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사업 실패 후 첫 휴식, 함양 내려와 나를 돌아봤죠"
`함양군은 이번 지방소멸 대응기금 사업에서 가장 높은 A등급으로 책정되어 210억 원의 기금을 확보했다. 함양을 발전시킬 수 있는 많은 예산을 확보한 것은 정말 좋은 일이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만큼 소멸 위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년세대의 인구감소와 유출, 일자리 부족 등 함양이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는 막막할 정도로 산적해있다. 청년인구를 유입시키고 유출을 막는 것은 우열을 가릴 것 없이 시급한 문제다. 청년세대는 인구문제 해결에 중요한 열쇠가 되는 세대다. 현재 함양군뿐만 아니라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청년세대를 유입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혹자는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인구 유치를 위해 힘쓰는 사태를 보며 지방을 찾아온 청년들이 힘든 일을 싫어하고 지원금만 밝힌다며 비판한다. 정말 청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환경에서 청년들이 행복하게 정착할 수 있을까? 이에 본지는 이미 함양에서 살고 있는 청년의 삶 속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고 청년들이 함양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기자말>
[주간함양 최학수]
▲ 남양쥬스 염지희씨 |
ⓒ 주간함양 |
1991년생 염지희씨는 함양에서 자라고 산업디자인을 졸업한 후 부산에 터전을 잡았다. 함양에서만 있다 보니 도시에서 일을 구하고 싶었고 염두에 뒀던 도시는 서울과 대구, 부산처럼 지하철이 있는 대도시였다. 그 중 친구들이 많은 도시인 부산을 선택하게 됐다.
"부산에는 친구들이 많으니까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외롭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선택하게 됐어요."
부산에서 지희씨는 디자인 일을 시작했다. 옥외·옥내 디자인을 하고 로고나 명함, 현수막 등 광고디자인을 했다. 20대 초반에 터전을 잡았던 대도시 부산은 정말 화려하고 예뻤다. 문화생활도 즐길 수 있었고 지하상가나 백화점도 많았다. 하지만 해를 거듭하며 익숙해졌다.
"이 도시가 바뀐 건 없었어요. 싫거나 그런 것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냥 어느 순간부터 부산이 함양 같았어요. 어디 다른 곳 가려면 거리가 먼 것도 보이고 도시가 복잡한 것도 보이고 놀러 가려면 주차공간 없는 것도 보이기 시작했어요. 부산에 알던 친구나 지인들이 하나둘 떠나는 것도 생겼어요. 발령이나 취직, 이직의 이유로요."
함양에 다시 돌아온 지금은 도시에 나가면 신나고 좋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성실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다
함양에 돌아오기까지 지희씨는 스물두 살부터 부산에서 끊임없이 성장하는 시간을 가졌다.
"첫 번째 직장은 3개월 일했어요. 폐업등록을 한 채로 영업하던 곳이라 오래갈 수 없었어요. 그 상태에서 두 번째 직장에서 6년 정도 일했어요."
지희씨가 오래 근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복지와 환경, 그리고 사람이다.
"대표님께서 삼성에서 근무하셨던 분인데 삼성에서 좋았던 복지나 환경을 벤치마킹해서 회사를 운영하셨어요. 교통비나 통신비 지원도 있었고요. 문화비도 추가로 있어서 애사심을 갖고 회사에 다닐 수 있었어요.
제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고객감동상을 3년 동안 받은 적도 있거든요. 일도 일이지만 광고주에게 친절하게 잘해서 받을 수 있었어요. 이런 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오래 근무할 수 있는 바탕이 됐어요. 회사 내 이런 문화 하나하나가 다 좋았어요."
하지만 젊은 나이에 오래 근무를 하다 보니 권태기가 찾아왔다. 지점을 돌면서 발령을 받는데 이사를 자주 다녀야했던 것도 질리는 이유가 됐다. 지희씨는 퇴사 후 1인 광고회사를 창업한다.
"인쇄사업인데 사실 성공하지 못했어요. 1년을 유지했는데 한 달에 200만~300만 원 벌 때도 있고 한 푼도 못 버는 달도 있었어요. 제가 6년의 경력이 있어도 현장 경험은 없다 보니까 현장의 40~50대 어른들이 많이 무시하는 일도 있었고 업체를 가로채서 일을 뺏어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일하며 모은 돈을 대부분 이 기간 사용했지만 후회한 적 없어요. 힘들지도 않았어요. 저는 젊고 나의 경험으로 이 정도는 써도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다른 사람의 돈도 아니고 내가 번 돈이잖아요."
사업을 정리하고서 전시 업계 디자인 회사에 들어갔다. 주로 벡스코나 코엑스에 들어가는 전시를 디자인했는데 코로나가 터지는 시기와 맞물려 일이 없어졌다. 회사에 계속 있기 힘들었기에 다른 회사로 이직할 수밖에 없었다. 이직한 회사에서도 1년 가까이 있다 결국 퇴사했다. 디자인과 함께했던 20대를 보낸 지희씨. 퇴사 후 7개월 자신에게 처음으로 휴식기간을 줬다.
▲ 남양쥬스 염지희씨 본인 제공 |
ⓒ 주간함양 |
▲ 남양쥬스 염지희씨 본인 제공 |
ⓒ 주간함양 |
새로운 도전 시작하다
쉬는 기간 동안 남양청과 사장인 형부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는 지희씨. 전부터 사장이 되는 것이 목표기도 했고 디자인이 아닌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형부가 도와주면 한 번 해보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22년 12월 겨울에 시작하게 됐어요. 결국 형부가 도움을 줬어요. 저에겐 정말 감사한 제안이었어요"
생과일주스는 동절기가 비수기일 수밖에 없다. 손님도 많이 없었고 흔히 말하는 '개업빨'도 없어 '쉽게 생각했던 게 아닐까' 의기소침했다. 그런 시기도 잠시, 날씨가 더워지며 손님은 빠르게 늘어났다. 새로 시작했던 탕후루가 전국적으로 유행하는 시기도 맞물려 매출이 올라갔다.
"10개월 차가 된 지금 제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매일 12시간 열심히 일하지만 재밌어요."
도시에 가게 되면 무조건 생과일주스를 마시게 된다는 지희씨는 남양쥬스에서 파는 생과일주스를 자랑스럽게 내고 있다.
"도시에 주스는 가끔 너무 물처럼 마시는 음료로 나오거든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형태는 별로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너무 걸쭉하게 나오면 안 되지만요. 우리 남양쥬스에서는 그 중간을 잘 찾았다고 생각해요."
주스 뿐만 아니라 과일도시락도 많이 판매된다. 남양청과가 좋은 과일을 가져온다고 홍보하기 위해서라도 맛있는 과일을 듬뿍 담아 판매하게 됐다.
남양청과 가게 옆에 남양쥬스가 붙어있다 보니 청과에서 팔지 못하는 과일을 주스로 만든다고 오해하기 쉽다. 대부분의 생과일주스 가게는 흠집이 나거나 상태가 좋지 않은 과일을 주로 쓰다 보니 생긴 오해다. 남양쥬스는 상품으로 파는 과일을 주스로 갈아서 음료의 질을 높이는데 신경 썼다.
"많은 분이 안 좋은 과일을 쓴다고 오해하세요. 버리는 과일을 주스로 팔면 좋겠다고 하는데 남양쥬스에서는 판매용 과일을 갈아서 만들어요. 사실 조금 흠집이 난 과일도 있거든요. 적당히 도려내고 쓰면 되는데 저는 절대로 안 써요. 그런 오해가 싫어서 오해를 만들 조금의 일도 만들기 싫거든요. 청을 만들 때도 좋은 과일을 써요. 그렇게 만든 청과 시럽으로 음료를 만드니까 맛있을 수밖에 없죠"
지희씨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통해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생과일주스 전문점은 겨울이 비수기이기 때문에 지희씨는 앞으로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서 다양한 과일 쨈이나 함양의 특산품을 이용한 빵을 구상하고 있다.
▲ 남양쥬스 염지희씨 본인 제공 |
ⓒ 주간함양 |
함양은 인프라가 부족한 공간일까?
지희씨는 타향인 부산에서도 줄곧 새로운 사람을 만나곤 했다.
"제 취미는 당구랑 캘리그라피예요. 부산에서 당구 동호회에도 가입하고 하나둘 관심 있는 사람들이랑 동아리를 만들어 배우기도 했어요."
지희씨는 도시에서 뭔가 배우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오픈카카오톡이나 네이버 밴드를 통해 새로운 사람을 쉽게 만났다. 함양도 과연 그럴 수 있는 공간일까?
"함양은 사실 갈 곳이 부족하고 사람을 만나 다양한 것을 하기도 어렵지만 충분히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엔조이프로틴 사장님의 소개로 함양청년네트워크 이소에 나가게 되었는데 여기만 나오더라도 새로운 사람과 다양한 이야기를 해 볼 수 있어요.
선택지나 규모가 작을 수도 있지만 조금만 둘러보면 함양에서도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귀촌인들은 함양을 잘 모르잖아요. 함양 사람들이 더 나서서 주변을 알려주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좋은 모임이 있어도 정보가 부족해서 모임을 모른다면 인프라가 좋다고 할 수 없다. 남양쥬스가 성장해서 다양한 지역의 소식을 주변에 알릴 수 있는 또 다른 창구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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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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