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형의 퍼스펙티브] 한·미·일과 한·중·일 두 바퀴가 ‘글로벌 중추국가’ 추동력
한·중 수교 31주년과 대한민국 외교 전략
양국 관계가 전반적으로 발전해 온 데는 지리적 인접성, 한반도 평화 및 안정 유지의 중요성, 경제적 필요성, 인적교류의 확장성, 역사·문화적 배경 등을 주요인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한·중 관계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된 상황에서도 북한이 일으키는 여러 형태의 도발, 한·중 양국의 역사 인식 차이, 서해에서 벌어진 각종 사건 등은 그때그때 양국 관계를 경색시키고 긴장을 고조시키곤 했다. 특히 2017년 주한미군의 사드(THAAD) 배치를 둘러싼 이해 충돌과 이를 빙자한 중국 측의 전례 없는 보복 조치는 한·중 우호 협력 관계의 근간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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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 관계 발전하며 과제 쌓여
한·미·일, 한·중 우호 공존 가능
한국 핵심 가치·원칙 견지하고
한·중 관계 호혜 발전 추진해야
자신 낮추는 ‘과공 외교’는 금물
실사구시로 사안별 대응하길
」
대 중국 무역 첫 적자 기록
그런데도 지난 30년간 한국과 중국의 교역량은 거의 매년 증가했다. 2010년대 2200억 달러어치를 상회하고, 2021년과 지난해에는 각각 3000억 달러 규모를 초과했다. 이는 양국관계에 있어 매우 뜻깊은 일이다. 그런데 지난 30년간 매년 몇백억 달러 규모의 대(對) 중국 무역 흑자 기조가 지난해 10월 첫 적자로 전환했다. 그 이후 올해도 적자 기조를 보이니 양국 관계에 새로운 변화의 시작인지 자문하게 한다.
공교롭게도 한·중 수교 31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대한민국 외교사에 큰 변곡점으로 기록될 만한 일이 있었다.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보다 미래지향적 한·일 파트너십을 강조하고 한·일 관계 정상화를 재확인했다. 그리고 지난달 18일(현지 시각)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개최된 역사적인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면서 포용적 협력을 지향하는 3국 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세 나라의 지도자들은 특정 국가를 배제하거나 소외시키는 배타적인 협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공동 대응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자유·평화·번영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는 포용적·건설적 협력체를 목표로 한다고 천명했다.
예상대로 중국은 3국 정상회의 결과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미·일 정상회의 사흘 뒤 “대만 문제와 해양 문제에서 중국을 비방 공격했고, 노골적으로 중국 내정에 간섭하고 중국과 주변국 사이에 불화를 심었다. 이는 국제사회의 준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다”라고 비난하는 논평을 냈다.
이전보다 다소 절제된 중국 정부의 반응이라는 평가도 있으나, 관변 매체들의 논조를 보더라도 이후 한국 정부가 중국 측에 새로운 외교 정책 기조에 관해 설명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지속해서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협력과 한·중 우호 협력 관계의 유지 발전이 결코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은 한국 정부의 몫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중국 정부의 정책과 행동에 대해 한국 정부는 건설적 평가를 가감 없이 표명해야 할 것이다.
미·중 경쟁으로 세계화 후퇴
주지하듯이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함에 따라 세계화(Globalization)가 후퇴하면서 경제안보 중시, 보호무역 강화 등의 흐름이 거세다. 만성적 자원 부족 상황에서 수출 중심의 개방경제를 운용하는 한국엔 심각한 도전 과제가 야기되고 있다.
중국의 핵심이익을 둘러싼 비타협적 공세 외교인 ‘전랑(戰狼) 외교’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양비론적 입장은 한국이 기대해온 중국의 건설적 역할과 거리가 멀어 우리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은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이러한 지정학적 변화와 복합적 위기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인식과 전략적 판단의 결과물이 ‘자유·평화·번영의 인·태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르면 한·일 관계 정상화, 한·미·일 관계 강화뿐 아니라 한·중 관계에 대해서도 양자적 개별 이슈를 넘어 인·태 지역 전략의 관점에서 새로운 정립을 모색하게 한다.
그런데도 중국 측은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비롯한 한국 정부의 외교정책 기조에 대해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 편에 가담하고 미국의 정책을 맹종하는 것’이라고 폄훼한다. 이는 한국의 외교적 자율성을 무시하고, 한국의 국제적 기여와 역할 확대 의지를 존중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아닌가 싶다.
필자가 10여 년 전 주중대사 시절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 한국의 핵심 가치와 원칙, 그리고 사안별 입장을 담대하게 견지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한·중 관계의 호혜적 발전을 실현하고, 국제사회의 신뢰와 존중을 받는 정도라고 믿는다. 이제 새로운 한·미·일 협력시대를 맞아 지난 30년간 한·중 관계의 성과와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한·중 관계를 더 성숙하고 건전하게 발전시키길 바라며 몇 가지 제언을 하려 한다.
한·중·일 정상회의를 조속히 열어야
첫째, 우리가 견지해야 할 핵심가치와 원칙, 그리고 사안별 입장은 중국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에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일본 측에는 양국 관계 개선 의지에 상응하는 합당한 조치를 요구하고, 미국 측에는 한·미 원자력협정을 미·일 원자력협정 수준으로 개정해 균형적 지위와 대우를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을 3각 협력의 ‘약한 고리’로 보는 중국의 노림수를 차단하고, 한·미·일 신협력의 시너지를 한국의 대중 외교 레버리지를 높이는 역량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한·중·일 정상회의를 조속히 개최해 한·중·일 협력과 한·미·일 협력의 두 바퀴를 가동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글로벌 중추 국가 실현을 위한 추동력으로 활용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국의 각계각층과 소통을 확대해 상호존중과 호혜 공영을 기반으로 공동이익을 추진하며 더 건강하고 성숙한 한·중 양자 관계를 구현해 가는 것이 양국 모두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을 일관되게 지속해서 강조해야 한다. 한국 외교도 이 원칙을 견지하며 실천해야 한다. 특히 한반도 평화·안정 유지와 북핵 문제의 해결은 한·중 모두의 공동 목표이자 과제임을 각인시켜야 한다. 당연히 ‘하나의 중국 원칙’(One China Policy)은 준수하되 이로 인해 인류 보편적 가치와 유엔 헌장 정신을 훼손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셋째, 중국발 위협 요소(China Risk)에 대한 대응을 치밀하면서도 신축적으로 해야 한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탈중국화는 멀리하고 중국 시장과 여타 글로벌 시장을 이원화해 각각 맞춤형 국익 극대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과 체제가 다른 중국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이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할지 고민해야 한다.
세계 곳곳에서 포착되는 중국의 과도한 힘의 투사가 한국사회에도 예외일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경계심을 높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을 낮춰 상대의 호감을 사려는 과공(過恭)은 외교에서 절대 금물이다. 외교뿐 아니라 비즈니스에서도 중국을 상대할 때는 중국인 특유의 문화를 잘 파악해 대처해야 한다. 기본원칙을 고수하되 상황에 따라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자세로 사안별 해결을 도모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관성을 갖고 끈질기고 집요하게 대응하는 자세를 습관화해야 한다.
중국 근무 기피하는 외교관들
넷째, 중국에 대한 한국 사회 일각의 막연한 기대감이 우려스럽지만, 오해와 가짜 뉴스에 근거해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무차별 확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우리 외교관들이 중국 근무를 기피하고,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근무 지원자가 부족해 고참 직원들이 현지 공장에 계속 근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소식은 유감스럽다. 중국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정확히 이해해야만 한국의 대중국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은 강조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은 중국 연구 인력을 늘리고 현지 근무를 선호하도록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책과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끝으로 정부는 외교 사안에 관한 정보를 수시로 정확하게 제공해 국민이 국제 관계 이슈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노력해야 한다. 외교 현안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분열이 극심해 매우 유감스럽다. 이런 현실에서 “정치는 국경선에서 멈춰야 한다”는 점을 재삼 강조하고 싶다.
이규형 전 주 중국·전 주 러시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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