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안 걸리려면 우리한테 와라"…하얀 가운, 수상한 그들 [마약상 된 의사들①]
[마약상 된 의사들①]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A의원은 지난해 환자 378명에게 프로포폴을 투약했고, 처방량은 2369개였다. 환자 수와 투약량 모두 전년(185명, 735개) 대비 2배, 3배로 급증했다. 미다졸람과 디아제팜, 케타민 처방량도 급증세였다. 모두 신씨 몸에서 성분이 검출된 마약류다.
신씨가 방문한 강남구 논현동의 B의원도 마약류 처방으로 이름난 곳이다. 지난 6월 한 마약류 중독 치료보호기관은 B의원에 “무분별한 마약류 투약을 삼가달라”라는 경고 공문을 보낸 적도 있다. 치료 대상 환자들 중에 B의원에서 마약류를 처방받은 경우가 많았는데 중독 환자 중 한 명이 “의료 외 목적으로 마약류를 놔주던 B의원이 제발 나를 받지 않게 해달라”라고 하소연한 데 따른 조치였다.
일부 의사들이 사실상 마약류 공급책으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범정부 차원에서 ‘마약과의 전쟁’을 전개하고 있지만, 꾸준히 증가 중인 의료인들의 마약 범죄는 사실상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 AㆍB 의원 소식을 접한 치료보호기관의 한 전문의는 “상당수 의사가 마약딜러 수준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 중앙일보가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식약처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2020~2022년)간 마약류 의약품 과다(오남용) 처방으로 적발된 병원 수는 259곳에 달했다. 특히 지난해는 역대 최다인 89곳이 적발됐다. 의료인 마약류 사범 수도 급증하고 있다. 대검찰청의
「2022년도 마약류 범죄백서」
에 따르면 의료인 마약류 사범 수는 2018년 98명에서 지난해 165명으로, 4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중앙일보가 한 치료보호기관의 마약류 중독자 환자 진료 내용을 확인한 결과, 한 병원에선 내원객에게 “이렇게 프로포폴 맞는 거 불법이니까 안 걸리려면 우리 병원만 오라”고 안내했다. 또 마약류 불법 투약 혐의로 재판을 받으러 간다는 환자에게 “베드(Bed) 비워 둘 테니 재판 끝나고 오라”고 한 병원도 있었다. 의사 C씨는 서울 성동구에서 병원을 운영하며 내원객 4명을 상대로 248회에 걸쳐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해 준 혐의로 2021년 1월 징역 6개월의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C씨의 판결문에는 “내원객들의 프로포폴 의존성을 높여 내원하도록 유도했다”고 적혀 있다.
마약류 약을 ‘셀프 처방’하는 수법으로 빼돌린 뒤 본인에게 오남용하거나, 불법으로 주변에 공급하기도 하는 의사도 적지 않다.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2019~2021년 동안 매년 의사 8000명가량이 약 2만 5000건(85만정 수준)의 마약류를 셀프 처방하고 있다. 특히 의사 D씨는 2021년 한 해에만 26회에 걸쳐 마약류 1만 9792정을 자신에게 처방했다. 만일 본인에게 전부 투약했다면 D씨의 하루 평균 투약량은 54.3정에 달한다.
전북 전주시 병원 응급실에서 일한 의사 E씨도 50회에 걸쳐 자신의 아버지 등을 진료한 것처럼 꾸며 수면유도제로 쓰이는 졸피뎀 679정을 빼돌린 뒤 투약했다가 2021년 6월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서울 한 성형외과 원장 F씨는 프로포폴 12병을 빼돌리고 여자친구에게 투약했다가 사망에 이르게 해 2020년 10월 징역 1년 6개월의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입증 어려운 불법 처방…도난·분실도 5년간 1만 4676건
수사기관 및 전문가들은 이처럼 수면 위로 드러난 의사들의 마약류 범죄는 ‘빙산의 일각’일 뿐, 적발되지 않은 사례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의사들의 마약 공급 및 투약은 혐의를 포착하거나 입증하는 게 극히 어렵다는 점이다. 김대규 경남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장은 “의사의 마약류 처방ㆍ투약 등의 행위가 의료 행위 목적이었는지 불법 오남용 목적이었는지 증명하기가 매우 어렵다”라고 말했다. 실제 AㆍB 의원은 ‘롤스로이스 사건’이 화제가 된 이후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지만, 이전까지 별다른 방해 없이 마약류 의약품들을 대량 처방했다.
두 곳만이 아니다. 초강력 마약성 진통제 성분인 펜타닐을 대량 공급해 수사당국이 ‘중독자들의 성지(聖地)’로 지목했던 서울 성북구 G의원의 경우 형사처벌(금고 이상 형)을 받은 이력이 한 번도 없다. 반면 해당 병원에서 펜타닐을 구해 스스로 투약하거나 재판매 등을 했던 환자들을 처벌한 사례는 7건(확정 판결 기준)이 확인됐다. 해당 의원의 원장은 중앙일보에 “(처벌받은) 환자들이 너무 아프다고 해 의료 전문가로서 진통제를 처방해준 건데 알고 보니 꾀병을 부리면서 나를 속였던 것”이라며 “오히려 우리가 피해자”라고 말했다.
고의적인 범죄 뿐 아니라 관리 부실 문제도 심각하다.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 6월까지 병원 등에서 발생한 마약류 사고(도난ㆍ분실ㆍ파손ㆍ변질)만 총 1만 4676건에 달했다. 백 의원은 “마약류 관리 부실 문제는 이후 불법 투약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의료용 마약류 처방 환자 1946만
마약류 문제를 뿌리 뽑으려면 소비보다 공급 차단에 행정력과 수사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일부 의사들의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처방 및 투약을 차단하는 게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해 의료용 마약류 처방 환자 수는 약 1946만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민 2.6명 가운데 1명꼴이다.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앙중독재활센터장은 “해외 밀수나 밀조보다, 의사들의 일탈이 더 광범위하고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흥희 한성대 마약알코올학과 교수는 “수많은 의료 기관을 경찰이 일일이 단속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며 “마약류관리법에 따라 식약처가 일정 수준의 전문성을 갖춘 사람을 마약류 감시원으로 임명할 수 있는데, 퇴직 전문가들을 경찰청이나 관세청의 의료 기관 점검에 활용하는 등 감시망을 촘촘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민중·신혜연·이영근·장서윤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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