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中·러 후쿠시마 오염수 비난 씁쓸하네 [신율의 정치 읽기]

2023. 9. 3.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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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 두고 중국, 러시아, 북한 반발
서방국 수용, 지지해도 독재 국가는 방류 비난
신냉전·신블록화로 과학 사라지고 진영 논리만
지난 8월 24일 오후 오염수 해양 방류를 시작한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AP)
21세기에 황제, 차르라고 불리는 국가 원수가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둘 모두 상당 기간 권좌에 머물 것이 분명할 뿐 아니라, 권위주의적 권력 운영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두 국가는 사회주의권에서 맹주 역할을 한 국가다.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중국은 주식 시장이 매우 활성화돼 있을 정도로, 경제 체제는 거의 자본주의다. 하지만 권력 구조만큼은 지극히 사회주의적이다. 러시아 역시 대통령을 직선제로 선출해 얼핏 보면 서방 진영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푸틴이 심복 메드베데프에게 대통령직을 잠시 맡겼다 다시 집권하는 것을 보면, 분명 서방식 민주주의 국가는 아니다.

이뿐 아니라 두 국가 모두 ‘정권의 불편함’을 견디지 못한다.

시진핑 장기 집권 체제가 확립되자 중국은 이른바 ‘반간첩법’을 시행하고 나섰다. 이 법은 중국 국내 반 시진핑 세력을 가둘 수 있을 뿐 아니라, 중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도 조심해야 한다. 반간첩법 개정 발효 전에도 간첩죄 적용 가능성은 중국에 주재하는 외국인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전에도 외국인이 중국 당국에 의해 ‘간첩 혐의’로 구금되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반간첩법이 이런 공포를 더욱 가중시켰음은 물론이다.

러시아 역시 정치 권력의 불편함을 제거하려는 듯한 모습은 유사하다. 최근 반란을 꾀한 프리고진이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을 비롯, 푸틴의 정적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2006년 6월 영국으로 망명한 전직 러시아 정보기관(FS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러시아 야당 지도자였던 안나 폴리코브스카야, 한때 푸틴과 가까웠던 올리가르히(신흥 재벌)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등이 줄줄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푸틴에 비판적이었거나, 푸틴에 대해 지나치게 잘 알고 있던 인물들이다. 러시아는 부인하지만,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이런 모습은 북한에서도 종종 관찰된다. 경제 체제를 바꾼다 해도 사회주의적 ‘정치 사회적 관성’이 쉽게 사라지지 않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놓고 이들 권위주의 국가가 뭉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공공연하게 핵 오염 위험을 전 세계에 전가하고, 사익을 전 인류의 장기적인 복지 위에 두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보”라고 비판했다. 또한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중국의 일부인 홍콩 역시 같은 조치를 취했다. 러시아도 매우 비판적이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원전을 관리하는 회사(도쿄전력)는 몇 번이나 정보 공개에 무책임한 대응을 취해왔다”며, 일본이 주변국과 충분한 논의를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북한은 8월 24일 외무성 대변인 명의 담화에서 “생태 환경을 파괴하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반인륜적 행위”라며 “상상만 해도 끔찍한 핵 오염수 방류는 핵 전범국이며 핵 주범인 미국과 그 추종 세력들이 그 무슨 ‘보증’이나 ‘담보’를 한다고 해도 용납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들 세 국가를 제외한 다른 국가 반응은 다르다.

대만 외교부는 “과학적 문제에서는 전문가를 존중한다”면서 “일본 측에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오염수 방출을 하도록 촉구하겠다”고 했다. 필리핀 외교부는 “과학적 사실에 입각해 일본 오염수가 이 지역 해양에 미칠 영향을 계속 주시하겠다”면서도 “IAEA의 기술적 전문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18개국이 참여한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의장인 마크 브라운 쿡 아일랜드 총리는 입장문을 내고 “오염수를 방류하기로 한 일본 정부 결정은, PIF와 일본 정부와 IAEA가 28개월 이상 협의한 끝에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후쿠시마 방류 오염수가 우리보다 훨씬 빨리 도달하는 캐나다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4년 후인 2015년에 이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영향에 대한 정부 보고서를 통해 인지 가능한 수준의 방사선 수치 변화가 없고, 캐나다 국민의 건강에 우려가 될 만한 것이 없다고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은 일본의 처리 오염수 방류에 대해 심지어 ‘지지’ 의사를 밝혔다.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8월 25일 성명을 내고 “미국은 안전하고 투명하며 과학에 기반한 일본의 (오염수 방류) 프로세스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 오염수 관련 IAEA 보고서에 대해서도 “일본의 프로세스가 안전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안전 기준에 부합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유럽연합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이해’한다는 입장이다.

전 세계 입장에서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첫째, 여론 향배에 가장 민감해야 할 서방 민주주의 진영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수용’하거나 ‘지지’ 혹은 ‘이해’하는 반면 독재 국가에서는 방류를 비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후쿠시마 처리 오염수 방류를 적극적으로 비난하는 국가들은, 현재 혹은 과거에 자신들 역시 ‘핵폐기물 해양 투척’ 혹은 삼중수소 방류 문제에 있어 자유롭지 못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러시아는 구(舊)소련 시절인 1966년부터 30년 가까이 울릉도 근해 등 동해상에 막대한 양의 핵폐기물을 몰래 버렸다.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는, 동해에서 잡은 수산물을 먹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 원전이 2020년 한 해 방출한 삼중수소 배출 총량은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의 50배 정도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 원전 대부분이 우리나라 서해와 맞닿은 동부 연안에 몰려 있어 우리나라가 영향권에 드는 것은 확실하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 풍계리 핵 실험장과 영변 핵 시설 등에서 방사능이 누출된 정황이 드러났다는 것이 전문가 주장이다. 이뿐 아니라 북한이 핵 개발을 위해 운영하는 우라늄 광산과 정련 공장의 방사능 폐기물이 장마철 예성강을 통해 서해로 방류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상황이 이런데도,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은 자신들은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듯 일본 후쿠시마 처리 오염수 방류를 비난한다. 이들이 문제 삼는 후쿠시마 오염수는 정수와 희석이라는 처리 과정을 거쳐 공개적으로 방류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몰래 한 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하며 공개적으로 오염수를 처리하는 일본을 비난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후쿠시마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세계적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신(新)냉전, 신(新)블록화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진정으로 인류 미래를 걱정해 해양 방류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진영 대결 수단의 하나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이용하는 것 같다는 얘기다. 이때 과학은 사라지고 진영 논리만 남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해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5호 (2023.09.06~2023.09.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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