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필향만리’] 久處約 長處樂(구처약 장처락)
2023. 9. 4. 00:31
공자는 “어질지 못한 사람은 곤궁한 상황에도 오래 처할 수 없으며, 즐거운 상황에도 오래 처할 수 없다”라고 했다. 『논어』 이인 편 제2장의 말이다. 어질지 못한 사람은 곤궁한 상황이 계속되면 어짊을 포기하고 눈앞의 이익을 좇고 만다. 또, 즐거움에 오래 처하다 보면 아예 즐거움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망치게 된다. 어진 사람이라야 곤궁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인(仁)을 지키고, 즐거운 상황에서도 인을 벗어난 탐닉과 일탈에 빠지지 않는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설령 인에 대한 믿음이 다소 약하더라도 ‘인을 지키는 것이 결국은 내게 이롭다’는 계산속으로라도 애써 인을 지키려 노력한다. 인을 도외시한 채 향락과 이익만을 추구하여, 쓰면 뱉고 달면 빠져드는 말초적 삶이 가장 불쌍하다.
인을 지킨다는 것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지고 인간으로서 차마 못 할 일을 끝까지 안 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법망만 피하면 차마 못 할 일을 해서라도 나만의 이익과 향락을 누리는 것을 ‘잘 사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팽배해 있다. 막장으로 치닫는 느낌이다. 곤궁해도 포기하지 않고 즐거워도 빠지지 않는 ‘구처약 장처락(久處約 長處樂)’의 ‘어진’ 삶을 강조해야 할 때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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