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부채로 굳어지기 전 ‘한계기업 청산’ 등 과감한 결단 필요

권민지,심희정,박세환,서영희 2023. 9. 4.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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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에 치이는 한국경제] <⑤·끝> 탈출구가 필요하다


부채 증가 속도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가계·기업·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의 부채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누적되며 경제 성장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상황이다. 특히 부동산에서 시작된 부채가 시한폭탄으로 커지고 있다.

6000조원이 넘는 가계·기업·정부의 부채가 악성 부채로 굳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각 주체가 감당할 수 없는 부채는 내려놓고 악순환을 끊어내는 결단이 필요하다. 단 고통을 분담할 수 있는 사회적 연대가 동반돼야 한다. 과도한 빚을 내지 못 하게 하는 구조적 예방책도 필수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31일 본보 회의실에서 신준섭 정책팀장 사회로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박노욱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 전문가 3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상 좌담회를 가졌다.

-3개 경제 주체 부채 규모의 증가 속도가 다른 나라에 비교해 빠르다. 현재 한국의 상황을 진단한다면.

김 연구위원=코로나19 시작 시기 모든 나라의 부채가 늘었지만 코로나 사태 진정 이후는 한국이 특징적이다. 양적인 측면에서 보면, 다른 나라는 모두 디레버리징(부채 정리)이 시작됐는데 한국은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부채가) 뚫고 올라가고 있다. 가계, 기업, 정부 마찬가지다. 다만 학계에서는 과거 차주들보다 신용등급이 높아졌고 우량 차주의 부채가 늘어나 질적으로는 보완이 됐다고 본다.

조 실장=중국보다 빠르게 국가부채가 증가하는 게 우려된다.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등 부채 증가요인은 전 세계에 같이 적용됐는데 유독 한국만 빠르게 부채가 증가하는 이유를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기업 부채도 심각하다.

박 선임연구위원=정부 재정 구조는 심각해졌다. 정상화하고 싶어도 정치적 부담을 지지 않고서는 흐름을 바꿀 수 없는 상황이다. 중장기적 그림을 그려 바꾸지 않으면 충격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무섭다.

김 연구위원=이유는 명확하다. 결국 부동산이다. 가계부채 증가 구성요소를 보면 신용대출이나 기타대출은 많이 증가하지 않거나 일부 감소하기도 하는데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은 빠르게 증가한다. 주담대 증가 이유는 집값이 바닥을 치고 올라갈 거라는 시장의 기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금리 이외의 거시 안전성 정책들로, 장기적으로는 (부동산) 공급으로 대응해 시장 하향 안정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게티이미지


-가계 안정을 위해서는 기업이 활력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기업 부채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조 실장=코로나19로 실적이 악화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기업) 부채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수출 부진, 금리 인상으로 인한 상환 부담도 영향을 줬다. 기업부채는 지난 5년간 43개국에서 2위에 오를 정도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3대 경제주체를 통틀어서 가장 우려스럽게 봐야 하는 게 기업부채라고 생각한다.

-민간이 어려운데 정부 부채도 상당하다. 국정과제 등을 수행하기 위해 빚을 더 내는 악순환이 시작될 수 있다.

박 선임연구위원=지금의 의무지출이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미래에 기다리고 있는 의무지출이 많다. 대표적인 게 고령화에 따른 의무지출이다. 이 같은 거시경제 충격에 대비해야 하는 게 전통적인 재정의 역할이다. 문제는 코로나19 이후 다른 나라는 부채를 늘렸다가 줄였지만 우리나라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빚을 줄이거나 경제 기초체력을 갖춰야 할 것 같다. 가계 부채 관리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할까.

김 연구위원=가계부채가 빠르게 증가하는 건 긍정적이지 않다. 수도권 쏠림 현상으로 청년과 중장년이 밀집해 살아가는데 주택 공급이 원활히 되지 않으면 부동산 가격이 오르게 된다. 부동산 가격이 시장에서 저절로 안정되는 시기라면 역전세 등 소란이 있더라도 단계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전세반환 대출을 허용해 갚게 하는 방법도 있지만 집을 팔아서 갚는 방법도 있다.

-기업 부채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조 실장=장기적으로 기업을 무작정 돕는 게 좋은 건 아니다. 한계기업 청산도 필요하다. 국내 한계기업은 약 2400개로 추산된다. 근본적으로 한계기업 청산과 관련된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구조조정법, 도산법 등을 개정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전환기적 시점에서 한계기업이 탈출하고 새로운 혁신기업이 등장하는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국가 부채는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박 선임연구위원=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모니터링 체계·재정준칙·포괄적 지출 구조조정 체계 수립의 중요성이 강조됐는데 한국은 셋 다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재정준칙은 출발점일 뿐 그 이후 해야 할 작업이 훨씬 많다.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본다면 기획재정부가 관련 기능을 독립시켜야 한다. 결국 국가 부채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재원 조달 방안이 명시적으로 논의돼야 한다. 재원 조달 논의를 시작할 때 사회적 연대를 기반으로 하면 좋겠다. 사회적 신뢰와 연대 아래 정부를 믿고 국민 개개인이 부담을 더 가져야 한다.

-향후 부채 관리 측면에서 제언할 말이 있다면.

김 연구위원=청년 세대가 어려움이 많다. 예금이나 자산이 없고 추가로 차입해 소비 수준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연금 개혁에 대해서도 불만을 가진 청년들이 있을 것으로 본다. 사회적 연대를 할 때 청년도 누군가의 자녀라는 생각을 갖고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조 실장=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정부가 세금을 더 거두기 전에 지출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부가 솔선수범해서 허리띠를 졸라야 하고, 기업은 정부에 의존하기보다 새로운 사업, 산업전환 등에 기업가 정신을 과감하게 발휘해야 한다.

박 선임연구위원=개인과 기업의 정부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 개인이나 기업이 시장 원리에 따라 비용을 치르게 하지 않고 정부가 먼저 보호해주는 건 ‘빚을 더 내도 괜찮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이제는 정부가 (개입을) 안 하면 안 되는 순환고리가 시작된 것 같다. 문제는 정부가 계속 개입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연대와 정부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재정 운용 방식과 구조를 바꾸는 작업이 시작돼야 한다.

사회=신준섭 정책팀장

정리=권민지 심희정 박세환 기자, 사진=서영희 기자 10000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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