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로 몰려드는 시인들, 왜냐면 [수산봉수 제주살이]

이봉수 2023. 9. 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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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봉수 제주살이] 시인보호구역 기획전

육지 사람들에게 제주는 버려진 땅이었고 죄수를 보내는 유배지였다. 지금은 이익을 노려 자본이 몰려들지만 진정으로 제주를 위하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나 또한 제주 사람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 있으리라. 그런 제주인의 한과 정서를 이해하려다 제주학에 빠졌고 도민이 됐다. 키아오라리조트를 운영하면서 제주가 진정한 미디어와 인문학 교육의 중심이 되게 하겠다는 각오로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한미리스쿨)을 설립했다. 제주는 오름의 섬인데 키아오라 바로 뒷산이 대수산봉이고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었기에 '수산봉수'라는 팻말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수산봉수의 제주살이'는 제주학을 배경으로 제주인과 나의 일상에 사회적 발언을 실어 보내는 글이다. <편집자말>

[이봉수 기자]

▲ 명월국민학교 전경 명월리 청년회 마을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차상준)가 1993년에 폐교된 명월국민학교를 카페와 전시공간 등으로 꾸며 지금은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 이봉수
 
'움직이는 것은 모두 적'이었던 땅의 특별한 행사
 
검은 상복을 입고 40년만에 처음 찾은 한라산
내가 나를 운구하듯 걷는 이 학살의 숲은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산등성이마다 뼛가루처럼 쌓여있는 흰 눈이며
나뭇가지마다 암호를 주고받는 새들의 울음소리며
삐라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에도
깜짝 놀라 피했던 새가슴이며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오름과 무덤마다
자지러질 듯 반짝이는 별들이며
청보리 일렁이는 생가슴마다 차곡차곡 돌 쌓아
멀리 수장하러 배 떠났던 바다며
굶주린 배를 움켜쥔 채 허겁지겁 땅을 파헤쳐
씹고 또 씹었던 이 풀뿌리와 나무껍질이며
마지막 남은 낙엽마저 가솔린 냄새를 풍기며 불탔던
이 학살의 숲은
그러나 아직도 총소리로 가득하다.
움직이는 것은 모두 우리의 적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적이기도 했다.

시인 이산하의 장편서사시 <한라산>의 '서시' 한 대목이 지난 2일 오후 제주시 한림읍 명월국민학교 교실에서 울려 퍼졌다. 명월리 청년회가 폐교를 카페와 전시공간 등으로 꾸며 명소가 된 곳에서 문화콘텐츠그룹 시인보호구역이 주관하는 '시인보호구역 기획전 JEJU'가 개막돼 12월 말까지 전시에 들어간 것이다.
 
▲ 시 낭독회 참여자들 ‘시인보호구역 기획전’에 참여한 시인과 일반인들이 자기 소개를 하고 있다. 벽에 캘리그라피로 만든 시들이 걸려있고 창가에는 명월국민학교가 폐교되기 전에 사용하던 풍금이 놓여있다.
ⓒ 이봉수
  
제주도 토박이 시인과 제주를 좋아해 제주에 정착한 시인 17명의 시가 박찬현 글라온 대표의 캘리그라피로 전시됐다. 암투병을 하며 요양중인 이산하 시인은 이날 직접 참석하지 못했으나 대구에서 온 김화 시인이 사전에 신청을 해 낭독자로 나섰다.

떠나지 못해 섬에 사는 시인들

제주4.3실무위원회 기획소위원장으로서 4.3사건 진상규명에 힘써온 제주토박이 강덕환 시인은 시집 <섬에선 바람도 벗이다>를 들고 나와 '흑룡만리'를 낭독했다. 역시 제주에서 태어난 고주희 시인은 시집 <시골시인-J>에서 고른 '우도에서'를 낭독했고, 김효선 시인은 <어느 악기의 고백>에 실린 '우도에는 저녁이 산다'를 읊었다.
 
사랑이 변해도 기억은
밀려갔다 다시 떠밀려오는 모래의 필경사
떠날 수 없어서 떠나지 못해서
영희와 철수는 섬에 산다
 
배가 끊긴 후에야 볼 수 있는 검은 심장
먹다 남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고
부서질 것도 없는 우도땅콩처럼 작아져서
길가에 널린 우뭇가사리를 지나
매일매일 바다로 출근하는 저녁
 
여기가 고향이냐고 뼈를 묻는 질문은
어젯밤으로 남겨두었다
 
시의 후반부만 인용했는데 조금만 스포일러가 된다면 그의 고향은 제주도 '어디'다. 이들 말고도 제주 출신으로는 김순이, 김수열, 김애리사, 문보영, 변종태, 서안나, 이종형, 허유미, 현택훈 시인의 시가 전시됐다. 이들 역시 고향을 못 떠나는 것은 시인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제주의 풍경과 아직도 진행형인 뼈아픈 역사의 현장을 외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는 '시인보호구역'이 될 수 있을까
 
▲ 시 캘리그라피 기획전을 준비한 정훈교 시인의 시를 박찬현 대표가 캘리그라피로 만들었다.
ⓒ 이봉수
 
그러나 전시회를 기획한 정훈교 시인보호구역 대표는 제주도에 온 지 오래되지 않은 시인이다. 시집 <난 혼자지만 혼밥이 좋아>에 실린 같은 제목의 시는 서울에서 온 오태겸씨가 낭독했다.
 
가난한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기에
그림자 가득한 검멀레 해변을 오래 걸었어, 난 혼자였지만
씩씩했고, 그렇지만
우도의 저녁은 외로웠어
그렇다고 바다를 탓하거나, 노을을 탓하진 않았지 오히려
그 밤에도 새벽은 어둠보다 아침에 가까웠어
몇 번의 계절을 보내고 이른 아침이 와도,
당신의 이름을 지우는 일은 여전히 외로워!
어제처럼, 후박나무의 이름을 부르면 후후후 바람이 불 것 같은,
가난한 이름
 
섬의 섬인 우도의 검멀레 해변을 서성이며, '가난한 당신의 이름'을 지우지 못해 외로워하는 속마음을 시로 토해냈다. 누구나 홀로 해변을 걸으면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되는 걸까? 제주의 빼어난 풍광은 시가 있어 더 아름다워진다.

제주에 자리잡으니 바다 수십만 평이 딸려왔다

명월국민학교에 시가 걸린 이들 가운데 손세실리아, 류시화, 문태준, 이산하 시인도 제주 태생이 아닌데 제주에 정착했다. 그들은 무엇에 이끌려 제주에 자리잡게 됐을까? 손세실리아 시인의 시 '바닷가 늙은 집'에는 그 단서가 나온다.
 
제주 해안가를 걷다가
버려진 집을 발견했습니다
거역할 수 없는 그 어떤 이끌림으로
빨려들 듯 들어섰던 것인데요 둘러보니
폐가처럼 보이던 외관과는 달리
뼈대란 뼈대와 살점이란 살점이 합심해
무너뜨리고 주저앉히려는 세력에 맞서
대항한 이력 곳곳에 역력합니다
얼마 남지 않는 나의 생도 저렇듯
담담하고 의연히 쇠락하길 바라며
덜컥 입도(入島)를 결심하고 말았던 것인데요
이런 속내를 알아챈
조천 앞바다 수십 수만 평이
우르르우르르 덤으로 딸려 왔습니다
어떤 부호도 부럽지 않는
세금 한 푼 물지 않는
 
▲ 조천 앞바다 '시인의 집'에서는 조천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 이봉수
 
정읍 출신인 그는 제주시 조천읍 바닷가에서 폐가를 인수해 '시인의 집'이라는 북카페를 열었는데 시집과 화집 등을 예쁘게 진열해 놓고 판다. 시산문집 이름 그대로 <섬에서 부르는 노래>가 그의 시다.

시 짓고 명상하는 데 최적지

류시화씨는 좋은 시도 많이 지었지만, 내게는 인디언 연설문집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와 일본 하이쿠 해설집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로 친숙한 작가다.

두 책은 상상력과 문장력을 키우는 데 매우 쓸모 있어 한미리스쿨 초집중언론인양성과정 권장도서로 비치해 놨다. 인디언 연설문집은 학교 교육을 받지 않은 인디언 추장 등의 생각이 얼마나 슬기로운지 전해주는데 생태와 평화를 중시하는 삶의 지혜를 현대인이 깨달을 수 있다. 하이쿠 해설집은 감수성 넘치는 단문을 구사하는 데 좋은 교재다.

한 달 간 무료 기숙학교로 운영한 1기과정 수료생 중에는 902쪽이나 되는 연설문집과 759쪽에 이르는 하이쿠 해설집을 열심히 읽고 나간 학생도 있다. 류 시인은 명상 관련 책을 많이 펴낸 작가답게 제주 서귀포 인근에서 감귤농사를 짓고 명상을 하며 산다. 제주도는 그렇게 사는 데는 최적지다.

김천 출신인 문태준 시인은 PD이기도 한데 제주도로 장가들어 지금은 불교방송 제주지방사 총괄국장으로 일한다. 명월국민학교에 걸린 시는 '꽃과 식탁'인데 <아침은 생각한다>라는 시집에 들어있다.
 
▲ 시 낭독회 참석자들 시 낭독회를 마친 뒤 참석자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 이봉수
 
'피의 역사'를 시로 쓰라던 발행인은 김영호 통일부장관
경북 영일에서 태어난 이산하 시인은 4.3대학살의 역사를 접한 뒤 운명적으로 제주와 만났다. 그가 오랜만에 내놓은 <악의 평범성>이란 시집에는 파란만장한 인생의 고비들이 즐비하다. 그의 시집은 그의 자서전이다. '폭탄'이라는 시에는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녹두서평>에 실을 때 편집장과 나눈 대화가 나온다.
 
한순간에 일생을 좌우하는 운명이 결정되기도 한다. 27살 때 난 폭탄운반책에서 폭탄제조책으로 바뀌었다. 누가 봐도 폭탄을 안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일이어서 우리는 가스실 없는 '한국판 아우슈비츠'

제주 4.3학살의 서사시 '한라산'을 '폭탄'이라고 불렀다. 내가 최종 원고를 친구 신형식 편집장한테 넘길 때 서로 농담처럼 주고받았던 얘기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야, 이 폭탄 내 모가지 걸고 만든 거니 잘 지켜라."
"야, 그거 터지면 내 모가지라고 붙어 있겠나. 그라고……"
"그라고……뭐?"
"종철이도 죽었다……"
"……"
 
친구의 말에 숨이 탁 막히며 고개가 꺾였다.
2주 전 물고문으로 죽은 박종철은 우리의 고교 후배였다.
 
▲ 이산하 시집 이산하 시인의 시집, <한라산>과 <악의 평범성>.
ⓒ 노마드북스/창비
 
'김일성 장군의 노래' 쓴 항소이유서와 검사 황교안

이들의 출신 고교는 부산 혜광고등학교.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동문이다. 녹두출판사는 당초 일본에서 출간된 김봉현의 <제주도, 피의 역사>를 번역해 출판할 작정이었으나 김영호 발행인이 차라리 그 내용을 시로 쓰는 게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이들은 북한공작원 지시로 이적표현물을 제작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이산하는 <악의 평범성>에 실은 시 '항소이유서'에서 콩밥을 먹게 된 결정적 일화를 털어놓는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
......
28살 무렵 '한라산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었을 때
적의 심장부에 두 번째 폭탄을 던지는 심정으로
항소이유서에 '김일성 장군의 노래' 가사를 썼다.
담당 변호사가 급히 교도소로 달려와 말을 더듬거리며
"다, 당신, 주, 죽으려고 환장했느냐.
지금 검찰과 법원까지 발칵 뒤집혀 황교안 공안검사가
이자는 손목을 잘라 평생 콩밥을 먹이겠다고 난리"라며
잔뜩 흥분해 소리쳤다.
그리고 여죄를 캐며 추가조사에 들어간다고 했다.
난 아무 말 없이 창문 밖의 하얀 자작나무만 쳐다보며
저 백척간두의 꼭대기로 망명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김수영 시인의 미발표 유고시 발굴 기사가 나왔다.
표현의 자유를 개탄한 '김일성 만세'라는 작품이었는데
4.19혁명 뒤에 썼다가 발표되지 않고 50년 후 공개되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약처럼 공개되어도 안전할 때 공개되었다.
허용된 무기는 이미 무기가 아니다.
모두 김수영 신화만 덧칠할 뿐 썩은 사과라고 말하지 않았다.
 
시를 쓰라고 종용했던 김영호는 출옥 후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성신여대 교수가 돼 극우 강경론자로 변신했다. 이 정부에서 통일부장관으로 발탁된 바로 그 인물이다. 그가 장관이 된 '덕분'인지는 몰라도 이 간첩조작 사건과 관련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8월 21일 조사 개시를 결정했다.
 
▲ 명월국교 복도 전시장 명월국민학교 복도에도 시 캘리그라피가 걸려있어 카페 이용객들이 시를 감상할 수 있다.
ⓒ 이봉수
 
황석영과 이문열의 같은 점과 다른 점

시와 노래는 읊거나 부르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완전히 다른 핍박 아니면 환호를 받는다.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영국 유학 시절 황석영 작가가 케임브리지 우리 집을 방문했을 때였다. 여왕의 남편인 에든버러 공 펠로우로 선발돼 영국에 온 황 작가는 우리 집에 이틀을 묵었는데 '조선의 3대 구라'라는 호칭답게 이틀 연속 새벽까지 좌중을 휘어잡았다.

그는 북한을 방문했다고 해 실형을 살다가 석방됐는데, 김일성 주석을 여러 번 만난 얘기를 재미있게 털어놨다. 김일성은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을 다 읽었다고 한다. 정확하게는 비서가 김일성 침대 머리맡에서 읽어주다가 잠들면 살며시 나가는 식으로 전권을 '뗐다'는 얘기다. 김일성은 "황 작가는 민족의 재간둥이요"라는 칭찬을 했다고 한다.

한번은 "셰익스피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했더니 김일성은 한마디로 규정했다. "거, 위~대한 반동이지." 늘 따라붙던 요원이 한번은 밤 늦은 시각에 "갈 데가 있다"고 하길래 긴장했는데 따라가보니 김일성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김일성 장군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면서 그 대목에서 황 작가는 일어서더니 팔을 흔들며 노래를 들려주는 거였다.

황석영은 사실 유럽 기준으로는 자유주의자다. 예전에 <중앙일보>가 진보-보수를 대표하는 작가로 황석영과 이문열의 대담을 붙인 적이 있는데, 그 설정은 잘못된 것이다. 나이 들면서 처신은 달라졌지만 둘 다 근본은, 특히 젊은 시절에는 자유주의자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사회가 지나치게 우경화해 황석영을 진보의 대표 인물로 본다는 주장이다.
 
▲ 황석영 소설집 황석영 작가가 영국 케임브리지 우리 집을 방문했을 때 이 책들을 선물로 줬다. 두 소설 다 사회성이 짙지만 이념에 치우치지는 않았다.
ⓒ 창작과비평사
 
황석영은 월남 참전용사이고 소설 <손님>에서는 북한이 미군의 만행이라고 단정짓는 1950년의 신천학살사건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개화기에 '손님'처럼 들이닥친 게 보수 기독교와 사회주의였고, 그 둘이 충돌하면서 비극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문열은 황석영 직전에 에든버러 펠로우로 케임브리지에 머물렀다. 그와는 막걸리 대신 흑맥주를 마시며 오랜 시간 얘기를 하곤 했는데, 이념 대립에 관해서는 자유주의적 시각을 보이는 듯했다.

반복되는 역사... 4.3학살, 신천학살

신천학살은 2년 전에 시작된 제주4.3과 너무나 흡사하다. 신천학살자는 3만5000명으로 추산되는데, 제주4.3학살자 수도 3만에 육박한다. 제주4.3과 신천학살을 빚은 이념 대립과 미국의 개입도 맥락이 같다. 동족 간에 더 잔학해지는 내전의 참상도 리플레이 화면처럼 똑같이 보여줬다.
 
▲ 백난아 노래비 명월국민학교에는 명월리 출신인 백난아의 노래비와 노래비공원이 있는데 관리가 안 된 채 방치돼 있다. 백난아는 ‘찔래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으로 시작되는 ‘찔레꽃’과 ‘낭랑 18세’를 부른 가수다.
ⓒ 이봉수
 
이산하 시인은 4월 3일 넉 달 만에 페북에 들어와서 근황을 전한 뒤 다섯 달 동안 침묵하고 있다. 그는 당시 "지난 2월 대장암 수술을 받은 뒤 제주도에서 요양중"이라고 전했다.

이 시인은 이어 "페친들이 '조의금 선결제'라는 이름으로 재난지원금을 부탁해 격려가 쏟아졌다"며 "조의금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빨리 죽을 수가 없게 됐다"고 썼다. 그는 "수시로 통증이 온다"며 "이젠 오로지 시대와의 싸움에서 나와의 싸움으로 바뀌었다"고 투병 의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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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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