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사고 때 난 일본에 있었다... 2011년과 2023년의 공통점

김강민 2023. 9. 4.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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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역 엄습한 '방사능 공포', 한국산 생수까지 공수... 두려움이 쉽게 가시지 않는 이유

[김강민 기자]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로 인한 우려는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다. 이미 시작된 일이고,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바다로 오염수를 흘려 보낸다고 하니, 앞으로 해산물을 먹을 때마다 걱정이 밀려들 것 같다. 뉴스를 통해서도, 주변을 통해서도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 않나.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황이 낯설지는 않다. 12년 전인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우리 가족은 도쿄에 살고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에 문제가 생겼다, 그날의 나와 우리 가족
 
▲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지진 당일 도쿄에서는 책장의 책들이 쏟아질 정도로 흔들렸다.
ⓒ 김강민
 
지진이 발생한 그 날, 대중교통이 마비돼 먼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 텔레비전을 켰을 때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강력한 지진을 처음 겪어봐서 놀랐던 건 당연했지만, 텔레비전에선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마을을 덮치는 무서운 장면이 연이어 방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듯이 쓰나미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면서 또 한 번 공포에 휩싸였다. 

당시에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생, 유치원생이었다. 어린이의 부모로서 원전사고의 여파는 보통 걱정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큰 지진 이후에 계속된 여진이 '눈에 보이는 공포'라면,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의 위험은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는 더 무서운 공포'였다.

그때 여러 가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나는 진원지인 후쿠시마 지역과는 300km 이상 떨어진 도쿄에 있었지만, 수돗물이 오염됐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요리할 때, 양치할 때 어떤 형태로는 우리 입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수돗물에 방사성물질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예전과 같은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생수를 고집하다
 
 2011년 3월 25일(현지 시각) 도쿄 시내 한 편의점의 텅텅 빈 음료수 판매대에서 한 여성이 주스 병을 집어들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일본 내 수돗물 오염지역이 확산되면서 일본에서는 생수와 생필품 사재기 현상이 발생했었다.
ⓒ AP=연합뉴스
 
우리 가족은 생수를 최대한 많이 샀다. 일본산 생수라 하더라도 최대한 후쿠시마와 먼 곳에서 만든 생수를 샀다. 그러다가 한국으로 한 달 동안 피했다가 도쿄로 돌아올 때에는 아예 한국산 생수를 사서 오기도 했다. 밥을 지을 때, 국을 끓이고 식자재를 씻을 때는 물론, 세수와 양치를 할 때도 생수를 사용했다. 누군가는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겠지만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언론에 나오는 '오염도 측정치'는 선뜻 믿어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와 언론이 위험을 감추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들이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많았다. 오염이 됐는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으니, 얼마큼 조심하면 되는지 역시 알 수 없어 되레 과하게 대처했던 측면도 있었을 테다.

마트에선 후쿠시마산 제품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채소, 수산물 등의 식자재를 살 때면 원산지를 철저하게 확인했다. 후쿠시마로 향하는 도쿄 북쪽 지역에서 난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 생활이 그 해 9월, 일본을 떠나 귀국할 때까지 이어졌다. 

두려움이란 것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2011년 3월 18일 금요일, 도쿄 동쪽 나리타 공항의 체크인 구역에 승객들이 붐비고 있다. 일본 북동부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의 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외국 정부가 시민들에게 출국을 권고함에 따라 이날 공항은 피난민과 일반 승객들로 붐볐다.
ⓒ AP=연합뉴스
 
일본인 지인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언제든 갑자기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해."

지진이 잦은 나라이고, 역사적으로 큰 피해를 겪었던 경험이 있는 만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가족이 일본 생활을 마무리하고 귀국한다고 했을 때, 일본인 지인들은 이런 말을 했다.

"그래. 얼른 돌아 가. 너희 가족은 갈 곳이 있잖아. 우리는 어차피 여기에서 살아야 하니까, 방사능은 무서워하면서 걱정하면서 그냥 사는 수밖에 없어."

결국, '아무 문제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듣지 못한 채 그들을 남겨두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하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때였다. 일본의 국민 아나운서 오츠카 노리카즈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는 후쿠시마산 농수산물 시식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인과 관계는 명확하게 알 수 없으나, 이런 소식들, 온갖 루머들은 그 뒤에도 종종 눈에 들어왔다. 일본에 있는 지인 걱정은 계속 될 수밖에 없었다.

12년 지난 일을 왜 다시 언급하느냐 물을 수 있겠다. 그러나 2011년 그때와 2023년 지금 사이엔 공통점이 있다. 데이터는 '이상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로 인해 생겨버린 두려움이란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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