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수어 통역이 있는 시 낭독회

2023. 9. 4.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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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광주의 독립서점이자 복합문화공간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를 찾았다.

수어 통역사, 시인, 사회자 셋이 무대에 나란히 앉은 채 행사는 진행됐다.

시 낭독은 물론 시인과 사회자의 토크, 관객들의 질문 등 모든 대화를 수어 통역사가 수어로 동시통역하는 방식이었다.

시 낭독이라는 청각 경험이 시각 경험으로 확장되기에 수어 통역은 청인 관객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로 다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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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오 시인


지난주 광주의 독립서점이자 복합문화공간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를 찾았다. 동료 시인의 낭독회에 관객으로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누가 시를 읽느냐는 질문이 심심찮게 들리는 요즘에도 시를 읽고 쓰는 사람들이, 시인의 목소리로 낭독되는 시를 들으려 모여드는 이들이 있다. 그날도 자리는 거의 만석이었다.

관객으로도 낭독자로서도 이런저런 행사에 참여해 보았지만 그날의 낭독회는 경험했던 것 중 가장 특별했다. 수어 통역이 함께했기 때문이었다. 수어 통역사, 시인, 사회자 셋이 무대에 나란히 앉은 채 행사는 진행됐다. 시 낭독은 물론 시인과 사회자의 토크, 관객들의 질문 등 모든 대화를 수어 통역사가 수어로 동시통역하는 방식이었다.

수어 통역을 필요로 하는 관객이 그날 자리했는지 나는 모르지만, 청인으로서도 수어와 함께하는 낭독회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시 낭독이 시작됨과 동시에 움직이는 수어 통역사의 손을 바라보며 몸짓 언어로 번역되는 시가 허공에서 어떤 모양을 만들어내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서점의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참여자들은 서로를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을 공유하는 중이었다. 또한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듣기’라는 행위가 모두에게 일괄적으로 가능한 것이라는 전제가 얼마나 특권적인 것이었는지 감각할 수 있었다. 시 낭독이라는 청각 경험이 시각 경험으로 확장되기에 수어 통역은 청인 관객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로 다가가고 있었다.

시란 읽는 것인데 다시 수어로 통역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질문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책으로 읽을 수 있는 시를 굳이 행사장에 찾아가 시인의 낭독으로 듣는 것처럼, 라디오와 오디오북을 듣는 것처럼 글이 아닌 말로만 경험될 수 있는 고유함이 있다. 시의 섬세하고 다양한 의미를 전달하는 몸짓 언어를 바라보며 나에게는 한 번도 말인 적 없던 수어 역시 하나의 말임을 실감했다. 말로 이뤄지는 모든 자리에 수어 통역이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어 본다.

김선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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