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갑자기 ‘카르텔’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국가 예산안은 그 정부가 무엇을 하는 데 얼마나 쓸지를 보여주는 계획안이다.
세수 전망도 밝지 않은 상황에서 한정된 국가 재정을 복잡하고 커질 대로 커진 각 분야에 분배해 투입하는 예산안을 짜는 일은 고도의 작업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연구·개발(R&D) 예산을 무려 16.9%나 줄였다.
정부가 내건 이유가 무엇이었던 간에 이번 예산안이 과학기술계에 '미래가 없다'는 시그널을 줬다는 의미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가 예산안은 그 정부가 무엇을 하는 데 얼마나 쓸지를 보여주는 계획안이다. 세수 전망도 밝지 않은 상황에서 한정된 국가 재정을 복잡하고 커질 대로 커진 각 분야에 분배해 투입하는 예산안을 짜는 일은 고도의 작업이다. 조금이라도 더 받아내려는 줄다리기, 외부 입김도 끊이지 않는다. 늘려도 문제, 줄여도 문제다.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하기에 예산안은 정부의 국가 운영 원칙이나 방향성을 담게 마련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연구·개발(R&D) 예산을 무려 16.9%나 줄였다. 국가채무 등을 고려해 총지출증가율을 2.8%로 낮춘 ‘긴축 재정’이라는 설명을 감안하더라도 R&D 예산 규모 변화는 충격이었다. 3조원 넘는 예산이 ‘싹둑’ 잘려나가면서 전체 지출 대비 비중은 4~5%에서 3%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더욱이 이번은 지난해 5월 출범한 윤석열정부의 두 번째 예산안이다. 지난해 처음 꾸렸던 올해 예산안에서 정부의 R&D 투자를 4.3% 늘려 31조원을 배정했던 것을 생각하면 ‘돌아섰다’는 표현 외엔 떠오르지 않는다. 지난 정권에서 코로나19 등 긴급 현안으로 급격하게 늘어난 예산의 구조조정이 필요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두 자릿수 삭감률은 유례없는 수치다. 특히 미래를 바라보는 투자에 가까운 R&D 예산을 10분의 1이 넘는 규모로 잘라내는 건 같은 정부의 결정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다. 지난해 5월 안철수 위원장에게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맡기고, 국정과제 우선순위에 과학기술 분야를 올려 출범한 정권 아니었던가.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
확실한 변화는 하나다. 지난 6월 말 윤 대통령이 ‘약탈적 이권 카르텔’과 싸워야 한다며 특히 “나눠먹기식 R&D 예산을 원점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것 말이다. 예산이 가장 필요한 곳에 제대로 가도록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문제가 있는 곳을 과감히 구조조정하자는 정답 같은 말을 반대하긴 어렵다. 그래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투성이다. 국가 미래라던 과학기술 R&D 부문이 하루아침에 ‘카르텔’ 온상으로 지목되고, 두 달도 안 되는 검토 끝에 3조원 넘는 예산이 잘려나갔다. 그렇게 문제라면 왜 1년여 전 국정과제 수립 당시 올해 예산을 짤 때는 손보지 못했나. 어떤 카르텔이 있었다는 건지, 3조원의 구조조정을 통해 삭감된 예산은 무엇인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R&D 예산 배분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면 시스템을 어떻게 구조조정할지가 먼저 정교하게 수립돼야 했지만, 이렇게 급한 예산 ‘칼질’이 그렇게 이뤄졌을 리 만무하다. 겨냥한 칼끝도, 잘라내는 칼날도 투박하기 그지없는 구조조정 역시 환부는 도려내지 못하고 불필요한 상처만 더 크게 남긴다. 카르텔이 있다는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파이부터 줄이는 식의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줄어든 파이를 조금이라도 받아내기 위한 나눠먹기가 심해질 우려도 있다. 무엇보다 미래를 보는 혁신적 연구를 시도하는 건 더 어려워진다. 당장 이번 예산 삭감으로 국가 지원에 절대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는 기초연구와 출연연구기관 예산은 수천억원씩 감액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비롯해 4대 과학기술원 예산도 15% 안팎 삭감됐다. 연구 주체이자 과학기술 미래인 연구원들과 학생들이 불안감을 호소하며 성명을 내고 있다. 정부가 내건 이유가 무엇이었던 간에 이번 예산안이 과학기술계에 ‘미래가 없다’는 시그널을 줬다는 의미다.
필요한 구조조정은 하되 미래를 살리는 예산을 수립할 기회는 이제 국회 심의 과정뿐이다. 총선을 앞둔 여야가 지역 챙기기에만 혈안되지 않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길 지켜봐야 할 때다.
조민영 온라인뉴스부 차장 mymi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관악산 둘레길에 ‘퇴직경찰’ 투입한다… 총 50명
- “봉사활동 모임서 만났던 아내, 혼외자가 있었습니다”
- “금 주워라” 중국인들 강으로 골드러시…황동이었다
- “화장 진했는데”…청소년에 술판매 업주 ‘영업정지’
- “4일 공교육 멈춤” 국회 앞 모인 교사들… 20만명 추산
- 여성 BJ ‘폭행·감금’ 자작극 아니었다… “남편이 범인”
- “어미개 배 갈라 새끼 꺼내”…‘합법’ 번식장 참혹 현장
- 안 씹혀 뱉어보니…버거 패티와 같이 구워진 ‘테이프’
- “20만원은 쏴라” 지지자 글에…조민 “후원 독려 안돼”
- 마포 외국계 호텔 女화장실서 몰카…직원이 범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