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도시가 스며든 ‘21세기 미술관’
가나자와는 변방임에도 에도 막부시대 일본 제4의 도시가 될 정도로 엄청난 번영을 누렸다. 복원된 가나자와성과 일본 3대 정원으로 꼽히는 겐로쿠엔이 여전한 도시의 중심이다. 이 역사공원과 현대 도시가 만나는 접점에 ‘21세기 미술관’이 위치한다. 2005년에 개관하여 매년 150만 명 넘게 방문하는 세계 10위로 꼽히는 미술관이다.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가 결성한 SANAA가 설계를 맡아 ‘도시에 개방된 공원 같은 미술관’을 건축의 개념으로 삼았다. 직경 112.5m의 거대한 원통 속에 14개의 독립적인 전시실 상자를 담았다. 별도의 정면 없이 사방으로 난 출입구를 통해 도시 어느 방향에서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중심부의 사각형 전시실 영역과 원형 외벽 사이의 공간은 교육·집회·자료·쇼핑 등 시민들의 일상 활동을 담는다. 353m 길이의 외벽은 모두 투명한 유리로, 도시의 다양한 풍경이 내부로 스며든다.
상자형 전시실은 4~12m 층고의 서로 다른 공간감으로 다양한 전시 내용을 담을 수 있다. 각 전시실 천창을 통해 자연 채광을 끌어들여 여러 장르의 작품 전시가 가능하다. 전시실 사이의 복도는 마치 도시의 가로망처럼 각 전시실을 연결하거나 분할한다. 도시 체험에 일정한 순서가 없듯이 전시실 사이에도 정해진 순로 없이 선택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열린 미술관’이다.
SANAA는 구조와 재료가 최소화된 공간 자체의 디자인을 추구한다. ‘21세기 미술관’은 부분과 부분, 부분과 전체의 조직을 설계했을 뿐 건물의 형태나 장식은 별 의미가 없다. 이 공간의 주인은 시민 활동과 미술 작품이다. 1980년 이후 ‘새로운 가치’가 있는 국제적 명작의 컬렉션도 훌륭하다. 마튜 바니·게르하르트 리히터·애니쉬 카푸어 등 익숙한 작가가 수두룩하다. 영구 설치된 제임스 터렐의 ‘푸른 행성 하늘’이나 레안드로 이르리히의 ‘수영장’ 프로젝트는 미술관 건물만큼이나 압권이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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