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이 안전하지 않다, 일본이 그린 '히키코모리'
[김민준 기자]
최근 연이어 발생한 무차별 칼부림 사건들과 이러한 범행들을 예고하는 행태 때문에 한국 사회가 공포에 떨고 있다. 나의 일상이 절대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준 사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일어난 사건들의 피의자에겐 공통된 점이 있는데, 스스로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다고 느꼈고 삶에 의미가 없어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이웃 나라 일본은 이러한 외로움으로 인해 고립감을 느끼는 일이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적인 문제로 여겨져 왔다. 은둔형 외톨이를 뜻하는 '히키코모리'라는 단어가 잘 보여주듯, 경기침체가 본격화된 1990년대부터 청년층을 중심으로 집 바깥으로 나오지 않은 채 안으로만 침잠하는 경우가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우리보다 먼저 이 문제를 접한 일본의 풍경을 그려낸 영화가 있다. 2008년 작품 <도쿄!>는 미셸 공드리, 봉준호, 레오 카락스 세 감독이 모여 만든 작품으로, 모두 도쿄를 배경으로 외로움과 고립감을 각자만의 스타일로 풀어낸 옴니버스 영화다.
▲ 옴니버스 영화 <도쿄!> 스틸 이미지. |
ⓒ 싸이더스 |
첫 파트는 미셸 공드리의 <아키라와 히로코(Interior Design)>이다. 주인공인 히로코는 영화작가를 꿈꾸는 애인인 아키라와 함께 홋카이도에서 도쿄로 상경한 인물. 아키라 역시 완성형이 아니건만, 히로코에서 "꿈도 포부도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해서 상처를 주게 된다. 히로코가 그림과 사진을 좋아하고 항해사 자격증이 있다고 반격을 해보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그건 취미지 꿈이나 포부는 아니다"라는 말뿐. 그렇게 남을 깎아내리면서도 온통 영화 생각밖에 없다. 그런 아키라 때문에 히로코는 외로움을 느낀다.
레오 카락스가 연출한 두 번째 파트인 <광인(Merde)>은 하수도에서 살다가 튀어나와 도쿄 시내를 휘젓고 다니는 괴상한 남자 '하수도의 광인' 메르드(Merde, 프랑스어로 '오물'을 뜻한다, 드니 라방 분)을 다룬다. 사람들을 밀치고, 목발이나 화분을 빼앗는 등 기이한 행동을 하고 다니다가, 어느 날엔 도쿄 한복판에 폭탄 테러를 저지르는 바람에 체포된다. 그는 누구인가? 소문과 의혹만 무성할 뿐이다. 알카에다의 조직원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는 주장, 17년 전 잃어버린 내 아들이라는 주장, 옴진리교 시설에서 봤다는 주장 등등... 그러나 일본 시민들에게는 그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도쿄 시내를 폭파시킨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세 번째 파트 <흔들리는 도쿄(Shaking Tokyo)>는 10년 동안 혼자 집에서만 머무른 히키코모리 남성(카가와 테루유키 분)을 소재로 봉준호 감독이 연출했다. 주인공은 집 밖으로 나오진 않지만 "예술의 경지에 올라"설만큼 집을 깔끔하게 치우고 산다. 토요일마다 피자를 시켜 먹는 남자는 어느 날 배달원(아오이 유우 분)을 사랑하게 되는데, 그녀를 찾기 위해 어렵사리 집 밖으로 나온 남자는 온 도쿄 사람들이 히키코모리 상태에 빠졌다는 걸 알게 된다. 아무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아 길거리는 텅 비었다. 그러다가 지진이 난다.
세 파트의 인물들은 어떻게 됐을까? 그들의 외로움과 고립감이 방치된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히로코는 몸이 나무로 변하다가 결국에는 의자가 되어버리고, '하수도의 광인'은 법정에서 인간이 싫고 역겨워서 죽였다고 증언하는 등의 말로 비난을 받다가 결국에는 사형을 선고받고, 남자는 지진이 나고 나서야 집 밖으로 사람들이 나오지만, 지진이 멈추자 바로 집으로 들어가 버리는 광경을 목격한다.
▲ 옴니버스 영화 <도쿄!> 스틸 이미지. |
ⓒ 싸이더스 |
외로움과 고립감은 개인적 관계를 통해서도 심화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한 사회의 태도에 의해서도 그 정도가 결정되기도 한다는 것이 <도쿄!>가 각양각색의 옴니버스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바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개인의 삶을 대하는 사회의 분위기는 결국 사적인 관계에도 영향을 주는 법이다. 그렇게 세 편의 단편들은 이어진다. 특히 <아키라와 히로코>에서 아키라는 "자기가 만든 것으로 세상에 대해 자기 존재를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히로코를 다그친다. 자기 존재를 정의하는 게 뭔데? 그게 애인을 다그칠 만큼 그리 중요한 건가? 자기 존재를 세상에 뽐낼 수 있는 삶이 아니라면 하찮은 건가.
그러나 심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이 보통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그런 고립감과 외로움에 대한 주변과 사회의 편견 때문 아니던가. 대단한 삶이 아니면, 존재를 설명할 수 없으면, 이해받기 어렵고 점차 고립된다. 그렇게 히로코는 의자가 되고 나서야 쓸모를 인정받고, 알 수 없는 존재인 메르드는 교수형 집행 도중에 홀연히 사라진다(영화는 '메르드의 뉴욕 모험'이라는 자막을 통해 또 다른 곳에서도 등장할 것을 암시한다. 이후 드니 라방은 같은 감독인 레오 카락스의 후속작 <홀리 모터스>(2012)에서도 메르드 역할을 수행한다).
결국 <도쿄!>는 이전에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들이 어떻게 일본을 집어삼키는 중차대한 사회적 문제가 되어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문제가 곧 사회적인 문제로 커지게 되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특히 <흔들리는 도쿄>는 지진이라는 자연재해조차 막지 못하는 외로움이라는 '사회적 재해'를 보여준다. 오히려 히키코모리를 집 바깥으로 제대로 나가게끔 한 것은 사회적 관계, 그러니까 누군가를 향한 관심과 사랑이었다는 점이 주목할 지점이다.
연출적인 면에서 각자 성격이 다른 거장 감독 세 명이 만났다는 것도 신기한데 셋이서 도쿄라는 대도시를 통해 일본이 직면한 문제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점도 매우 신선하다. 외로움과 고립감을 다른 형상이 되어버리는 과정이나 도시를 뒤덮는 재난과 테러리즘의 형태로 나타낸 상상력에 감탄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15년 후의 한국은 정말로 <도쿄!>가 그려내고 있는 모습과 닮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스산한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은 점차 의자가 되어가거나, 이해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의혹투성이로 입에 오르내리다가 결국 괴물이 되어간다.
진짜 재난은 땅이 흔들리는 게 아니라 땅이 흔들려도 안으로 침잠하는 걸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일이다. <도쿄!>는 지금의 우리가 정말 괜찮은 게 맞는지, 여러 비극 앞에서 모두의 안부를 묻고 싶어지게 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흰 국화 손에 든 검은 옷의 행렬... 학부모들, 자녀 손잡고 와 헌화
- 해병대 전 수사단장 측 "직무복귀해 보강수사, 역적몰이 횡행"
- "1969년생인 저, 열심히 살았습니다... 제발 써주세요"
- 아내 몰래 15년간 이웃 여자의 누드를 그린 남자
- "역사전쟁 시작... 정치 잘못해 이런 험한 꼴 당하고 있다"
- 의원·장관 5명 나온 고택, 하룻밤에 5만 원입니다
- 원전사고 때 난 일본에 있었다... 2011년과 2023년의 공통점
- "선생님들 막지 마세요" 두 아이 엄마 호소에 2만 명이 응답했다
- 역사전문가 심용환 "안중근 의사도 곧 빨갱이입니까?"
- "전부 허위"라는 장관에 던져진 질문, "박 대령이 얻을 게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