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군부 빅5…총참모장만 세 번째 이영길은 ‘왕의 남자’ [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집권 이듬해인 2013년 말 “전국을 미사일로 수림(樹林)화 하라”고 지시했다. 북한 전역에서 다양한 미사일로 공격력을 극대화하겠다는 포석이었다. 10년이 지난 최근 북한은 미사일의 사거리를 대거 늘려 미국 본토를 위협 중이고, 극초음속 미사일과 요격미사일을 회피하는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까지 등장했다.
북한은 또 다연장로켓을 발사하는 방사포와 전차 등 대부분의 재래식 무기를 신형으로 교체했다. “현대전은 포병전이며 포병 싸움 준비이자 인민 군대의 싸움 준비라는 것을 항상 명심하라”는 게 김 위원장의 지론이었다. 북한군 무기의 성능 개량이 하급 부대까지 확산했는지, 실전 투입이 가능한 수준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열병식에 등장한 무기만 놓고 보면 북한군의 현대화는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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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권 11년 동안 총참모장만 11명
하노이 회담 뒤 수뇌부 잦은 교체
김일성·김정일 때 긴 임기와 비교
조급함 반영이자 통제 강화 포석
」
총참모장 재임 평균 1년 불과
그런데 김 위원장이 왕좌에 오른 이후 군 수뇌부 5인방(총정치국장, 총참모장, 국방상, 국가보위상, 사회안전상)의 인사 흐름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속내가 읽힌다. 북한은 지난 9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를 열고 합참의장 격인 총참모장을 이영길(차수·왕별)로 교체했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 “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잦은 군 수뇌부 교체다.
본지 통일문화연구소가 분석한 결과 김정은 체제 11년 동안(23일 현재) 북한은 총참모장을 11번 갈았다(같은 기간 한국은 7명). 1948년 북한이 정권을 수립한 이후 63년간 이어진 김일성·김정일 시대(759개월)에 교체된 총참모장과 같은 숫자다. 당연히 과거 69개월이었던 총참모장의 평균 재임 기간은 김정은 시대 들어 12개월 가량으로 6분의 1수준으로 줄었다. 김격식과 이태섭은 각각 5개월과 6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자리를 내놨다. 총참모장을 지낸 이영호(2012년 중반)와 현영철(2015년 4월)은 반역 또는 불충죄로 부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되기도 했다.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국방상 역시 다르지 않다. 김 위원장은 집권 후 국방상을 10번 바꿨다. 김일성·김정일 시대(민족보위상, 인민무력부장)에 8번 교체했으니 이미 교체 횟수는 넘어섰다. 그나마 37개월을 역임한 박영식이 김정은 시대의 최장수 국방상이다.
잦은 인사의 배경이 김 위원장의 조급함 때문인지 군부의 기강을 잡으려는 차원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김 위원장이 임명했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단, 2019년 2월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군 수뇌부 인사가 더 잦아졌다는 점은 군 수뇌부 교체를 통한 긴장 국면 조성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군내 정치조직이자 감시 기능을 하는 총정치국장과 국가정보원장 격인 국가보위상이 11년 동안 각각 6회와 3회 교체되는 등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것과도 비교된다.
돌고 돌아 이영길?
김 위원장은 집권 이후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군에선 군단장을 40~50대로 10세 가량 낮추는 분위기다. 나이로만 봐선 세대 교체 대상임에도 승승장구하며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 올해 68세인 이영길이다. 그는 2013년과 2018년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 총참모장이 됐다. 이영길은 2016년엔 총참모장에서 제1부총참모장(합참차장 격)으로 좌천된 적도 있다. 그러나 총참모장으로 복귀했고, 2021년 7월부터는 18개월 동안 국방상도 지냈다. 경찰청장에 해당하는 사회안전상을 2020년 9월부터 15개월 동안 맡았다. 고무줄과 회전문 인사의 대표적 사례다. 총참모장→부총참모장→총참모장→당 제1부부장→사회안전상→국방상→당 비서→총참모장 등 군과 경찰, 당을 오간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소위 빅5중 3곳의 수뇌부로 재임한 기간을 합하면 56개월이다. 김 위원장의 개인 교사로 알려진 박정천이 5곳 중 총참모장만 24개월을 했으니, 사실상 이영길을 ‘왕의 남자’로 부를 만하다. 그의 이런 배경엔 3군단장과 5군단장, 총참모부 작전국장을 역임한 작전통이라는 점이 점수를 얻었다는 게 중론이다.
군 출신이 맡고 있는 사회안전상도 2019년 이후 부침의 연속이다. 1944년생인 최부일은 7년간 재임한 뒤 75세이던 2019년 김정호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났다. 그런데 김정호는 9개월만에 이영길로, 15개월 뒤 이태섭, 6개월 뒤 박수일, 또 6개월 만에 이태섭으로 바뀌었다. 4년도 되지 않아 5명의 자리바꿈이다. 공교로운 건 사회안전상의 잦은 인사도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직후 벌어졌다는 점이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 이후 한국·미국과 거리를 두는 건 물론 ‘반동사상문화 배격법’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경각심을 주문하고 있다. 미국과 대화가 어긋난 뒤 주민 단속을 강화하며 수시 인사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경찰도 예외 없다
무엇보다 작전통인 이영길과 이태섭·박수일 등에게 사회안전상을 맡긴 건 경찰의 무력 조직을 군 수준으로 끌어 올리고, 총참모부의 작전 수준을 경찰에 이식하려는 시도일 수 있어 주목된다. 예비병력을 강화해 유사시를 대비하겠다는 전략일 수도 있다. 한국과 미국 입장에선 우려되는 부분이다.
북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2020년 1월 봉쇄했던 국경을 풀려는 분위기다. 지난 22일 3년 7개월 만에 베이징을 오가는 항공편 운항을,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수 십명의 태권도 선수단을 태운 버스가 지난 16일 북·중 국경을 넘으면서 육로 통행도 재개했다. 봉쇄를 해제하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북한 주민을 향한 통제 수위는 높아질 게 뻔하다. 경직된 북한 체제의 속성 상 신임 군지휘부는 아랫 단위 옥죄기를 통한 성과 도출에 나설 것이다. 유연함이 없이 강함만을 추구한다면 부러지기 마련이다. 조급함에 따른 형식적인 강함은 더 그렇다. 자칫 불똥이 한국으로 표출된다면 재앙이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柔能制剛)는 건 진리다.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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