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눈물 연기자, 닭의장풀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혜영 기자]
9월이 되며 점차 기온이 낮아지고 서늘한 바람도 부는 것이 이제 계절이 바뀔 때인가 보다. 올해도 꽤 덥고 습한 여름이었지만 막상 끝난다고 생각하니 서운하다. 그래도 지난여름을 함께 했던 많은 식물들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 중 도드라진 푸른빛을 보여주었던 '닭의장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 닭의장풀이 있는 풍경 계단 옆 닭의장풀, 어디든 물기가 있는 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
ⓒ 김혜영 |
또 오리를 많이 키우는 중국에서는 닭의장풀을 압척초(鴨跖草:오리 발바닥 풀)라 부르는데, 오리보다 닭을 많이 키우는 우리나라에서는 누군가가 오리 대신에 닭을 빗댄 데서 이름이 생겨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닭의장풀은 물을 좋아하는 식물이다. 메마르지 않고 늘 물기가 잘 유지되는 땅에서 잘 산다. 그리고 아침 무렵 이슬을 머금은 모습으로 피어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 누군가는 닭의장풀이 아침 설거지가 끝날 무렵에 꽃잎을 열고, 서산에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에 시들기 시작한다고 표현한다. 서양에서 부르는 'dayflower'라는 이름도 아마 그런 의미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일본이름 쭈육사(露草, 노초) 역시 '이슬이 맺힌 풀'이란 뜻이기도 하다. 닭의장풀의 청초한 푸른 꽃잎이 아침 이슬에 젖은 채 곱게 피어난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비밀 하나가 있다. 닭의장풀은 잎 끝에 물구멍이라 부르는 구멍을 하나 갖고 있어 그 물구멍을 통해 쓰고 남은 물을 내보낸다. 그래서 닭의장풀의 잎이나 꽃잎 끝에 매달린 아침 이슬은(아침이슬이라고 우리가 생각한 것은) 사실은 밤사이 잎 끝 물구멍에서 배출된 수분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다.
▲ 아침과 오후의 닭의장풀 아침에는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고 있지만 오후가 되면 조용히 꽃잎을 닫는다. |
ⓒ 김혜영 |
닭의장풀은 자연에서는 드문 푸른 색 꽃이다. 자연계에서 꽃을 피우는 1만여 식물 중 약 300여 식물만이 파란색 꽃을 피운다고 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유전자 조작으로 파란색 꽃을 만들기도 한다. 옛 선조들은 닭의장풀의 아름다운 푸른 꽃즙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안료로 쓰거나 옷감에 물을 들이기도 했다.
▲ 내가 본 푸른꽃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산수국, 큰개불알풀, 꽃바지, 현호색이다. |
ⓒ 김혜영 |
축구팀 열한 명 중 골키퍼를 뺀 나머지 열 명이 수비수, 미드필더, 포워드로 4-4-2 또는 3-5-2 포메이션으로 나누어져서 득점을 노리는 것처럼 닭의장풀도 수술 여섯 개의 포지션과 역할이 셋으로 나뉘어져 있다. 축구 식으로 말하면 3-1-2 포메이션이다. 물론 수술의 목표는 골을 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꽃가루를 암술로 옮겨줄 벌과 나비의 몸에 꽃가루를 붙이는 일이다.
꽃잎과 가장 가까운 부분에 X자 모양을 한 수술 세 개는 한 줄로 서서 수비수 역할을 한다. X자 모양에 파란 색깔의 꽃잎 한가운데서 노란색 옷을 입고 나란히 셋이 모여 서 있기 때문에 눈에 잘 띈다.
그 색깔로 꽃등에를 불러온다. 닭의장풀에는 꿀이 없기 때문에 꽃등에는 꽃가루를 먹으러 온다. 그러나 노란색은 겉치레일 뿐 X자 모양을 한 수술의 꽃가루는 양도 대단히 적고 생식 능력도 없다. 처음부터 꽃등에의 시선을 끌기 위한 완벽한 미끼이다.
이 수비수 조금 앞에 역 Y자 모양을 한 수술이 하나 있다. 축구로 말하면 미드필더다. 이 Y자형 수술은 꽃등에가 안에 있는 X자형 꽃가루를 노릴 때 지체 없이 그의 몸에 꽃가루를 묻힌다.
그러나 X자형 수술의 꽃가루는 양이 적기 때문에 꽃등에를 붙잡아 두는 시간이 길지 않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황갈색의 역 Y자형 수술이 꽃등에 붙잡아 두는 역할을 X자형 수술로부터 이어받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은 O자 모양을 한 투톱의 스트라이커다.
▲ 닭의장풀 꽃의 구조 3-1-2 포메이션으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
ⓒ 김혜영 |
아름다운 푸른빛이나 수술들의 놀라운 전략들에 비하면 '닭의장풀'이라는 이름은 좀 아쉽게 느껴진다. 하지만 멋진 이름보다는 그 속의 알찬 내용이 존재 자체를 더 멋지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지. 길가에 흔하게 핀 닭의장풀에게서 또 한 수 배운다. 내년 여름까지 좀 더 내실 있는 내가 되어 닭의장풀을 또 만나야겠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흰 국화 손에 든 검은 옷의 행렬... 학부모들, 자녀 손잡고 와 헌화
- "1969년생인 저, 열심히 살았습니다... 제발 써주세요"
- 아내 몰래 15년간 이웃 여자의 누드를 그린 남자
- 군 검찰의 오만함, 그리고 28년 군 인생 건 박정훈 대령의 약속
- "역사전쟁 시작... 정치 잘못해 이런 험한 꼴 당하고 있다"
- 의원·장관 5명 나온 고택, 하룻밤에 5만 원입니다
- 원전사고 때 난 일본에 있었다... 2011년과 2023년의 공통점
- 해병대 전 수사단장 측 "직무복귀해 보강수사, 역적몰이 횡행중"
- "홍범도 장군 흉상 창고에 처박으면 의병 돼 싸울 것"
- "용인 교사 사망, 악의적 민원 발견 시 학부모 고발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