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원팀’의 함정

성지원 2023. 9. 4.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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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원 정치부 기자

이젠 정말 방탄소년단(BTS) 멤버라는 수식을 떼고 각자의 이름을 불러줄 때가 됐다. 가수 정국이 솔로 데뷔곡 ‘세븐’으로 미국 빌보드 ‘핫100’ 진입과 동시에 1위를 차지했다. 한국 솔로 가수가 핫100 1위에 오른 건 지난 4월 지민에 이어 정국이 두 번째다. 슈가는 지난 5월 첫 솔로 정규앨범 ‘D-day’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 2위에 올랐다. BTS는 멤버 전원이 솔로곡으로 핫100에 오른 첫 K팝 아이돌이다.

BTS는 애초부터 개성이 돋보이는 그룹이었다. 팬들과 SNS 소통으로 구축한 각자의 캐릭터가 확실했고 랩, 보컬, 댄스라인마다 특색도 분명했다. 하고 싶은 음악도 다 달랐다. 오죽하면 맏형 진과 막내 정국을 합친 ‘맏막즈’, 1995년생 뷔와 지민을 부르는 ‘구오즈’ 등 스스로 이름 붙인 멤버별 ‘케미’ 조합만 십수개에 달할까.

데뷔 9년만에 단체 활동을 잠정 중단한 BTS. [사진 빅히트 뮤직]

그래서 ‘원팀’ BTS는 코리아를 빛냈지만 때때로 굴레였다. 데뷔 전 아이돌보다 프로듀서를 꿈꿨던 슈가는 2년 전 한 예능에서 “음악방송 1위하고 단독 콘서트 하면 가수 인생이 끝나고 프로듀서 인생이 생길 줄 알았는데 미국으로 가라더라. 앞이 깜깜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BTS가 활동 잠정 중단을 발표한 2022년, 지민은 “우리가 각자 어떤 가수로 팬들에게 남고 싶은지를 이제야 알게 돼서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이제서야 정체성을 가지려는 것”이라고 했다. 팀 BTS가 데뷔 9년 만에 외친 개인의 해방이다.

잼버리에 그런 BTS를 소환하려 한 것은 우악스러운 ‘K-원팀’ 정신이었다. 정치권은 입대한 진과 제이홉을 잼버리 무대에 소환하려 “국방부가 조치를 취해달라”고 했고, ‘대한민국 국격’이라는 만능키를 들이대며 솔로 활동 중인 멤버들의 희생을 요구했다. 물론 아미로부터 “BTS가 모란봉악단이냐”는 빈축을 샀지만. 이제 우리도 외국에서 ‘두유노 지성팍’ ‘두유노 싸이’를 외치지 않아도 되는, 국격이 개인의 취향을 압도하지 않을 정도의 나라는 되지 않나.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도 유독 원팀 정신이 자주 소환된다. 지난달 여당은 연찬회에서 거듭 ‘원팀’을 강조했다. “타고 있는 배를 침몰하게 하는 승객은 승선 못 한다”는 사무총장의 엄포에 당 중진이 결국 소신 발언을 거두고 사과한 후다. “새가 날아가는 방향은 딱 정해져” 있다는, 피(彼)와 아(我)가 확실한 언어로 당은 똘똘 뭉쳤다.

대선, 지방선거, 전당대회 등에서 개인을 드러내다 배격당한 사례가 차고 넘쳐서일까. 팀 국민의힘에선 최근 개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원팀의 효력이 오래가면 좋으련만, 한 여당 의원이 최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꺼낸 말이 씁쓸하다. “차라리 야당이 부럽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 있으니까.” BTS를 듣다 떠올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성지원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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