여깁니다. 에너지가 남아돌면 말썽을 일으켜요. 극단적인 경우에는 마약에 손을 대고 도박을 시작하는 거죠."

김 박사에 따르면 강남에서 가장 흔한 정신병은 불면증이다. "활동한 만큼 잠이 오는 건데, 에너지가 소진되지 않으니 불면증이 온다"는 것. 그는 "불면증 때문에 프로포폴·케타민 남용 문제가 생긴다. 불면증이 우울증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책에는 그간 김 원장이 진단하고 처방한 수많은 환자의 사연이 나온다. 의사 아들을 결혼시킨 후 자살을 결심한 어머니의 이야기 등 기구한 사연을 일부 각색하거나 환자들에게 허락을 받아 책에 담았다.

김정일 정신과 전문의. 사진 지식공작소


그는 "우리가 부러워하는 것의 대부분은 허상"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책을 썼다고 했다.

"독자들이 맹목적으로 돈을 추구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길 바랍니다. 돈보다 중요한 여러 가지 가치들을 되살리고, 인간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어렵겠지만 자꾸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특히 부모님들에게는 아이가 어릴 때 대인 관계 연습을 많이 시켜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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