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바이오팜 흑자 시대 열 신약 ‘엑스코프리’
SK바이오팜이 기록한 올해 1분기, 2분기 영업손실 규모다. 수치만 보면 적자 늪에 허덕이는 ‘힘겨운 기업’이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미래에셋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 SK증권 등 다수 증권사가 연달아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하고 나섰다. 이유는 단순하다. 올해 4분기에는 분기 영업이익을 기록해 본격적인 ‘이익 창출’ 구간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흑자 진입을 가능케 하는 아이템은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제품명 엑스코프리)’다. 특히 미국 시장 성과가 주목된다. SK바이오팜은 2020년 미국에서 세노바메이트를 내놓은 이후 아직까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고 있는데, 올해 처방 건수 확대에 힘입어 큰 폭의 수익성 개선이 점쳐진다. 특히 세노바메이트가 SK바이오팜 전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4분기 흑자전환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이선경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초부터 확대되고 있는 신규 처방 수를 기반으로 지속 상승하고 있는 엑스코프리의 미국 내 매출 추이를 고려했을 때 4분기 흑자전환 성공 기대감은 유효하다”고 설명했다.
‘빅바이오텍’ SK바이오팜 어떤 곳
2020년 상장…신약 개발로 선순환
SK그룹은 1993년 신약 연구개발(R&D) 프로젝트를 통해 바이오 분야로 영역을 넓혔다. 기존 제약사들이 복제약을 들여와 파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SK그룹은 신약 개발에 집중했다. 대표적인 게 1993년부터 시작한 중추신경계 질환 신약 개발이다. 연구개발 범위와 업무를 넓혀가던 SK는 2011년 신약 개발 사업 조직 ‘라이프 사이언스’ 부문을 물적분할해 SK바이오팜을 설립했다. SK그룹의 첫 바이오 기업 분사 사례다.
SK바이오팜은 차근차근 덩치를 키웠다. 동시에 그룹 신약 개발의 전진기지로 자리 잡았다. 2011년 미국 에어리얼 바이오파마에 수면장애 신약 ‘솔리암페톨’을 기술 수출, 신약 개발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성공 사례를 만들어냈다. 이후 2020년, 유가증권 시장(코스피) 상장까지 이뤄냈다. 당시 코로나19로 투심이 위축됐던 상황에서 9600억원에 육박하는 공모 물량을 소화했다. 그룹 차원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고, 바이오 부문은 그룹 핵심 사업으로 재편됐다.
자리를 잡은 SK바이오팜의 다음 목표는 ‘빅바이오텍’이다. 자체 개발 신약 판매 기술 수출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빠른 의사 결정을 내려 또 다른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전략이다. 의사 결정 속도가 느린 ‘빅파마’와 자본력이 부족한 ‘바이오텍’의 약점을 보완한 모델이다.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은 “기존 에셋(자산) 기반에서 기술 플랫폼으로, 합성의약품에서 바이오의약품으로, 중추신경계 분야에서 항암으로 영역을 확장해 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균형 잡힌 빅바이오텍으로 재도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핵심 ‘세노바메이트’ 판매 호조
기술 수출에 미 신규 처방도 급증
빅바이오텍 실현의 선제 조건은 현금 창출이다. 선순환 구조의 첫 단계다.
다만 지금까지는 현금 창출에 어려움을 겪었다. SK바이오팜은 상장 직후인 2021년 첫 흑자를 기록했지만, 지난해 적자로 돌아섰다. 올해도 상반기 400억원 안팎의 영업손실을 내며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다만 수익성 개선을 기대할 만한 지표들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 관련 긍정적 지표와 기술 수출 사례가 쏟아진다. 증권가도 SK바이오팜의 4분기 흑자를 전망,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하고 나섰다.
세노바메이트는 SK바이오팜이 개발한 뇌전증 신약이다. 부분 발작 증상을 보이는 성인 뇌전증 환자에게 처방되는데, 경쟁 약물 대비 우수한 효능이 강점이다. 뇌전증 치료제의 경우 완전 발작 소실률(발작 증상 억제 비율)이 중요하다. 세노바메이트 활용 치료제 ‘엑스코프리’의 완전 발작 소실률은 21%에 달한다. 경쟁 약물의 완전 발작 소실률(2~5%) 대비 효능이 확실하다. SK바이오팜은 세노바메이트 초기 연구개발부터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까지 모든 과정을 독자 수행했다.
미국에서 엑스코프리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세노바메이트는 올해 초부터 미국 내 월간 처방 건수(TRx)가 증가 추세다. 특히 경쟁사와 비교하면 성장폭이 두드러진다. 지난 6월 기준 엑스코프리 월간 처방 건수는 2만1841건. 경쟁 신약 출시 38개월 차 평균 처방 수의 약 2.1배 수준이다. 매출 추이도 상승 곡선이다. 엑스코프리의 2분기 미국 매출은 634억원, 전년 동기 대비 57.5% 증가했다. SK바이오팜 측은 마케팅 강화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SK바이오팜 관계자는 “올해 현지 영업사원 대상 인센티브 제도 개편과 최고경영진의 현장 경영 등 동기 부여를 위한 제도를 펼치고 뇌전증 전문의에서 일반 신경전문의로 프로모션 대상을 넓히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이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SK바이오팜 측은 미국 내 엑스코프리 매출로만 2032년까지 4조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동훈 사장은 지난 7월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 7~8년 동안 4조원, 더 열심히 한다면 5조원의 견고한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는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외 지역으로의 세노바메이트 기술 수출도 눈여겨볼 만하다. SK바이오팜은 최근 중동 지역 제약사 히크마와 세노바메이트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히크마가 중동과 북아프리카(MENA) 지역에서 세노바메이트의 상업화를 담당하겠다는 내용이다. SK바이오팜은 기술 수출로 계약금 300만달러(약 40억원)를 받았다. 동시에 상호 간 동반자적 관점의 전략적 파트너십도 맺었다. 향후 SK바이오팜이 MENA 지역에 출시하는 제품의 경우 히크마에 우선협상권을 부여한다는 계약이다. 해당 파트너십으로 SK바이오팜은 세노바메이트 계약금 외 2000만달러(약 268억원)를 수령한다.
제2의 캐시카우 확보 위한 M&A 검토
한편 세노바메이트의 시장 지배력이 커지면서, SK바이오팜의 고질적 약점도 두드러지고 있다. 세노바메이트 매출 의존도다. SK바이오팜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세노바메이트 관련 매출은 1356억원을 기록했다. 전체 매출(1378억원)의 98.4% 수준이다. 세노바메이트 매출에 따라 회사 실적이 결정되는 구조다.
SK바이오팜도 약점을 인지하고 있다. 이동훈 사장이 기회가 될 때마다 ‘미래를 위한 투자’를 외치는 배경이다. SK바이오팜은 2025년까지 제2의 상업화 제품을 만들어낼 방침이다. 필요에 따라 인수합병(M&A)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이동훈 사장은 “바이오 시장이 저평가돼 소위 ‘줍줍’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올해부터 내후년 초까지가 싸게 인수할 수 있는 기회인데, 이를 놓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지난 7월 미국 바이오벤처 프로테오반트 지분 60%를 620억원에 사들인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프로테오반트는 SK가 스위스에 본사가 있는 바이오 기업 로이반트와 손잡고 세운 표적단백질분해(TPD) 개발 합작사다. SK는 당시 지분 40%를 2237억원에 취득했다. SK바이오팜은 로이반트가 보유한 프로테오반트 지분 60%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인수한 셈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4호 (2023.08.30~2023.09.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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