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대신 '사별자'란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
[박진옥 기자]
지난 8월 초, 서울시립승화원에 있는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 전용 빈소에서는 안승호(가명)씨의 장례가 있었다. 70대 초반인 고인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요양병원에서 사망했다. 고인의 부모는 모두 사망했고, 미혼으로 자녀는 없었다. 형제는 있었지만, 구청의 시신인수 요청에 14일 동안 아무도 응답하지 않아 결국 '무연고 사망자'로 확정됐다.
안승호씨의 사연을 들으면 흔히들 '외롭고 쓸쓸함'을 떠올린다. 고인은 평생을 외롭게 살다가 삶의 마지막 순간마저도 요양병원에서 혼자였을 것이라며 안타까운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안승호씨의 장례에는 지난 2년 동안 고인을 돌보던 요양보호사가 참여했다. 고인이 요양병원에 있을 때도 요양보호사는 자주 찾아뵀을 뿐 아니라 사망한 후에도 구청에 연락해서 평소 고인이 원하던 해양장을 요청했고, 관련 비용도 본인이 직접 부담하겠다고 말했다.
▲ 사별자 헌화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에 참여한 사별자가 고인을 위해 헌화하고 있다. |
ⓒ 박진옥 |
공영장례에서 '유가족' 대신 '사별자'를 사용하는 이유
장례를 치를 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사별자'보다는 '유가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장례의 주체는 '가족'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이렇다 보니 장례에서 가족이 아닌 사람들의 애도는 너무나 쉽게 외면당하고 타자화되기 쉽다.
같은 장례 현장이지만,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에서는 '유가족' 대신 '사별자'라는 단어를 쓴다. 죽음으로 고인과 이별했다는 측면에서 공영장례 현장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사별자'이기 때문이다. '사별자'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다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사별자들이 '박탈된 애도(disenfranchised grief)'를 경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일반적으로 박탈된 애도는 애도가 공개적으로 승인 받지 못하거나 공개적으로 애도할 수 없을 때, 혹은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할 때 발생한다.
'무연고 사망자'의 '사별자'들은 '무연고 사망자'와 혈연 및 법률상의 가족, 즉 '유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장례를 치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렇게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정상적인 애도가 부정되는 상황에서 '사별자'들은 '박탈된 애도'를 경험하게 된다. 공영장례 현장에 참여한 모두는 무연고 사망자의 '사별자'다. 고인과의 관계가 어떻든 공영장례 현장에서의 애도는 인정받아 마땅하고 사회적으로 지지받을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애도의 위계화'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애도의 위계화는 애도의 자격을 묻는다. 그리고 애도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서열화 시키고, 그 서열에서 밀려나는 타자들을 지속해서 만들어 낸다.
지난 7월 말, 공영장례지원 상담센터가 사례관리 하던 어르신의 공영장례식이 있었다. 상담센터는 그 어르신과 10년을 만났다. 장례를 치르며 상담센터의 활동가는 '내가 가족도 아닌 데 이렇게 슬퍼해도 되나'라는 생각에 위축됐다고 한다. 그동안 함께 했던 기억을 회상하며 충분히 슬퍼해도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결국 이러한 생각이 애도의 '위계화'를 만든다. 상실을 치유하는 과정인 애도 과정에서 위계화는 충분한 애도를 방해한다. 공영장례 현장에서는 모두 '사별자'로 마음껏 슬퍼해도 된다. 이를 위한 작은 실천이 바로 '사별자'라는 용어 사용인 것이다.
공영장례 현장에 참여한 모두는 '무연고 사망자 사별자'
2023년 8월 말 현재까지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780여 명을 위한 공영장례가 있었다. 그 가운데 약 30% 정도는 '사별자'가 참여했다. 어떤 경우는 30명이 넘는 지인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도 했다.
이렇듯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 현장에는 연고자뿐 아니라 현행법률상 장례를 치를 연고자로 인정받지 못한 친밀한 관계의 사람들, 직장동료들, 같은 종교의 신앙공동체에 있었던 사람들, 쪽방 지역에 함께 살던 이웃들, 매일 같이 고인을 돌보던 요양보호사들과 복지관에서 사례관리 하던 사회복지사들, 오랜 추억을 함께 나눴던 친구들과 다양한 관계의 지인들이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참여한다. 이들 모두가 '무연고 사망자 사별자'다.
'유가족'이 아닌 '사별자'라는 단어가 공영장례를 넘어 모든 장례 현장에서 사용되기를 희망한다. 고인과의 관계가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떠한 '사별자'의 애도도 박탈되거나 배제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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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필자는 서울시 공영장례지원상담을 하고 있으며, 저소득시민 및 무연고자 장례지원하고 있는 "나눔과나눔"에서 활동 중입니다. 이 글은 '1코노미뉴스 http://www.1conomynews.co.kr' 오피니언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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