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찾은 첫 서양 외과 의사 썼던 책상 85년만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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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서양 의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외국인 외과 의사가 국내 체류하며 썼던 1800년대 말 책상이 85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1912년 한국 선교사로 자원해 26년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와 병원 외과 의사로 근무한 알프레드 어빙 러들로 박사(1875~1961)다.
러들로 박사는 퇴임 후 책상을 고향으로 가져갔을 만큼 특별한 애착을 가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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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 현지 박물관 한국인 큐레이터 등 노력으로 고국행
한국 서양 의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외국인 외과 의사가 국내 체류하며 썼던 1800년대 말 책상이 85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1912년 한국 선교사로 자원해 26년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와 병원 외과 의사로 근무한 알프레드 어빙 러들로 박사(1875~1961)다. 그가 사용한 책상이 후손과 미국 현지 미술관 한국인 큐레이터,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노력 끝에 지난달 31일 귀환했다.
4일 연세대의료원에 따르면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출신의 외과의였던 러들로 박사는 세브란스의전과 병원에서 20여년간 근무한 뒤 1938년 퇴임했다. 그는 우리나라를 찾은 최초의 서양 외과 전문의로 한국 외과를 크게 발전시켰다.
돌아온 책상은 앞면 반을 문으로 만들어 여닫는 형태로, 화사한 문양이 특징인 ‘경기 반닫이(경기 지역에서 쓰임)’다. 전면부에는 황동으로 호리병과 꽃을 새겼고 손잡이 부분은 박쥐 모양이다. 내부에는 서랍을 추가로 설치했고 문을 내리면 책상으로 사용할 수 있게 지지대를 덧댔다. 앞문이 완전히 열려 넘어지지 않도록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하단에 서랍을 추가하는 등 1800년대말 사용자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한 ‘커스터마이징’ 가구였다.
러들로 박사는 퇴임 후 책상을 고향으로 가져갔을 만큼 특별한 애착을 가졌다고 한다. 원래 소장자는 러들로 박사 생애의 마지막 10여 년간 한집에서 살았던 종손녀(형제자매의 손녀) 낸시(Nancy Ludlow Yahraus) 여사였다.
당초 낸시 여사는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미술관에 기증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한국 미술 담당 큐레이터 임수아 박사가 연세대의료원이 반닫이를 소장하는게 유물 의미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여사를 설득했다. 임 박사는 지난 5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국내 기증 의사를 전달했다. 소장자는 물론 숨은 조력자들의 노력으로 국외 소재 문화재가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해당 유물의 감정가는 4000여만원으로 평가된다. 의료원 측은 책상을 연세대 동은의학박물관에 전시할 예정이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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