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이승만, 하와이로 양자 오자 "4·19때 다친 애들 어찌 됐어?"
이승만 전 대통령의 아들 이인수(92) 박사가 4·19 혁명 63년 만에 국립 4·19 민주묘지를 찾아 아버지를 대신해 사과하던 지난 1일,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 탄 이 박사 곁에는 그의 부인 조혜자(81) 여사가 있었다. 이화여대 불문학과를 졸업한 뒤 페스탈로치 재단 장학금으로 스위스에서 연수를 하다 중앙일보 스위스 초대 통신원으로 일하기도 했던 조 여사는 한표욱 전 오스트리아·스위스 대사의 중매로 이 박사와 결혼했다. 이 전 대통령이 미국 하와이 망명 중 서거하고 3년 뒤인 1968년 결혼해서 시아버지 얼굴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사저였던 서울 종로의 이화장(梨花莊)을 그의 시어머니인 프란체스카(1992년 작고) 여사와 지켜온 그는 남편, 시어머니 그리고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들려준 이 전 대통령의 얘기를 누구보다 많이 기억하고 있다. 지난 1일 이 박사의 참배 직후 중앙일보는 조 여사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조 여사는 “이 박사가 (4·19 희생자와 유족에게) 많이 사과하고 싶어했다. 이 양반 소원이 사과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박사 생전에 사과할 수 있을까 했는데 참 감사하게도 국가보훈부가 자리를 잘 주선해줬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에게는 세 명의 양아들이 있었다. 첫째 은수, 둘째 강석(이기붕 전 부통령의 친아들), 셋째가 이 박사다. 이 박사는 4·19로 하야한 이 전 대통령이 하와이 있을 때인 1961년 11월 만 30세가 넘어 호적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전주 이씨에 양녕대군파, 항렬도 아들뻘로 딱 맞아서 전주 이씨 종친회에서 주선했다고 한다.
이 박사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1960년 4월 18일 고려대 학생 시위 때는 직장인으로 시위에 동참했다. 조 여사는 “당시 이 박사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에 입사했다”며 “4월 18일에 고대 후배들이 데모하니까 같이 갔었는데, 이기붕씨 집 앞까지 갔었다”라고 말했다. 1년여 뒤 자신의 아버지가 되는 이 전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 박사는 양자 입적 뒤 이듬해인 1962년 12월 하와이로 건너가 이 전 대통령 부부를 직접 만났다. 당시 이 박사를 매우 반갑게 맞은 이 전 대통령 부부가 화환을 목에 건 이 박사와 함께 찍은 사진도 남아 있다. 조 여사에 따르면 당시 이 박사를 만난 이 전 대통령은 “그 다친 애들은 어떻게 됐어”라고 물으며 4·19 때 부상당한 학생들부터 걱정했다고 한다. 이 박사는 “나라에서 잘 치료하고 잘 보살피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라”고 안심을 시켰다고 한다. 다음은 조 여사와의 일문일답.
Q : 이 박사가 이 전 대통령에게 사과를 제안한 적은 없었을까요.
A : “이 박사 제안보다 먼저 당신(이 전 대통령)이 ‘학생들은 어떻냐’고 물어본 거잖아요. 대통령이 다친 학생을 그렇게 많이 걱정했대요. (※이 전 대통령은 4·19 직후인 4월 23일 예정된 국무회의를 취소하고 다친 학생들이 치료받던 서울대병원에 갔다.) 대통령이 다친 학생을 만나고 와서 차 안에서 통곡했대요. 제가 운전기사에게 직접 들은 말이에요. 대통령이 ‘이 늙은이가 맞아야 할 총알을 애들이 맞았다. 이제 내가 국민이 물러서라면 물러서겠다’ 그랬대요. (※이 전 대통령은 4·19 일주일 만인 4월 26일 하야 성명을 발표했고, 이튿날 경무대를 떠나 이화장으로 돌아갔다.)”
Q : 이 전 대통령은 하와이에서 어떻게 지냈나요.
A : “(한국으로) 오시려고 몇 번을 짐을 싸고 그러셨는데, 못 돌아오셨어요. 몇 번 짐을 싸다가 또 못 오게 하니까 또 짐도 풀어놓고 몇 번 그러셨거든요. 한국을 굉장히 가고 싶어 하셨어요. 하와이 생활도 어려우셨어요. 이 박사가 하와이 요양병원에 간병할 때 대통령은 늘 한국 쪽을 바라보고 계셨대요. 어느날 요양병원 원장이 ‘뭘 그렇게 곰곰이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대요. 그러니깐 대통령이 ‘머니(money)’라고 하시더래요. 이 박사가 직접 옆에서 그걸 보고 깜짝 놀랐대요. 다른 것도 아니고 ‘돈’이라고 하니깐요. 원장도 ‘머니를 왜 그렇게 원하시냐’고 물었는데, 대통령이 ‘머니, 고 백 투 코리아(money, go back to Korea·한국으로 돌아갈 돈)’라고 답하더래요. 한국에 갈 돈이 없었던 거죠. 한국 정부도 막았지만, 금전적인 문제도 있었던 거죠.”
Q : 시아버지는 생전에 뵙지 못했지만, 시어머니 프란체스카 여사와는 오랜 기간 함께 지내셨다고 하는데.
A : “어머님은 친정인 오스트리아에 계시다가 우리 부부가 1969년 애를 낳으니 당신이 직접 손주를 키우겠다며 한국에 오셨어요. (큰아들) 100일 때 왔을 거에요. (※이인수-조혜자 부부는 슬하에 병구·병조, 두 아들을 뒀다.) 어머님은 원래 독립운동 뒷바라지하던 분이고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결혼하셔서 옷을 잘 기워 입으셨어요. 훗날 우리 애들 내복 바지도 기워 입혔어요. 우리 애들이 학교에서 체육 시간에 옷 벗으면 놀림을 받았어요. 그렇게 많이 옷을 기워 입고 다니는 애들이 없으니까요. 애들이 어린 마음에 집에 와서 ‘할머니, 새것 사주세요’라고 말하니까 어머니께서 ‘너희 할아버지는 내가 이렇게 속옷을 꿰매드리면 잘 입으셨단다’고 했어요.”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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