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각 질서' 빛난 20만 교사집회..."또 보자" 경찰이 인사 건넸다
“자체적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칼같이 자리를 지키고. 집회 내용과는 별개로 정말 이런 집회만 다니고 싶네요.”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 현장을 지킨 한 경찰관의 말이다. 이날 교사들은 국회 정문에서 여의도공원 방향으로 난 8개 차로를 가득 채웠지만 준법 집회가 이뤄지며 불법 행위로 입건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초 이날 집회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서울 서이초 교사의 49재를 이틀 앞두고 열린다는 점에서 경비 당국의 긴장을 불렀다. 집회 운영진에 따르면 전국에서 버스 600대 이상을 대절해 집회 참여 인원을 실어 날랐고, 집회 시작 전 이미 신고한 12개 집회 구역이 가득 찼다. 주최 측에 따르면 20만 명 이상(경찰 추산 10만 명)의 인원이 운집했다.
경찰도 기동대 10개 중대(약 800명)의 경력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그러나 당일 현장에선 집회 시작 전 음악 소리가 커 한 차례 소음 유지명령을 내린 게 필요한 조치의 전부였다. 경찰 경비 담당자는 “집회 참가자들에 의한 소동 같은 건 전혀 없었다”며 “신고된 내용대로 정확하게 집회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오히려 현장을 지키는 경찰과 집회에 참여한 교사들이 서로 얼음물을 나눠 마시고 감사 인사를 전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집회 질서유지인으로 참석한 한 교사는 “현장을 통제하는 경찰관들 옆에 질서유지인도 배치하면서 경찰이 전하는 통제 내용을 곧바로 공유했고, 행사가 제시간에 끝날 수 있게 행사 시간 전부터 준비했다”며 “경찰관들과 얼음물을 나누는 것도 집회 공지를 통해 권고하는 등 모두가 문제없는 집회를 만드는 데 마음을 모았다”고 전했다. 집회가 마무리된 후 경찰과 질서유지인들은 “다음에 또 보자”며 헤어졌다고 한다. 이날 직장인 기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경찰과 교사 간의 “감사했다”는 대화가 이어졌다.
이전 교사 집회에 참석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노조 시위에선 해산 시간을 지키지 않고, 대열에서 벗어나 음주를 하는 참석자가 생기는 일이 잦아 언제 불법 행위로 이어질까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며 “그간의 교사 집회는 준법 집회로도 필요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례”라고 말했다. 지난 5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건설노조는 서울광장 등에서 1박 2일 노숙 시위를 벌이며 길에서 술판을 벌이는 등의 행위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교사들은 이날 집회에서 학생·학부모·교육당국 책무성 강화, 통일된 민원 처리 시스템 개설 등 8가지 내용을 담은 정책요구안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서적 학대행위가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는 아동복지법 제17조5의 법안 개정도 요구하는 중이다. 이날 7번째 집회를 진행한 교사들은 오는 4일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하고 대규모 추모집회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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