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쌍방 착오로 지급된 부가세 반환 때 매입세액 공제해야"
지방자치단체가 용역계약을 체결하면서 부가가치세 면세 대상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부가세를 포함해 용역대금을 결정·지급한 경우, 지급한 부가세액 상당액에서 매입세액을 공제한 금액만 반환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애초 부가세 면세 대상이라는 점을 알았다면 입찰에 참가한 업체들이 매입세액을 비용에 포함시켜 용역대금을 결정했을 것이라는 이유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서울 영등포구청이 폐기물처리업체들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영등포구청은 2008∼2012년 관할구역 내에서 배출되는 수도권매립지 반입불가 폐기물 처리를 위해 3개 폐기물처리업체와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용역 대금 19억5000여만원을 지급했다. 여기에는 1억7000여만원의 부가세도 포함됐다.
그런데 부가가치세법에 따라 업체들이 제공하는 생활폐기물처리 용역은 부가세 면세 대상이었다. 구청은 뒤늦게 내부감사 과정에서 이를 파악해 2013년 11월 잘못 지급된 부가세를 돌려달라고 업체들에 요구했다.
피고 업체들은 과세관청에 부가세 경정청구를 한 뒤 환급받은 부가세 환급액을 영등포구청에 반환했는데, 애초 영등포구청이 지급한 용역대금에 대한 부가세 매출세액에서 매입세액을 공제한 금액을 반환했다.
통상 부가세를 국가에 납부할 때는 타인에게 재화·용역을 제공해 받은 부가세(매출세액)에서 사업 유지에 쓴 지출에 붙은 부가세(매입세액)를 뺀 금액만큼 납부한다.
그런데 이번 사건처럼 면세 대상 사업을 할 때는 부가세법에 따라 매출세액에서 매입세액을 공제하지 못한다. 사업자가 매입세액을 온전히 부담하게 되는 만큼 비용이 증가해 원가도 올라가는 셈이다.
이 점을 반영해 지방계약법은 지자체가 부가세가 면제되는 재화·용역을 공급하는 자와 계약을 체결할 때 해당 공급자가 부담할 원재료의 부가세 매입세액을 입찰 예정가격에 포함하도록 정하고 있다.
앞서 1심과 2심은 영등포구청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피고 회사 3개사 중 지방재정법이 정한 5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된 부당이득반환채무를 지난 한 곳은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만 반환을 인정했지만, 나머지 두 곳에 대해서는 전액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피고 회사들은 현존이익이 남아있지 않다거나, 영등포구청의 과실로 인해 매입세액을 공제하지 못한 손해와의 상계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항소심 과정에서 소멸시효가 완성된 부분에 대한 반환채무를 면한 회사는 강제조정이 이뤄졌고, 전부 패소한 두 곳은 상고해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됐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앞서 하급심 재판부는 영등포구청이나 피고 회사들이 해당 용역의 공급이 과세 대상이라는 공통의 착오에 빠져 있지 않았다면, 구청이 부가세를 부담하는 내용의 약정은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부가세 명목으로 지급된 금액 전부를 부당이득으로 봐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계약 체결 당시 양측이 면세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피고 회사들이 부담해야 할 매입세액을 감안해서 비용(용역대금)을 결정했을 것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와 피고들이 이 사건 각 용역계약 체결 당시 이 사건 용역의 공급이 부가세 면세 대상이라는 사정을 알았다면 원고가 피고들에게 부가세를 제외하고 기존 용역대금에 상당한 금액만을 지급하기로 약정했을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그 같은 판단의 근거로 "이 사건 용역의 공급은 부가세 면세 대상임에도, 원고와 피고들은 이를 부가세 과세 대상이라고 착오해 이 사건 각 용역계약을 체결했다"라며 "그로 인해 이 사건 용역의 공급이 부가세 면세 대상일 경우, 피고들이 공제받지 못하는 매입세액을 용역대금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 약정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일반적인 과세사업의 경우, 사업자는 용역을 공급받는 자로부터 매출에 관한 부가세를 수령한 다음 자신이 부담했던 매입세액을 공제한 차액만을 국가에 납부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매입세액을 부담하지 않는 반면, 면세사업의 경우 부가가치세법에서 매입세액을 공제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사업자는 용역을 공급받는 자로부터 매출에 관한 부가세를 수령하지 못함에도 매입에 관한 부가세를 부담하게 돼 그만큼 원가가 증가하게 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관련 법령에서 부가세가 면제되는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하는 자와 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해당 계약대상자가 부담할 비목별 원재료의 부가세 매입세액 해당액을 예정가격에 합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라며 "원고는 이 사건 용역이 부가세 과세 대상임을 전제로 용역예정금액의 추정가격과 부가세를 별도로 명시해 각 용역전자입찰공고를 했다. 이에 따라 피고들은 이 사건 용역과 관련된 매입세액을 공제받을 수 있다는 계산 하에 각 입찰에 참가했고 원고와 이 사건 각 용역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원심은 피고들이 원고에 대해 원고가 지급한 부가가치세 전액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했다"라며 "이러한 원심판결은 부당이득반환범위 및 부가가치세법상 세액 납부, 법률행위 보충적 해석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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