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불발탄 조작' 당시 무전병 최초 증언 "신원식, 짧게 쏘라 했다"
[박현광, 김도균 기자]
▲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 (자료사진) |
ⓒ 남소연 |
"중대장(신원식 대위)이 몰랐다는 것은 거짓말이에요. 본인이 (60mm 박격포를) 쏘라고 했고, (사고 직후 바로) 현장 무전병 통해서 연락이 와서 그 순간에 훈련 상황 종료를 했어요."
1985년 10월 24일 훈련 중 '잘못 발사된' 포탄을 맞고 사망했지만, '불발탄을 밟은 것'으로 사인이 조작된 A이병과 함께 훈련에 참가했던 김아무개 일병은 사고 당시 중대장 무전병이었다.
김 일병은 중대장이었던 신원식(현 국민의힘 의원)대위와 함께 OP(관측소)에 머물며 지근거리에서 사고를 지켜봤던 핵심 증인이었지만, 이 사건을 조사한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아래 군진상규명위)에 진술을 한 인물은 아니다.
그랬던 그가 지난 1일 <오마이뉴스>와 전화 인터뷰에 응했다. 그 이유를 언론 보도 이후에도 '포탄 사망'을 몰랐다고 말하는 신 의원의 거짓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첫 번째 포탄 멀리 떨어지자, 중대장 '짧게 쏘라' 호통"
김씨는 21연대 2대대 5중대 3소대 소속 소대장 무전병이었다. 하지만 1985년 10월 24일 경기도 포천의 승진훈련장에서 진행된 공지합동훈련 중 하나였던 '고지 점령 훈련' 당시에는 휴가를 나갔던 중대장 무전병 대신 신 의원의 무전병으로 투입됐다.
그는 훈련 때 중대장의 명령으로 60mm 박격포 두 발을 발사했다고 기억했다. 이때 첫 번째 포탄이 목표 지점보다 멀리 떨어지자, 중대장이었던 신 의원이 화기소대를 질타했다는 것. 김씨는 OP(관측소)에 중대장과 함께 있으면서 상황을 지켜봤다.
▲ 60mm 박격포 |
ⓒ 위키피디아 커먼스 |
김씨의 증언은 군진상규명위에서 확보한 당시 부대원들 진술과 일치한다. 1소대 돌격조로 사망한 A이병과 가까이 있었던 이아무개 상병은 군진상규명위 조사에서 "첫 번째 박격포에서 포탄을 사격했는데, 우리가 대기하고 있던 능선의 타격 지점을 맞추지 못하고 능선 뒤쪽으로 넘어갔다"며 "두 번째 포탄을 사격했고, '쾅' 소리와 동시에 포탄이 망인의 발 옆으로 떨어진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
M60 사수였던 조아무개 병장 또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포탄 쏘는 각도가 있을 거 아니에요. 멀리 쏘려면 이렇게 눕혀서 쏴야 하잖아. 근데 '푹' 하고 위로 쏘는 거예요"라고 사고 때 사거리 측정이 잘못됐음을 설명했다.
당시 박격포 사수였던 박아무개 상병 역시 "박격포 사거리는 1000m를 넘어야 하는데 사격 전 화기소대장이 약 600~700m 사거리를 불러줬다"며 "내가 '사거리가 너무 짧습니다'라고 보고했지만, 화기소대장이 '이 새끼들이 빨리 쏘라면 쏴'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화기소대장을 맡았던 김아무개 선임하사는 복무 기간 중 박격포를 단 한 차례도 다뤄본 적이 없었지만, 기존 화기소대장이 부재한 상태에서 지휘관의 명령으로 훈련에 대체 투입돼 있었다.
김아무개 선임하사는 군진상규명위 조사과정에서 "나는 박격포를 운용해본 적이 없어 관련 지식이나 이해가 전혀 없었는데, 중대장이 고지보다 멀리 한 방 쏘라는 지시만 했을 뿐 어디 지점을 쏘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다"며 "(박격포 위치에서) 공격진이 주둔한 곳은 보이지 않았고, 거리 감각이 없는 상태에서 포반장에게 지시해 목표를 1.5km 정도로 잡고 쐈다"고 진술했다.
당시 '고지 점령 훈련'은 고지의 7~8부 능선에 공중 지원 폭격과 후방 화기소대의 박격포 포탄 사격 이후, 1~2부 능선에서 대기하던 돌격조 보병이 진격해 고지를 탈환하는 훈련이었다. 군진상규명위는 조사를 통해 부대의 사거리 측정 실패로 박격포 포탄이 A 이병에 떨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불발탄 밟아서 죽은 것이라고 정신 교육받아"
하지만 사고 이후 부대는 부대원들을 '입단속' 한 후, A 이병이 불발탄(M203 유탄발사기 40mm 고폭탄)을 밟고 사망한 것으로 사건을 조작·은폐했다. 김씨 역시 부대의 '입단속' 사실을 기억했다.
"상황 종료하고 부대에 복귀했어요. 그리고 부대 복귀해서 정신 교육을 받았어요, (부대원들) 전부 다. (A 이병은) M-203 불발탄 밟아서 죽은 것이라고 그때 중대 전체가 모여서 교육받았죠. "
그는 '중대원들은 A 이병이 포탄을 맞고 사망했던 것을 인지했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중대원들이 다 알았다"라며 "그때 (A 이병이 소속된)1소대장이 그 사건으로 인해서 거의 밥을 못 먹다시피 했다"고 회고했다.
중대장이었던 신 의원은 최근 군진상규명위 조사에서 '박격포 포탄 사망'을 인지하지 못했고, '불발탄 밟은 것'이라는 건 대대장에게 들어서 알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씨는 사고 당시 중대장이 대대장에게 따로 보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훈련을 종료했다고 기억했다.
"사고 났을 때 중대장이 어떤 '무전을 치라'든지 그런 건 없었어요. '대대에 보고하라'는 지시도 없었어요. 바로 상황을 종료했어요. (대대장이 어떻게 알게 됐는지) 그건 나도 모르죠. 나는 파견 나간 거였기 때문에 종료되고 바로 소대로 복귀했으니까."
"신원식 너무 한다 싶었다"
김씨는 A 이병이 사망한 뒤 상응하는 처우를 받은 줄로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접한 뒤 안쓰러운 마음이 컸다고 전했다. 군진상규명위에 따르면, A 이병은 '공무수행 중 본인의 고의 또는 중과실이 아닌 사고로 사망'했을 때 부여받는 '순직 9항'으로 분류됐다.
"나는 그때 A 이병이 국립묘지도 가고 잘 처리됐다고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처우도 별로 안 좋게 됐다는 보도를 보니까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군진상규명위는 지난해 12월 결정문에서 "부대원들의 공통된 진술 등을 고려하면, 망인의 사망은 훈련 과정에서 불발탄을 밟아서 사망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사거리 측정 없이 급격하게 사격 된 박격포 포탄에 의해 사망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망인의 소속 부대 지휘관과 간부들은 망인의 사인을 불발탄을 밟아 사망한 것으로 왜곡·조작함으로써 사고의 지휘 책임을 회피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 의원은 <오마이뉴스> 보도 이후 입장문을 내고 "군진상규명위의 결정이야말로 실체적 진실을 뒤집는 허위 결정"이라며 "특히 군진상규명위는 서로 대립되는 진술을 놓고 최소한의 검증과 확인도 없이, 합리적 논리도 없이 입맛대로 취사선택했다"고 반박했다.
김씨는 신 의원의 입장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TV 보도를 보면서, 저 양반(신원식 의원) 너무한다 싶습디다."
[관련 기사]
- [단독] 신원식 중대장 시절 '부대원 사망' 조작 결론 https://omn.kr/25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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