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후세인·카스트로와도 담판…억류 미국인 80명 석방
북한에도 여러 차례 방문해 억류 미국인 석방을 담판 지었던 빌 리처드슨(사진) 전 주유엔 미국대사가 1일(현지시간) 별세했다. 75세.
리처드슨 글로벌 참여센터(RCGE)는 2일 “리처드슨 전 대사가 전날 매사추세츠주 채텀 자택에서 숨졌다”고 발표했다. “독재자들과 대화하며 대통령도 해결하지 못한 외교적 틈새를 메운 인물”(뉴욕타임스), “인질 협상 외교의 최초의 거인”(워싱턴포스트)이 고인에 대한 미국 언론들의 평가다.
리처드슨은 북한·이라크·쿠바·아프가니스탄·수단 등에 억류됐던 미국인과 미군 80여 명을 석방하는 데 기여했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만나 담판을 벌였다. 고인은 자신을 ‘깡패 담당 비공식 차관’으로 부르기도 했다.
협상가로서의 삶은 1994년 하원의원으로 북핵 문제를 논의하려고 평양에 방문했을 때 예기치 않게 시작됐다. 당시 주한미군 헬기가 조종 실수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가 북한군에 격추되자, 그가 교섭에 나섰다. 그는 협상이 성사될 때까지 북한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고, 결국 생존 조종사 1명과 함께 사망 조종사 1명의 유해를 들고 판문점을 통해 내려왔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특사로 방북했던 1996년엔 강석주 북한 외교부 제1부부장과 담판해 밀입국 혐의로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에번 헌지커를 석방했고, 2009년엔 탈북자 문제를 취재하다가 납북된 중국계 미국인 언론인 로라 링의 석방을 위해 힘썼다. 2013년 에릭 슈밋 구글 회장과 북한을 찾아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석방을 요청하고, 2016년엔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석방도 요구했다.
고인의 인질 석방 협상 대상은 북한뿐이 아니다. 2006년 수단 대통령과 대화해 퓰리처 수상자인 미국 언론인 폴 살로펙을 풀어주게 했고, 2020년 이란에 구금돼 있던 해군 참전용사 마이클 화이트의 석방을 도왔다.
그는 협상 성공의 비결로 “적을 존중하는 것”을 들었다. 2013년 펴낸 책 『상어에게 달콤한 말을 건네는 방법(How to Sweet-Talk a Shark)』에서 “개인적인 친밀감을 형성할 것, 유머 감각을 발휘할 것, 상대가 체면을 살릴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멕시코계인 그는 1998년 클린턴 행정부 에너지부 장관을 역임했고 2003년 히스패닉계 최초 주지사(뉴멕시코주)도 됐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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