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초 꼴찌팀 출신 MVP가 탄생할 가능성은?

이준목 2023. 9. 4.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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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P 유력 후보 노시환, 최하위 한화 팀성적과 국가대표 차출 등 변수

[이준목 기자]

▲ 홈런 선두 노시환, 시즌 23호 홈런 세리머니 8월 6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한화 노시환이 4회초에 동점 솔로홈런을 때리고 홈인하며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5년 차 거포 노시환은 올시즌 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9월 4일 현재 홈런(30개)-타점(90개)-장타율(.563)-OPS(.950) 4개 부문에서 당당히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지난 2일 LG전에서는 아홉수를 깨고 8경기 만에 홈런포를 터뜨리며 데뷔 첫 30홈런 고지에 등극했다.

지금 당장 올시즌을 마감한다고 해도 노시환은 정규시즌 MVP를 노리기에 충분한 성적이다. 프로야구 역사상 한 시즌 홈런과 타점왕을 동시에 수상한 선수가 MVP까지 차지한 사례는 무려 17회에 이른다. 그만큼 '타격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홈런-타점 타이틀의 상징적인 비중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화 선수가 MVP가 된 것은 2006년 류현진(토론토)이 마지막으로 무려 16년 전이다. 당시 류현진은 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 타이틀을 휩쓸며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역대 한화 출신 MVP는 장종훈(1991~1992년), 구대성(1996년), 류현진까지 총 3명 뿐이고 타자에만 국한하면 노시환이 무려 31년 만의 도전이다. 또한 한화 출신 홈런왕도 2008년 김태균 이후 15년 만에 타이틀을 노리고 있다. 오랜 시간 이어져온 리빌딩에 지친 한화 팬들이 그나마 노시환을 보며 위안과 자부심을 얻는 이유다.

MVP 노리는 노시환, 개인 성적은 좋은데...

하지만 이처럼 탁월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노시환은 아직 MVP를 선뜻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노시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경기 외적인 주변의 상황이 받쳐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시환의 MVP 등극에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팀성적이다. 한화는 4일 현재 44승 6무 61패(승률 .419)로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한때 5강권과 격차가 크지 않은 8위까지 올라서며 오랜만의 탈꼴찌와 가을야구에 대한 희망을 키우기도 했지만 8월 후반부터 무려 8연패의 수렁에 빠지며 도로아미타불이 됐다.

그나마 주말 2연승을 달리며 분위기를 다소 회복하기는 했지만, 이미 5강권과의 격차는 11.5게임이나 벌어지며 사실상 올해도 가을야구는 물건너갔다. 남은 시즌동안 키움-삼성과 탈꼴찌 경쟁에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다. 한화가 올해도 최하위를 기록한다면 2020년부터 4년 연속이자, 롯데 자이언츠(9회)를 제치고 프로야구 역대 최다꼴찌-첫 두 자릿수 꼴찌(10회)라는 불명예 진기록의 주인공이 된다.

최근 들어 개개인의 가치를 더 중시하는 분위기를 감안해도 단체스포츠에서 팀성적 프리미엄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역대 프로야구에서 최소한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한 팀에서 MVP가 배출된 경우는 2005년의 손민한(롯데)과 2012년의 박병호(당시 히어로즈) 단 2명 뿐이다. 가장 낮은 순위팀에서 MVP가 배출된 경우는 박병호로 당시 8개 구단 체제에서 6위였으며, 10개 구단 체제가 들어선 이후로는 모두 5강권 이상의 팀에서 MVP가 나왔다.

현재 순위를 기준으로 할 때 노시환은 사상 첫 '꼴찌팀 출신 MVP'의 탄생이라는 진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또한 현재 승차를 고려할 때 한화가 남은 경기에서 7위 이상 반등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노시환이 수상할 경우 꼭 꼴찌가 아니더라도 역대 가장 낮은 순위팀에서 MVP를 배출하는 신기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노시환 이전에 한화 출신으로 MVP 후보까지 올랐던 마지막 선수는 김태균이었다. 2012년에는 타율과 출루율 1위를 차지했고, 2016년에도 출루율 1위와 타율 개인 커리어하이(.365)를 경신했지만, 각각 박병호와 더스틴 니퍼트에 밀려 MVP 투표에서 5위와 3위에 그쳤다. 당시 한화의 팀순위도 각각 10위와 7위에 그치며 김태균의 활약상이 저평가된 측면도 있었다.
 
▲ 노시환, 2타점 추가 3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KBO리그 한화 이글스 대 LG 트윈스 경기. 2회 초 2사 1,2루 때 한화 노시환이 2타점 2루타를 치고 있다.
ⓒ 연합뉴스
 
에릭 페디(NC)라는 강력한 경쟁자의 존재도 노시환에게는 부담이다. 페디는 현재 다승(16승) 부문 1위, 평균자책점(2.39)과 탈삼진(149개) 각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팀성적도 가을야구 진출권인 5위로 노시환보다 유리하다. 탈삼진과 평균자책부문에서 유력한 경쟁자 중 하나였던 안우진(키움)이 최근 부상으로 시즌아웃되어 페디가 역전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최대 트리플크라운(3관왕)까지도 가능한 상황이 됐다.

프로야구 역사상 홈런과 타점왕을 동시에 차지하고도 MVP를 수상하는 데 실패한 사례도 무려 10번이나 된다. 대표적으로 박병호는 2014년과 2015년 2년 연속으로 50홈런+120타점을 넘겼지만, 각각 서건창(200안타+타격 3관왕)과 에릭 테임즈(40홈런-40도루, 타격 4관왕)에 밀렸다. 다만 올시즌 노시환의 가장 유력한 경쟁자인 페디의 경우, 최근의 부진으로 '20승 도전과 1점대 평균자책'이 사실상 어려워진 만큼 임팩트 면에서는 노시환이 크게 밀릴 게 없다.

다만 노시환은 아직 홈런과 타점 부문 개인 타이틀도 확정된 것이 아니다. 노시환이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차출되면서 22일부터 소집에 응해야 한다. 10월 1일부터 아시안게임 야구경기가 시작돼 10월 7일에 결승전을 치르는데 귀국과 휴식일까지 감안하면 아무리 빨라도 다음달 10일부터야 다시 소속팀 경기에 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만일 체력문제나 부상이라도 당하면 복귀는 더 늦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노시환은 약 15경기 이상 손해를 볼 수 있고 운이 없으면 사실상 시즌 아웃도 가능하다.

현재 홈런과 장타율 부문 2위는 SSG 최정(25개, .549)으로 노시환과의 격차는 5개, .014다. 타점 부문은 LG 오스틴(81개)으로 9개 차이다. 아직은 여유가 있지만 노시환이 아시안게임 차출 전까지 격차를 더 벌리지 못 한다면 안심할 수 없다. 장타율을 제외한 홈런과 타점은 누적 기록이기에 경기에 더 많이 나가서 꾸준히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정과 오스틴에게 좀 더 유리하다.

결국 노시환이 MVP 1순위의 조건를 충족하려면 아시안게임 차출 전까지 2위권과의 격차를 최대한 벌리고, 페디의 부진-한화의 탈꼴찌같은 주변의 도움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최대 40홈런 이상이나 3할-30홈런-100타점같은 임팩트있는 기록을 달성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올시즌도 가을야구 진출이 멀어진 한화 팬들에게 정말 오랜만에 등장한 한화 출신 MVP 후보로서 노시환의 도전은 끝까지 시즌을 포기하지 않고 응원하게 만드는 마지막 희망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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