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중국 포위' 마지막 퍼즐…총 겨눴던 베트남 바짝 밀착

김형구 2023. 9. 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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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지난해 11월 12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서 팜 민 찐 베트남 총리(왼쪽),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와 함께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오는 1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에서 양국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Comprehensive Strategic Partnership) 관계로 격상하는 성명을 발표할 것이라고 미 워싱턴포스트(WP)가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한때 적국이었던 양국이 경제ㆍ문화 협력은 물론 앞으로 국방ㆍ안보 협력도 확대하겠다는 의미다. 지난달 18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ㆍ미ㆍ일 3국 안보 협력 틀을 다진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 핵심부인 동남아시아 공략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동시에 대(對)중국 견제 포위망을 더욱 겹겹이 쌓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7~10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하루 일정으로 베트남을 찾는다. 바이든 대통령은 3일 “인도와 베트남 방문이 기대되느냐”는 취재진 물음에 “그렇다. 기대된다”고 했다. WP는 "바이든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방문 때 나올 것으로 보이는 양국 관계 격상 발표는 대(對)아시아 관계를 심화시키기 위한 바이든 행정부의 조치 중 하나”라고 전했다.

조약으로 맺은 동맹국이 없는 베트남은 다른 나라와 ▶포괄적 동반자 관계 ▶전략적 동반자 관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등 세 가지 형태로 양자 관계를 맺어 왔다. 미국과 베트남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13년 7월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했다. 베트남은 양자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통상 수년이 걸린다고 한다. 양국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으면 두 번째 단계를 건너뛰고 10년 만에 최고 수준의 동반자 관계를 맺게 되는 셈이다.


“10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구축 발표”


베트남이 지금까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한 나라는 한국ㆍ중국ㆍ러시아ㆍ인도 등 네 국가뿐이다. 미국과 베트남의 초고속 밀착에 대해 WP는 “최근 몇 달 동안 바이든 행정부가 제안해 온 이번 협정은 중국의 경제적ㆍ군사적 강압에 맞서는 보루 역할을 할 인도태평양에서 미국이 구축하려는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역시 “미국과 베트남의 제휴 강화는 중국을 견제하는 또 하나의 외교적 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은 이번 베트남 방문을 계기로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공략의 거점을 마련한다는 의미도 갖는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아시아 소사이어티’가 지난달 1일 발행한 ‘미국의 대중 정책에서 동남아를 우선으로 삼아야’란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아세안은 2020년 전 세계에서 중국의 제1 교역국이 됐고, 지난해 기준 중국과 아세안의 교역 규모는 연간 9750억 달러로 곧 1조 달러 시대를 연다.

보고서는 “동남아에서 중국의 발자취는 폭넓고 깊고 다면적이며, 미국의 그것보다 훨씬 더 잘 알려져 있다”고 진단했다. 동남아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기 위한 미국의 선택이 과거 전쟁 상대국이었던 베트남이 된 셈이다.


경제 교류 이어 안보 협력 확대될 듯


탈(脫)중국 공급망 안정을 추구하는 미국과 첨단기술 개발을 희망하는 베트남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만큼 양국은 관계 격상을 계기로 경제 교류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국방 및 안보 협력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항공모함의 베트남 입항, 합동군사훈련, 무기 판매 등이 늘어날 것이라고 미 당국자들은 전했다. 베트남은 전통적 우방국인 러시아가 최대 무기 공급국이었지만 최근 공공연히 수입선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반중 정서가 강한 곳이다. 남중국해를 사이에 두고 중국과 영유권 갈등을 빚어 왔고 중국 해안경비대ㆍ해양민병대와 국지적 분쟁을 겪고 있다. 지난달 초 할리우드 영화 ‘바비’에 중국이 자국 영해라며 그은 ‘구단선’이 등장하는 장면을 문제삼아 극장 상영을 금지하기도 했다.


베트남 찍고 대중 포위망 퍼즐 완성


미국은 중국이 강한 영향력을 가진 동남아에서 가장 약한 고리 중 하나인 베트남을 파고들어 대중국 견제의 틀을 더욱 촘촘히 짠다는 전략이다. 오커스(AUKUS, 미국ㆍ영국ㆍ호주 3국 외교안보 협의체), 쿼드(Quad, 미국ㆍ일본ㆍ인도ㆍ호주 4개국 안보 협의체)에 이어 최근 한ㆍ미ㆍ일 3각 안보 협력 체제를 구축한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 심장부인 베트남을 통해 대중국 포위망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셈이다.

중국도 베트남을 더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 왔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3연임에 성공한 직후인 지난해 10월 베트남 권력서열 1위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총서기장을 초청해 베이징에서 만나기도 했다. ‘시진핑 황제 대관식’ 후 첫 외국 정상급 인사의 중국 방문이었다. 그러자 미국은 한 달 뒤인 11월 베트남을 환율관찰대상국에서 해제했고, 이후 올해 4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7월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잇따라 하노이를 방문하는 등 양국 우호 시그널을 꾸준히 발신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지난 4월 15일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베트남 공산당 건물에서 베트남 공산주의 혁명가이자 초대 국가주석인 호찌민 대형 동상을 뒤로 하고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다만 미국과 베트남 관계가 이번에 최고 수준으로 격상되더라도 국방 안보 동맹으로 나아가는 단계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그레고리 폴링 동남아시아 담당 국장은 “이것은 베트남이 미국 편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베트남이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 자국의 자율성을 더욱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WP에 말했다. 베트남은 쫑 서기장이 2016년 “젓가락부터 무기까지 베트남 사람들과 함께해 온 대나무처럼 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독립적ㆍ탄력적인 외교 노선을 구축하자”고 한 이후 ‘대나무 외교’로 통칭되는 균형외교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베트남과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WP는 사설을 통해 반정부 인사를 탄압하는 베트남과 손잡는 것은 바이든 행정부가 지향하는 민주주의ㆍ인권 기반 외교와 어긋난다는 점을 들며 “바이든 대통령은 의심할 여지 없이 베트남의 (미국과 다른) 정치 체제를 존중할 것이지만 베트남 지도자들을 만나면 그들에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중국은 바이든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에 대해 견제구를 던졌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4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의 관련 입장을 묻는 질문에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제로섬 게임의 냉전적 사고를 버리고 국제관계의 기본 준칙을 준수해야 한다"며 "제3자를 겨냥해선 안 되고 지역의 평화·안정·발전·번영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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