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읽다]남극 기지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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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람 하나 살지 않는 남극(antarctic)이 국제 과학계에서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우선 세계 각국이 자연 탐사·보호를 목적으로 설치한 기지들이 오히려 남극을 오염시키면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또 남극에 기지를 설치하는 국가들은 환경 오염을 최소화하도록 의무화했다.
진정한 자연 탐사·보호와 인류의 행복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남극 기지를 철수해야 맞지 않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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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오염시켜
최근 사람 하나 살지 않는 남극(antarctic)이 국제 과학계에서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우선 세계 각국이 자연 탐사·보호를 목적으로 설치한 기지들이 오히려 남극을 오염시키면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호주 기후변화부 소속 호주남극연구소가 지난달 8일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게재한 연구 논문이다. 연구팀은 남극 동부 윈드밀 섬의 케이시연구소 앞바다에서 1997년부터 2015년까지 해양 오염 실태를 모니터링했다. 그 결과 바닷물 속에서 연료의 주성분인 고농도의 탄화수소가 대량으로 검출됐다. 납, 구리, 아연 등 중금속 함량도 높았다. 또 대부분의 샘플에서 폴리염화비페닐(polychlorinated biphenyls)도 검출됐다. 1급 발암물질임이 확인돼 2001년 국제 협약에 의해 사용 금지되기 전까지 남극에서도 흔히 사용됐다고 한다. 연구팀은 특히 남극 바닷속이 시드니항, 리우데자네이루항 등 대규모 인구가 거주하고 선박 통행이 잦은 세계 주요 항구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에 경악했다.
케이시연구소 주변만 그런 것도 아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Nauture)는 지난달 말 뉴질랜드가 크라이스트처치 섬 소재 스콧기지(Scott Base)를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연료·쓰레기로 인한 대규모 토양·해양 오염 실태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남극 일대에선 최근 기후 변화로 기온이 오르면서 빙하·동토가 녹아 얼음 속에 묻혀 있던 것들이 노출돼 더욱더 오염이 확산되는 것도 큰 문제라고 한다.
과거 이 같은 오염은 당연시됐다. 쓰레기가 발생하면 연구기지 가까운 곳에 그냥 버리는 게 관행이었다. 1991년에야 오염의 심각성을 깨닫고 남극 조약에 환경보호 조항(마드리드 의정서)이 채택됐다. 남극의 자연을 보호하고 평화적·과학적으로만 활용하자는 내용이었다. 또 남극에 기지를 설치하는 국가들은 환경 오염을 최소화하도록 의무화했다. 문제는 현재 남극에 설치된 각국 연구시설들의 3분의 2는 이 조약이 체결되기 전에 설치됐다는 점이다. 오염 방지·정화 시설을 거의 갖추지 않았다. 게다가 최근 들어 남극에 인간이 거주하는 연구소나 국가시설 등이 증가하는 추세여서 환경·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이 더 커지고 있다. 대부분의 연구소·시설이 빙하가 아닌 육지 위에 지어지는데 이는 남극 면적의 1%에 불과한 다양한 야생 동물의 보금자리다. 펭귄·물개 등이 인간들에게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뺏기고 쫓겨나고 있다는 얘기다.
남극 기지는 최근 성폭력의 무방비 지대라는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미국이 운영하는 맥머도 기지에서 마초적 문화가 팽배해 남성이 여성에게 언어적 성폭력을 가하는 일이 잦고, 성폭행하거나 목숨을 위협하는 일도 속출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여성들은 성폭행을 피하기 위해 작업복 속에 호신용 망치를 품고 잔다는 폭로를 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남극 기지의 역설’이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진정한 자연 탐사·보호와 인류의 행복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남극 기지를 철수해야 맞지 않냐는 것이다.
최근 유행하는 외계인의 지구 침략을 다룬 영화들도 떠오른다. ‘메뚜기 집단’처럼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자원 약탈과 파괴를 일삼는 영화 속 괴물 집단은 바로 인류의 자화상이라는 비참한 자각 말이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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