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살 기억하자' 외친 구마모토 시민들... 그들이 일본의 반성 촉구한 이유
[심규상 대전충청 기자]
▲ '지난 1일 일본 남단 규슈지역 구마모토현 국제교류관 6층 강당에서 열린 관동대지진 100주년 기억 집회 현장에 걸린 대형 현수막. '9.1 관동대지진 100년-조선인 중국인 학살을 기억하는 집회'라는 큼지막한 행사명이 새겨져 있다. 이날 관동지역이 아닌 지역에서 마련된 100주년 기억 집회는 구마모토가 유일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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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기 위로 '9.1 관동대지진 100년-조선인 중국인 학살을 기억하는 집회'라는 큼지막한 행사명을 새겼다. 100년 전 9월 1일 일본의 관동(간토) 지역(도쿄, 가나가와 현, 사이타마 현, 지 바현 등)에서 일어난 조선인과 중국인 학살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모임이다. 이날 도쿄를 비롯해 관동지역에서도 크고 작은 학살 기억 집회가 열렸다. 하지만 이날 관동지역이 아닌 지역에서 마련된 100주년 기억 집회는 구마모토가 유일했다.
오후 1시 30분. 하나둘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전 내내 한산했던 국제교류회관이 순간 붐비기 시작했다. 행사 시간을 10분을 앞두고는 한꺼번에 몰려온 시민들로 접수대 앞에 긴 줄까지 생겼다.
▲ 1일 일본 구마모토시 국제교륙회관 6층 행사장 앞. 행사 시간을 10분을 앞두고 한꺼번에 몰려온 시민들로 접수대 앞에 긴 줄까지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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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는 묵념으로 시작됐다. 100년 학살된 조선인과 중국인 희생자를 위한 묵념이다. 죽은 이들의 안식을 비는 추도 묵념은 일 분 가까이 이어졌다.
타카이 히로유키(高井弘之, 68)씨가 연사로 무대에 올랐다. 그는 '조선인 중국인 학살은 왜 자행됐는가' 주제의 강연에서 "조선인을 보면 닥치는 대로 살해하는 제노사이드였다"며 "군대·경찰·자경단·일본 국민이 일체가 되어 학살을 자행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인들이 일본 정부가 퍼트린 거짓된 조선인 방화 폭동설을 사실로 믿었던 배경으로 "조선인에 대한 멸시·증오·공포와 함께 다른 나라의 문화를 거부하는 배외 의식"을 꼽았다.
그는 또 "근대 일본은 주변국에 대한 군사 침략과 점령, 수많은 사람을 살육하고 지배해 아시아의 제국주의 강국이 됐다"며 "동아시아 국가 중 이런 일을 한 곳은 일본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향후 일본의 역할에 대해 "동아시아에서 안정적인 평화 구축을 위해서만 움직여야 한다"며 "평화 파괴자·전쟁 추진자였던 지난 역사를 반성하고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구축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강연 말미에 참석자들에게 "평화와 공생의 동아시아 실현을 위한 방향으로 일본을, 일본 정부를 바꿔 나가자"고 호소했다.
두 시간 가까운 강연 동안 자리를 뜨는 사람은 없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서도 질의가 끊이지 않았다. 간토대학살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일본 정부를 변화시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놓고 질의와 토론이 30여 분 넘게 계속됐다.
▲ 지난 1일 오후 2시. 일본 남단 규슈지역 구마모토현 국제교류관 6층 강당에서 열린 '9.1 관동대지진 100년-조선인 중국인 학살을 기억하는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희생자들을 기리는 묵념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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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참석자들은 선언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선언에서 "식민주의는 오늘날에도 일본 사회에서 계속되고 있다"며 "관동대학살에 대해 아직도 공식 사과, 보상,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각지의 한국 학교와 교토부 우토로 지구 재일교포 관련 시설·주거 등에 연쇄 방화 사건,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지원 제외 등 차별적 동기에 기반한 범죄도 끊이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또 관동대학살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공생하는 사회를 목표로 활동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오늘 집회를 계기로 100년 전 발생한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중국인 그리고 일본인도 포함한 대학살(제노사이드)을 아프게 받아들이고 반성한다. 동시에 새로운 사실을 밝히고 기억하는 자세로 이러한 학살이 앞으로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만들 것을 다짐한다. 계속되는 식민주의 정책에 의한 역사적·구조적 민족 차별을 마주하며 역사 인식을 심화시켜 다민족·다문화 공생사회의 구축을 목표로 할 것을 선언한다."
일본 정부와 도쿄도지사에 대한 요구도 잊지 않았다.
"(조선인 학살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없다'는 등의 변명을 멈추고 학살의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 유족에게 사죄하고 학살의 전모와 진상을 조사해 원인을 밝힐 것을 요구한다. 고이케 도쿄도지사는 증오집단의 목소리에 현혹되지 말고 조선인 학살 추모비의 의의를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이날 행사는 실행위원회에서 주도했다. 구마모토지역에서 평화운동을 꾸준히 벌여온 교과서 네트워크 구마모토, 구마모토현 평화위원회 등 지역 시민사회에서는 지난 6월 실행위원회를 구성해 이날 집회를 준비해 왔다.
이날 행사 사회를 맡은 다나카 노부유키(田中信幸) 교과서네트워크 구마모토 사무국장은 "참가자들이 관동대학살을 성찰하고 기억을 다짐하는 성공적인 집회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구마모토 지역에서 이 같은 기억 집회가 가능한 이유는 구마모토 시민단체와 대전 충남지역 시민단체 간 오랫동안 교류하며 한일 역사 인식을 함께하고 공동 실천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 준비된 객석 대부분이 꽉 찼다. 주최 측은 기자에게 접수대에 서명한 참가자가 143명이라고 밝혔다. 연령층도 다양했다. 대학생 7명도 자리를 함께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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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소샤와 이쿠호샤 판 역사 왜곡 교과서 채택을 막기 위해 '저인망식 불채택 운동'을 벌인 것은 한국에서도 모범 사례로 남아 있다. 구마모토 지역 시(市), 정(町), 촌(村)(한국의 시군구)을 충남지역 시민단체 대표단과 함께 돌며 역사 왜곡 교과서를 채택하지 말아 달라고 직접 호소했다. 이를 통해 무더기 채택이 유력시되던 구마모토현에서 역사 왜곡 교사서 채택률은 0%를 줄곧 이어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류 단체 또한 환경·교사·청소년·역사 단체 등으로 확대됐다. 한일 공동역사 수업 및 토론회, 일본 유사입법폐기 등 활동을 지속해서 전개해 오고 있다. 구마모토 시민들은 코로나19 이전에는 매년 한국독립기념관을 방문해 일제 침략사 등을 배웠다. 양 지역 시민단체는 그동안 100여 차례에 걸쳐 총인원 약 2000여 명의 인원이 양국 지역을 오가며 각종 교류 활동을 벌였다. 이를 통해 일본의 부끄러운 과거사를 배우고 참회하기 위해 나서는 구마모토 시민들도 한 명 두 명 늘어났다.
▲ 구마모토 일일신문(熊本日日新聞)은 1일, 관동대지진 100을 맞아 조선인 학살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사설을 싣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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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문은 1일에는 관동대지진 100년을 맞아 조선인 학살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는 사설을 싣기도 했다. 이 신문은 조간, 석간으로 매일 40만 여부를 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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