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틈새 벌려가며 촬영"…'차이나 습격'에 삼성·LG 발칵
지난 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개막한 유럽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IFA 2023’. 이날 메세베를린 18홀에 마련된 LG전자 전시 부스에는 비상이 걸렸다. 중국 기업의 ‘때아닌 습격’을 받아서다.
3일(현지시간) 최종환 LG전자 부스 담당자는 “중국인 바이어 한 무리가 방문해 ‘LG 시그니처 세탁기’ 제품의 내부까지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주최 측의 경고를 받은 뒤에야 이들이 물러갔다”며 “첫날에만 2건의 기술 탈취 의심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인근 시티큐브 베를린에 있는 삼성전자 전시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중국인 바이어가 비스포크 냉장고 틈새를 벌려가며 구석구석 동영상을 찍어갔다.
中 기업, 첨단 기술·가성비 무기로 유럽 출사표
올해 IFA 2023에선 ‘차이나(중국 기업)의 공습’이 어느때보다 매서웠다. 전체 53개국에서 온 2302개 참여 업체 중 56%인 1296개가 중국 기업이었다. 주최국인 독일(229개)이나 한국(165개), 미국(61개)을 크게 앞섰다. 일본 대표주자인 소니는 전시 부스를 차리지 않고 거래선을 위한 상담 공간만 마련했다.
이를 두고 미·중 갈등으로 중국 기업의 북미 시장 진출이 어려워지자 유럽으로 눈을 돌렸다는 해석이 나왔다. 자체 기술력과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무기로 현지에서 ‘K-가전’의 경쟁자로 부상을 노린 것이다.
행사장 곳곳에는 하이센스·하이얼·TCL·아너 등 중국 기업들은 ‘혁신 기술’임을 내세우며 TV·가전·스마트폰·로봇 등을 선보였다. 기조연설에서도 스마트폰 업체 아너의 조지 자오 최고경영자(CEO), 피셔 유 하이센스 대표 등 중국 기업인 두 명만 마이크를 잡았다.
베끼기 넘어 ‘원조’보다 한발 나간 신제품도
현장에서 살펴본 중국 가전·모바일 제품은 그동안 삼성전자·LG전자의 제품을 ‘베끼던’ 수준을 넘어섰다. 기술 탈취 의심은 여전했지만, 제품 기능과 디자인은 훌쩍 성장했다. TCL은 163형 4K 마이크로 LED TV ‘시네마월’을 전시해 이번 행사에서 ‘최대 사이즈 TV’ 타이틀을 차지했다. 하이센스는 LG전자 ‘오브제컬렉션 포제’ ‘스탠바이미’, 삼성전자 ‘더프레임’과 비슷한 디자인의 제품으로 부스를 꾸몄다. CHiQ는 LG디스플레이로부터 55형 투명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공급받아 자신들의 기술이라고 ‘포장’했다.
아너는 신형 폴더블폰 ‘매직 V2’를 처음 선보였다. 자오 CEO는 이에 대해 “두께가 9.9㎜로 삼성전자 갤럭시 Z폴드 5의 13.4㎜보다 약 40% 얇다”며 “아이폰14·갤럭시S23보다 배터리 수명이 길고, 무게도 가볍다”고 주장했다. 실제 제품의 힌지 부분은 들뜸이 없는 갤럭시 Z폴드5의 ‘물방울 힌지’와 비슷했다.
세탁기·건조기를 상하로 연결한 ‘세탁건조기’도 출품됐다. LG전자의 ‘워시타워’, 삼성전자의 ‘비스포크 그랑데 AI 탑핏’과 유사한 형태다. 메이디(미디어)·CHiQ·하이얼 등은 세탁기+로봇 청소기, 세탁기+신발관리기 등 이종가전 간 결합으로 ‘원조’보다 더 쓰임새 많은 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리나 타하 메이디 담당자는 “우리 제품은 세탁하면서 청소까지 할 수 있으니 더 수준이 높다”며 삼성·LG를 직접 겨냥했다. 중국 로봇 업체 유니트리는 현대차그룹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개 ‘스팟’과 닮은 4족 보행 로봇개(‘고2’)를 공개했다.
“기술 차이 있다”지만…소비자는 “싸면 좋다”
삼성·LG 등이 내세운 인공지능(AI) 기반의 ‘초연결 생태계’ ‘에너지 관리’ 콘셉트 등도 중국 기업 부스에서도 소개됐다. 아직 세부적으로 구현되지는 않았으나 비슷한 솔루션을 조만간 선보이겠다는 ‘선전포고’로 보인다. 중국은 AI 분야에서 충분한 데이터 확보 및 활용을 통해 한국을 맹추격하고 있다.
중국 가전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떨까. 하이얼 전시관에서 만난 관람객 알리 바하미(독일)는 “외관상으론 삼성·LG 제품과 스펙 차이가 거의 없어 보인다”며 “더 싼 제품을 살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람객 지오미 황(중국)은 “중국 제품의 기술이 이젠 한국을 넘어섰다고 생각한다”며 “디자인도 더 고급스럽다”고 치켜세웠다.
삼성 ‘기술력’ LG ‘아이디어’로 승부수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기술과 아이디어로 승부하겠다는 입장이다. 정강일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차세대기획그룹 상무는 “같은 기술의 TV 제품이라도 다양한 화질 알고리즘과 노하우로 훨씬 더 깨끗하고 선명한 화질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백선필 LG전자 HE(홈엔터테인먼트)사업본부 상품기획담당 상무는 “OLED는 한국 업체가 독보적이라 향후에도 초대형 제품으로 쫓아오는 건 어려울 것”이라며 “‘스탠바이 미’처럼 격차를 벌릴 폼팩터 아이디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두 회사는 공통으로 ‘고객 경험’과 ‘초연결’을 화두로 삼았다. 디바이스 간 연결을 통해 최적의 경험을 누리게 한다는 구상이다. 또 스마트홈 생태계 확장을 위해 글로벌 표준 연합 CSA의 ‘매터’와 글로벌 가전 협의체 HCA의 표준 1.0을 적용해 연내 두 회사의 가전제품을 연동시킨다는 데 합의했다.
“AIoT 기반 스마트홈 구축해 차별화 꾀해야”
전문가들은 한국 가전의 미래가 ‘초격차 기술’에서 나와야 한다고 진단한다.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한국 기업들이 가전·모바일 등 제품을 시스템적으로 결합하는 AIoT(인공지능+사물인터넷) 기술로 스마트홈 체제를 구축하며 부가가치를 높이고 차별점을 가져야 한다”며 “이를 위해 자체 AIoT 칩 등을 만들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독일가전전자통신협회가 주최하는 IFA는 1924년 시작해 올해로 99회째를 맞았다. 매년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소비자가전쇼(CES)가 신제품 발표회장이라면, 하반기 열리는 IFA는 판매 물량을 확대한다는 성격이 짙다. 올해는 150여 개국에서 18만 명이 다녀갈 것으로 보인다.
■ IFA는
「 IFA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소비자가전쇼(CES),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와 함께 세계 3대 전자·IT 전시회로 꼽히는 행사다. 세 전시회가 모두 최첨단 IT쇼를 표방하지만, CES는 첨단기술, MWC는 이동 통신 생태계, IFA는 생활가전에 각각 초점을 맞추고 있다.
」
베를린=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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