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더라도 천천히, 작은 성취 중요해”
개관 1주년…이교봉 센터장 인터뷰
속도가 조금 느린 사람들이 있다. 하나를 배우려면 열 번 스무 번 반복해야 한다. ‘느린 학습자’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경계선지능인이다. 이들은 지적장애에 해당하는 IQ(71)를 가진 건 아니지만 평균 사람들의 IQ(84)에는 못 미친다.
하지만 법적으로 이들은 장애인이 아니어서 교육과 복지정책에서 소외되고 있다. 친구가 없어 외롭고 놀림이나 따돌림으로 상처받는 이가 적잖다.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와서 적응하기도 쉽지 않다. 성취감의 부족은 자신감 결여로 이어진다.
이같은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서울시에서는 전국 지자체 최초로 이들을 위한 지원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쿠키뉴스가 가을장마가 시작됐던 8월의 끝자락에 서울시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밈센터)의 이교봉 센터장을 만나봤다.
이교봉 센터장은 청소년 활동 관련 전문가다. 1999년부터 20년 동안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청소년지도자연수센터장, 청소년활동안전센터장, 활동진흥본부장 등을 거쳐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장으로 퇴임했다. 그러다가 DTS 행복들고나의 지우영 이사장을 통해 경계선지능인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지원 필요성을 느껴 센터장직을 맡았다.
-‘밈센터’라는 이름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
정식 명칭은 ‘서울시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다. 너무 길고 줄이기도 어려워서 ‘밈센터’라는 명칭을 지었다. 경계선지능인들의 꿈을 밀어주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인식을 확산해나간다는 중의적 뜻을 담았다. 밈센터는 2020년 서울시의회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제정한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 조례에 따라 지난해 6월 문을 열었다. 서울시교육청 위탁형 경계선지능인 대안학교의 사단법인 ‘DTS 행복들고나’가 위탁운영을 맡았다.
현재 등록된 회원은 300여 명이다. 연령대는 다양하다. ‘평생교육 지원센터’인 만큼 생애주기에 걸친 교육을 제공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연령대가 청년과 청소년이다. 청소년이 45%, 20~30대 청년이 41%가량 된다. 나머지는 40대 이상이다.
-센터의 목표가 있다면?
경계선지능인들은 제한된 인지능력으로 인해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다. 잦은 실패에 따른 무너진 자존감, 주변의 거부와 놀림에 따른 정서적 결핍, 함께해줄 친구의 부재에 따른 외로움, 관계 맺기 어려움 등이 있다. 센터에서는 경계선지능인들에게 놀 거리와 배울 거리를 제공하고 친구를 맺게 하며 작은 것에서부터 성취감을 갖게 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자조모임을 통해 외로움 극복과 친구 맺기, 사회적 능력 증진을 위한 사회성 향상 프로그램, 자존감 증진과 정서적 안정을 위한 정서 멘토링, 숲 힐링 등이 있다.
-1년 전과 비교해 경계선지능인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많이 이뤄지고 있는지?
지난 2020년 서울시에서 전국 최초로 조례가 만들어졌다. 현재 전국 39개 이상 자치구에서 조례가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국회에서도 여야를 떠나 많은 의원들이 관련 법안 발의를 했다. 좋은 변화라고 본다.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법 설계에 있어 경계선지능인들을 능동적 주체자로 고려했으면 좋겠다. 수동적 수혜자로 본다면 지원에 그치지만 능동적 주체자로 볼 경우 본인 삶을 살아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보다 경험할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주어졌으면 싶다.
-센터를 운영하면서 인상 깊었던 일이 있었다면?
최근에 직무역량개발과 취업연계를 하는 ‘커피랩’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당초 8회로 구성된 바리스타 자격증 교육과정을 경계선지능인의 특성에 맞춰 25회에 나눠 진행했다. 일반인 대비 3배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들인 셈이다. 놀라운 건 이때 참여자들 16명이 모두 합격했다는 사실이다. 그중 6명은 현재 파스꾸찌, 슈카페 등에 취업한 상황이다. 본인들도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누렸다는 점에서 이때 일이 인상 깊고 자랑스럽다. 그래서 센터에 플랜카드를 걸어놓기도 했다.
-결국 우리 모두는 함께 살아간다.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태도가 있다면?
사람은 선천적인 요소와 후천적 요소의 결합으로 이뤄져 있다. 후천적인 부분에 양질의 교육이 해당된다. 최초로 마주하는 환경은 가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조기에 아이들의 상태를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지를 했다면 본인들의 시각에 맞춰 잘못됨을 극복하려 하는데 선천적으로 타고는 부분은 바뀌지 않는다. 발달이 느리다는 것을 인지하고 빠르게 사회적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이후 아이들은 학교에 가게 된다. 유치원까지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던 격차가 초등학교에 가는 순간 확 난다. 학업 성취 기능이 떨어지고 또래와의 관계도 멀어진다. 이때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들의 존재를 파악하고, 친구들에게 이들을 이해시키고 배려해줄 수 있는 문화를 가르쳐야 한다. 성인이 되면 성과를 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까 회사 업무 등에서 배제된다. 모두가 함께 갈 수 있도록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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