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재판의 지연, 어떻게 해결하나

2023. 9. 4.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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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영 법무법인 해광 대표변호사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에
즈음해 사법부 운영과 관련된
다양한 논의 이어져… 뜨거운
주제는 역시 재판 지연 문제

수년간 사법행정적 측면에서
시스템 붕괴된 게 결정적 요인

고법 부장판사제 부활·법원장
추천제 폐지 등이 해결책인 듯
논의되는 건 적절하지 않아

재판제도와 시스템 점검 통해
법관들이 온전히 재판 집중할
수 있도록 여건 조성하는 데
사법행정의 목표를 둬야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에 즈음해 사법부 운영에 관한 다양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제도 폐지·법원장 추천제에 대한 비판적 검토 내지 개선·보완, 법조일원화 시대의 법관 수급, 상고심 개선 방안 등 여러 주제가 언급되고 있지만, 가장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주제는 역시 재판 지연에 관한 문제인 듯하다. 2017년 전국 법원의 민사 1심 사건 중 2년 내 판결이 나오지 않은 장기미제사건은 5345건이었는데 2022년에는 1만4428건으로 증가했다. 5년간 3배까지 증가한 것을 보면 단순히 사건이 어렵고 복잡한 탓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미제사건이나 장기미제사건에 관한 단순한 사건수 통계만으로는 사건들이 잘 관리되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법원 내부에서는 사건이 불필요하게 지연되고 있지는 않은지, 재판이 적정한 수준에서 처리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미제분포지수’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미제분포지수는 6개월 이내 미제사건점유율+(1년 이내 미제사건점유율×0.9)-2년 이내 미제사건점유율-(2년 초과 미제사건점유율×2)로 계산된다. 장기미제사건 비율이 높을수록 미제분포지수는 낮고, 적정한 사건 관리가 이뤄지는 경우 미제분포지수는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통상 미제분포지수가 가장 높아지는 연말을 기준으로 2016, 2017년 전국 법원의 미제분포지수는 40을 상회했으나 2018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2021년에는 13.4로 줄었고, 2022년에는 급기야 마이너스를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사건의 복잡화나 코로나19 사태 외에도 대체로 고법 부장판사제도 폐지로 법관들이 열심히 일할 유인이 사라졌고, 법원장 추천제로 말미암아 법원장들의 소속 법관에 대한 사법행정적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는 것이 재판 지연의 주된 이유로 지적되고 있는 듯하나 그것이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동안 법원을 지켜 온 법관들이 단순히 평정권한을 가진 법원장이 사건처리통계를 지켜보고 있어서 고법 부장판사로 영진하기 위해 밥 먹듯 야근을 하며 사건을 처리해 온 것은 아니리라.

재판 지연 원인이 당근과 채찍이 사라진 데에 있다고 보는 것은 사실 법원과 법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다. 법관들은 사명감과 자긍심, 국민에 대한 책임감을 동력 삼아 일하지 승진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재판 지연은 지난 수년간 사법행정적 측면에서의 시스템 붕괴에 기인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법원은 변화하는 재판 상황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법행정적 지원 방안을 준비해 놓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근래 법원은 법원행정처 비법관화라는 명목 아래 재판 지원을 담당하던 법관들을 대폭 감소시켰고, 지금의 조직체계로는 눈앞의 문제만을 해결하기에도 벅차 보인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로 많은 법관을 한낱 수사 대상으로 전락하게 했고, 과거 법원행정처에 근무했다는 이유만으로 다수 엘리트 법관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빈발했다. 사무분담이나 인사를 둘러싼 갖가지 논란이 법원을 들끓게 했다. 법관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오롯이 직무에만 충실하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됐다.

승진을 이유로 법관들에게 일할 동기를 부여한다거나 법원장 추천제 개선을 통해 법관들의 업무 수행에 대해 통제권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결국 현재도 과중한 업무에 빠져 있는 법관들의 업무 강도를 지금보다도 더 강화하겠다는 것이어서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법관 인사제도 정비는 언제든 필요한 일일 것이나 고법 부장판사제도의 부활이나 법원장 추천제 폐지가 재판 지연의 해결책인 듯 논의되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큰 틀에서 재판제도와 사법부 시스템 전반에 걸친 점검을 통해 법관들이 온전히 재판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고도의 판단 작용이 필요하지 않은 업무는 사법보좌관 등에게 과감하게 이양하고, 판결이 아닌 간이한 절차에 의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복잡한 판결문 작성 방식을 대폭 개선해 법관들의 업무를 실질적으로 감경할 수 있도록 하고, 조직을 재정비해 상시적인 재판 업무 지원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법관들이 오롯이 재판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사법행정의 목표를 둬야 한다.

최창영 법무법인 해광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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