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사상 첫 '무슬림' 국방장관 등판…"중요한 협상가"(종합)

정현진 2023. 9. 4.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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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3일 레즈니코우 장관 경질 발표
국방부 납품 비리 의혹에…부패 척결 일환
후임에 '크림 타타르인·무슬림' 우메로우 지명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올렉시 레즈니코우(57) 국방부 장관을 전격 경질했다고 3일(현지시간) CNN방송 등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가 '부패와의 전쟁'에 나서며 이뤄진 결정으로,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면전을 시작한 우크라이나가 1년6개월여 만에 국방 체제 개편에 나서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후임 국방장관으로는 야당 정치인으로 대(對) 러시아 저항 운동에 앞장섰던 소수 민족 크림 타타르인 출신의 무슬림인 루스템 우메로우(41) 국유자산기금 대표를 지명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무슬림이자 크림 타타르인이 장관직에 오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부패 척결 중인 우크라…"새로운 접근법 필요"

보도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화상 연설에서 "국방부 장관을 교체하기로 결정했다"며 "레즈니코우는 550일 이상 전면전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방부가 새로운 접근법과 군대 및 사회 전체와 다른 형태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올렉시 레즈니코우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 [이미지출처=AFP연합뉴스]

이번 결정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부패 단속을 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연합(EU) 가입을 목표로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한 상태다. 동시에 우크라이나 국민들도 종전이 가시화하지 않는 상황에서 부패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레즈니코우 장관은 최근 부패 문제에 휘말려 사퇴 압박에 시달렸다. 그는 2021년 11월 국방부 장관직에 오른 이후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서방 국가들을 숱하게 방문하며 수십억달러 규모의 군사 지원을 끌어온 인물이다. 영어에 능통해 서방 국가의 국방장관 등과 수월하게 소통을 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올해 1월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식량을 부풀려진 가격에 구매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장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고, 레즈니코우 장관을 향한 사퇴 압박은 거세졌다.

여론이 악화되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최근 전시 부패를 국가반역죄로 다스리는 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외로 재산을 빼돌린 혐의로 재벌 기업인 이호르 콜로모이스키를 체포하기도 했다. 국방장관 경질은 이러한 부패 척결 드라이브의 일환으로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레즈니코우 장관은 최근 수주간 차기 주 영국 대사로 외교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관측도 흘러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정부나 본인은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유대계' 젤렌스키, 흑해 곡물 협상 주도 '무슬림' 야당 정치인 선택

신임 국방장관으로는 야당 정치인이자 크림반도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저항운동을 하는 소수 민족인 크림 타타르인 출신인 우메로우 국유자산기금 대표가 지명됐다. 국방장관 지명자는 의회의 인준을 받아야 정식 임명된다.

루스템 우메로우 우크라이나 신임 국방장관 지명자(사진 오른쪽) [이미지출처=게티이미지연합뉴스]

우메로우 지명자는 우크라이나의 야당인 홀로스(목소리)당 소속 의회 의원이다. 그는 전쟁포로·정치범 맞교환 협상과 점령지 민간인 대피 등에 관여했으며, 러시아와의 흑해 곡물 협상을 논의하는 대표단에도 참가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야당 의원이어도 전임 투자은행가로서 전후에 젤렌스키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며 그를 '주요 협상가'라고 표현했다.

외신에서는 유대계인 젤렌스키 대통령이 무슬림 크림 타타르인 출신의 우메로우를 전시에 가장 중요한 직책 중 하나인 국방장관에 지명한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크림 타타르인은 크림반도의 원주민 격인 우크라이나 소수민족으로 대부분 수니파 무슬림이다. 13세기 전후로 크림반도에 정착한 튀르크계 민족으로, 15∼18세기 우크라이나 남부와 크림반도 일대를 지배한 크림칸국의 후예다. 현재는 크림반도 주민 200만명 가운데 약 12∼15%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크림 타타르인의 자치·독립을 주장하며 1991년 설립된 단체 '메즐리스'는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국제 사회는 러시아를 테러국가로, 그 정치·군사 지도자는 국제 범죄자로 인정하라"며 비난 성명을 내기도 했다.

1982년생으로 크림 타타르인 출신인 우메로우 지명자는 가족들과 옛 소련 시절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했다가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크림 타타르인의 귀환이 허용된 뒤 크림반도로 돌아왔다. 고교 시절에 미국에서 1년간 지냈고 우크라이나 국립경영아카데미에서 경제학과 금융 전공으로 학·석사 학위를 땄으며 국립공과대에서 컴퓨터 과학과 정보기술을 공부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메로우를 국방장관으로 지명하면서 "그는 추가 설명이 필요 없는 인물"이라며 의회의 인준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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