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만이 바닥을 헤엄친다, 272kg 찰리의 생애 마지막 5일 ‘더 웨일’ [OTT 내비게이션④]

홍종선 2023. 9. 4.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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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슬러’ ‘블랙 스완’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신작
배우인생 바닥까지 갔던 브렌든 프레이저의 할리우드 금의환향
초고도비만 은둔자 찰리로 분한 배우 브렌든 프레이저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영화 ‘더 웨일’을 보고 싶었던 이유는 배우의 ‘변신’이었다. 흔히 배우가 새로운 연기를 선보이면 변신에 성공했다고 얘기되지만, 실제로 몸(身)은 그대로다. 브렌든 프레이저는 몸을 바꾸고, 그 안에 배우 생활 30년에서 배운 모든 것에 자연인 브렌든 내면의 모든 감정을 끌어내 쏟아 부었다. 찰리가 탄생했다.

브렌든 프레이저는 272kg의 거구 찰리가 되기 위해 몸무게를 늘렸고 매번 6시간씩 특수 분장을 했다. 189cm의 키에 근육질 몸매, 선한 눈빛에 시원한 이목구비로 ‘조지 오브 정글’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미이라’ 시리즈 등 어드벤처 블록버스터의 액션스타였던 그가 고래(whale, 웨일)만한 덩치에 머리카락마저 듬성듬성한 중년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런데! 제7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눈물을 훔치며 7분의 기립박수를 받고,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스무 개 넘는 트로피를 휩쓸며 미국배우조합과 숱한 비평가협회가 주는 상을 타고,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것은 단지 외모만 바꿨다는 게 아니다. 무엇을 보여주었기에 이견 없는 찬사가 이어지는지 궁금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보여 주지 않았다. 느끼게 했고, 서서히 생각하게 했다. 영화를 보면서 점점 찰리의 몸은 보이지 않았다.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음직한 상처와 행했을 법한 실수, 그것들에 대한 직면과 정면 돌파를 주저하고 두려워하는 회피 ‘그 자체’가 산처럼 커진 살덩이일 뿐이었다.

여기서 끝난다면 영화가 아니라 냉혹한 현실일 것이다. 영화 ‘더 웨일’(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 수입 그린나래미디어, 배급 ㈜스튜디오 디에이치엘)은 그다음, 상처와 실수에 대한 회복과 만회 없이 잊은 척 혹은 도망치듯 살고 있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얘기한다. 하도 천천히, 빙 돌아오는 통에 폐부를 찔릴 줄 모르고 넋 놓고 그 얘기를 듣게 한다.

꽤나 민감한 얘기인데, 마음의 문턱을 높이거나 문을 닫아걸지 못한 이유가 있다. 평범한 우리로서는 하기 힘든 해결과 회복을 해내는 ‘영웅 찰리’로 그리지 않기 때문이다. 찰리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 생의 마지막 5일, 그 안타깝고도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일들과 마지막 깨달음이 영화 ‘더 웨일’이다.

고래는 깊은 바다에서 헤엄친다 ⓒ 넷플릭스 제공

찰리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가 볼까. 찰리는 대학교에서 작문을 가르치는 강사다. 코로나19에 맞물려 혹은 사이버대학에서 온라인으로 강의하는 강사다. 분명 화상수업인데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만 보일 뿐, 화면 중앙자리 강사 란 부분은 얼굴 없이 까맣다. 수업 내용은 매우 좋지만, 한 학기가 다 가도록 노트북카메라 고장을 핑계로 음성으로만 강의 중이다. 학생들이 보면 깜짝 놀랄 자신의 외양을 감춘 것이다.

흔히, 익명이 되지 않더라도 얼굴만 가려도 거칠어지는 게 대수다. 그러나 찰리는 예의와 다감이 넘친다. 학생들에게만이 아니다. 마치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그 누구에게든, 어떠한 경우에든 화내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듯 통제력이 대단하다. 심지어 그 와중에도 상대를 이해하려 애쓰고, 긍정적 측면을 발견하려 애쓴다. 안쓰러울 정도다.

함께 딸을 낳은 전처에 따르면 찰리는 원래도 긍정의 화신이었는데, 현재는 그 이상이다. 상대를 원망하거나 분노하는 방법을 빼앗겨버린 사람 같다. 왜일까.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죄의식 탓이다. 상처는 자신도 받았건만 자신이 준 상처에 더욱 아파하고, 삶을 내려놓은 듯 칩거에 들어간 그 시작 역시 자신 탓이라고 생각한다.

찰리의 죄는 사랑이었다. 딸이 여덟 살 되던 해 사랑에 빠졌고, 찰리의 금지된 사랑에 아내는 찰리를 남편과 아빠의 자리에서 축출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선택한 사랑이었건만 그 사랑은 삐쩍 말라가다가 스스로 목숨을 던졌다. 곡기를 끊고 불면의 밤을 보내던 끝이었다. 찰리는 연인에게 네게 모든 걸 주겠다, 네게는 나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지만. 하나님을 섬기던 연인은 영보다 육에 가까워진 삶이 괴로웠는지 낙하했다.

사랑했던 시간보다 긴 시간을 찰리는 혼자 지냈다. 세상과 담을 쌓고 지냈다. 문 밖으로 잘 나오지 않을 정도로 움직이지 않고,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잊으려 발버둥치는 사이 찰리의 몸은 고래가 됐다. 고래가 땅에 살려니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오랜 친구이자 간호사인 리즈(홍 차우 분)만이 그 문을 드나들었다.

딸이 열여섯 살이 되도록, 8년의 시간 동안 찰리가 무위도식한 건 아니다. 열심히 강의했고, 집세와 먹는 것 외에는 모두 저금해서 딸 앞으로 통장을 만들어 놓았다. 거동조차 힘든 몸에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치료는커녕 환자용 침대나 의료 보조기구를 사지 않았다. 연인이 떠난 뒤 찰리가 목숨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딸 앨리(세이디 싱크 분)에게 줄 통장을 불려가는 목표 하나였다.

찰리의 마지막 생애 5일에는 찰리네 문턱을 넘어오는 사람이 부쩍 는다. 피가 섞여야만 가족인가, 가족 이상으로 찰리를 보살펴온 리즈는 기본. 다달이 돈만 보냈을 뿐 아무리 함께 살며 키우지 못했다지만 막무가내 태도로 말에 송곳을 달아 찌르는 딸 앨리는 찰리가 불렀다지만. 찰리의 연인이 믿었던 새생명교회의 선교사라며 찰리를 구원해 주겠노라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오는 토마스(타이 심킨스 분), 딸을 찾아 왔다가 초고도비만으로 죽어가는 찰리를 보곤 자신을 싱글맘으로 만든 분노는 금세 잊고 연민의 정을 표출하는 전처 메리(사만다 모튼 분)는 초대한 적 없으나 찾아온다.

진즉에 만났어야 할 사람들이고 풀어야 하는 매듭이 있는 인연들이다. 처음엔 고성이 오가고 배척이 일상이지만, 결국 소통한다. 마치 죽기 전에 밀린 인생숙제를 다하듯 마음과 마음 사이에 물꼬가 트인다. 그리고 문턱은 넘어서지 않았지만, 목소리로만 알고 지내던 피자 배달부 댄(사티야 스리드하단 분)과 온라인 강의를 듣는 학생들도 꽁꽁 숨겨왔던 찰리의 비대한 몸을 보게 된다는 점에서, 불통이 무너진다.

영화의 제목이 ‘더 웨일’인 것은 찰리의 덩치가 고래만해서만은 아니다. 글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찰리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 관해 과거의 누군가가 쓴 독후감을 통째로 외우고 있다. 특히나 숨이 가빠 죽어가는 순간엔 그 글을 읽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한다. 머리 한쪽으로는 누구의 글인지를 추리해 가며 다른 쪽으로는 영화가 말하고 싶은 주제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보노라면 시간이 빠르게 흐를 것이다.

필자는 한참동안을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엉뚱한 추측을 하다가 뒤늦게 글쓴이의 정체를 깨달았다. 깨닫는 순간, 느릿하게 맞춰져 가던 퍼즐이 단박에 완성되듯, 이야기의 앞뒤가 착착 맞붙는다.

작품의 주제는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보고 생각한 것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 절대 실수라고 말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면 적어도 그 무엇(사람이든 행위든)과는 벽을 쌓지 말 것, 지켜낼 것’ 정도다. 각자 처한 상황이나 지닌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이야기와 생각이 포함돼 있고, 주제의식도 마찬가지다.

극중 ‘모비딕’ 감상문이 꽤나 좋은데다 그것을 외우는 브렌든 프레이저의 음색이 너무 좋아서 다시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 ‘더 웨일’. 찰리 사스필드 교수가 학생들에게 말하는 작문법, 좋은 글 쓰는 방법을 그대로 인생에 대입해 보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도 보인다. 원작이 된 연극 ‘더 웨일’의 작가 사무엘 D. 헌터가 직접 쓴 시나리오의 힘이 크다.

영화 ‘미이라’ 3편 당시의 배우 브렌든 프레이저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그래도 가장 좋은 건 은둔한 자, 인생 바닥까지 내려간 찰리의 매력이다. 형언하기는 힘든데 볼수록 마음이 간다. 아마도 영화 ‘미이라’ 시리즈 액션을 찍다가 이어진 부상과 반복된 수술, 이혼과 자폐를 앓는 아들 등 가정사의 힘겨움 등으로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자신의 많은 것을 바쳤던 할리우드에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남미 저예산 영화에 출연하며 밥벌이를 했던 10년의 바닥 세월, 그를 이겨내고 멋지게 수면으로 다시 올라온 ‘고래’ 브렌든 프레이저의 진정성이 빚은 찰리의 매력일 터이다.

배우 브렌든 프레이저를 남미 영화 예고편에서 발견해 복귀시킨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더 레슬러’ ‘블랙 스완’에 이어 또 하나의 수작을 건져 올렸다. 늘 그렇듯 본인 입으로 희망을 말하지 않고, 우리가 희망하게 한다. 고래만이 깊은 바다를 헤엄칠 수 있다, 당신이 만약 바닥에 있고 잘 버텨내고 있다면 당신은 고래일지 모른다. 물살을 가르며 넓은 바다 위로 날아오르는 도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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