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희망의 교회로]“사장님 크리스천 같던데”…청소년들 카페 선불카드 충천·문고리 반찬 배달해주는 개척교회

손동준 2023. 9. 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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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에서 희망을 외치다 (21) 인천 계양구 예수이룸교회
박승호 안수집사와 이홍배 집사가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반찬 배달에 나서기 전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예수이룸교회 제공


지난 19일 저녁 인천 계양구 예수이룸교회(김진원 목사) 주방에 6명의 중년 여성이 모였다. 교회 가득 멸치 볶는 냄새가 입맛을 돋운다. 안경복 집사를 중심으로 백승은 김미숙 진향희 조순남 집사와 유지연 권사로 구성된 반찬 팀이 더운 날씨에 앞치마를 두르고 가스레인지 앞에 요리에 열중한다. 팀원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힌다. 접시 위에는 멸치볶음 콩자반 같은 마른반찬과 돼지 불고기가 접시 위에 수북하게 쌓인다. 여느 교회의 식당 봉사와 다른 점은 교인들을 먹일 반찬이 아니라는 점이다. 동네 아이들 몫이다. 첫째 주와 셋째 주 일요일, 예수이룸교회는 계양구에 사는 10여명의 학생들을 위해 반찬을 전한다. 주로 한 부모 가정이나 조손가정 아이들에게 간다.

“아이들은 몰라요”
일요일 오후. 전날부터 준비한 반찬이 박승호 안수집사와 이홍배 집사의 손에 전달된다. 한 꾸러미에 일주일 이상 먹을 분량이 담겼다. 무거울 법도 하지만 두 집사는 익숙한 듯 도시락들을 반씩 나눠 든다. 차에 올라타 주소에 적힌 집으로 향한다. 문고리에 반찬 꾸러미를 걸어두고 다음 주소지로 출발한다. 배달을 마치면 해가 서산으로 넘어간다. 도시락 어디에도 교회의 이름은 없다. ‘힘내’ ‘너는 소중해’ 같은 긍정적인 메시지가 도시락 위에 붙어 있다.

김진원 예수이룸교회 목사가 31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역 청소년을 위한 나눔 사역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김진원(44·예수이룸교회) 목사는 “반찬을 받는 아이들은 교회에서 배달한 것인 줄 모른다. 우리도 주소만 알뿐 어떤 아이에게 가는지 모른다”고 했다. 김 목사는 “반찬 좀 준다고 교회 이름을 크게 박아서 붙여 놓으면 아이들에게 교회 나오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서 일부러 교회 이름을 넣지 않았다”며 “기왕 주는 거 치사해지고 싶지 않았다”고 이유를 밝혔다. 교회는 지난 2020년 9월 지금의 자리로 이전해 오면서 5분 거리에 있는 인근 두 개 학교를 품었다. 김 목사는 “요즘도 굶는 아이들이 있다”며 “조부모와 살지만 서류상 엄마 아빠가 있어서 정부 지원은 받지 못하는 어중간한 아이들 우리 사역의 대상”이라고 밝혔다. 두 학교의 교사들로부터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의 정보를 얻었다. 그는 “학교 위클래스(상담교실)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며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을 발견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학교와 접촉했다”고 설명했다.

인천 계양구 박촌역 인근에 자리한 예수이룸교회와 카페 아크. 스크린골프장이 있던 자리를 리모델링해 교회와 카페로 꾸몄다.


선불카드를 도입한 이유
교회 1층에 자리한 카페 아크(ARK·방주)는 지역의 아이들을 품는 베이스캠프다. 기자가 찾아간 날도 지역 주민들로 보이는 손님들 사이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하거나 공부를 하고 있었다. “사장님이 크리스천이신 것 같던데 그래서인지 영업시간이 매일 다른 것 같다. 근래 먹은 디카페인 아인슈페너 중에 제일 맛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에 크림이 장난 아니게 쫀쫀함.” 교회 1층에 자리한 카페 아크에 대한 한 블로그의 소개 글이다. ‘박촌역 아크’로 검색하면 호평 일색이다. 포털 사이트 정보에서 안내하는 별점도 만점에 가깝다. 비용을 들여 바이럴 마케팅을 한 줄 오해하기에 십상이다.

카페 아크에 들어서면 나무와 노란빛 전구를 활용한 실내 장식이 눈길을 끈다.


카페에 들어서면 나무와 노란빛 전구를 활용한 실내 장식이 눈길을 끈다. 로스터리를 보유하고 있어 100m 거리인 박촌역 2번 출구에서도 커피 볶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오래된 빌라들로 둘러싸인 박촌역 인근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카페 겸 레스토랑이다. 시그니처 당귀 새우 파스타 치킨 샐러드 등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은 메뉴는 지역 주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보유한 김 목사와 채수빈 예수이룸교회 교육전도사가 커피 맛을 책임진다.

카페 아크에서는 선불카도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교회는 인근 2개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 가운데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분기마다 6만원씩 선불카드를 충전해주고 있다.


‘선불카드 5만원 이상 충전 시 10% 추가 충전.’ 매대 한쪽에 선불카드 이용에 대한 안내 문구가 적혀 있다. 채 전도사는 “카페 아크는 지역 주민뿐 아니라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고객이 많은 곳”이라며 “선불카드를 사용하는 고객이 많다”고 했다. 선불카드는 카페를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도입한 제도다. 김 목사는 “매달 수수료를 내면서까지 선불카드를 활용하는 진짜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도시락과마찬가지로 카페 아크에서는 인근 두 학교 위클래스 교사들이 선정한 10여명의 학생들에게 분기마다 6만원씩 선불카드를 자동으로 충전해주고 있다. 누가 혜택을 받는지 교회에서도 알지 못한다.

카페 아크에서는 인근 지역 2개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험기간 무료 음료 제공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다. 예수이룸교회 제공


교회의 관심은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한정되지 않는다. 시험 기간이 되면 SNS에 인근 두 학교 이름을 해시태그 걸고 무료 음료 이벤트를 진행한다. 이벤트는 늘 성공적이다. 학교당 200잔씩 한도를 정하지만, 한도가 지켜지는 일은 없다. 채 전도사는 “하루 500잔 넘는 음료를 제공하다 보면 일반 영업을 못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원들도 녹초가 된다”며 “그런데도 아이들이 기뻐하는 얼굴을 보면 힘이 난다”고 했다. 김 목사는 “제가 계산대를 볼 때는 4명이 와서 1잔씩 시키는 아이들에게 무료로 음료를 나눠주곤 한다”며 “그러다 보니 카페 아크는 아무리 장사가 잘돼도 늘 적자”라고 웃으며 말했다.

지난 6월 진행한 시험기간 무료 음료 제공 이벤트에 참가한 인근 지역 학생들. 예수이룸교회 제공


사단법인 월드바리스타협회(회장 김기화)의 공식 검정장인 카페 아크는 바리스타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인천예일고등학교 특수학급 학생들이 공식 수업으로 카페를 찾아 김 목사의 지도를 받고 있다. 김 목사는 최근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했다. 발달장애 학생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는 “얼마 전 제 수업을 받은 발달장애인 학생으로부터 바리스타로 취업했다는 전화를 받았다”며 “커피로 인해 아이의 인생이 바뀌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본격적으로 해볼 계획”이라고 전했다.

개척교회도 나눌 수 있다
2019년 1월 1일 창립한 예수이룸교회는 개척교회다. 청주에서 사역하던 김 목사가 인천에 올라와 청년 몇명과 함께 시작한 교회가 4년 만에 재적 70명 평균 출석 인원은 60명 안팎으로 성장했다. 개척 직후 코로나19를 만났지만, 오히려 이 기간에 인원이 늘었다. 청년이 전체 인원의 65%를 차지한다. 제직회 대신 26명의 리더 그룹을 만들어 교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맡겼다. 지역 아이들을 돕는 사역뿐 아니라 고국 방문 선교사를 위한 자동차 대여 사역, 인천 계양구 26개 학교에 기도 모임을 세우는 사역, 미자립교회와 선교지를 위한 재정 지원까지 규모를 뛰어넘는 사역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도 리더 그룹의 결정 덕분이다. 다음 달이면 귀국 선교사들을 위한 선교관도 개관한다.

예수이룸교회는 고국 방문 선교사를 위한 자동차 대여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예수이룸교회 제공


김 목사는 “우리 교회 1년 결산 규모가 2억원이 넘는다. 교회 규모를 생각하면 큰 금액”이라며 “돈이 많아서 나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교인들의 나눔에 대한 마음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했다. 재정을 쌓아두기보다 흘려보내고 최대한 지출을 줄였다. 철거부터 실내 장식까지 김 목사와 교인들이 직접 나섰고 의자와 강대상 등 집기는 중고 사이트에 올라온 나눔 물품으로 갖췄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김 목사와 채 전도사는 공사 현장을 따라다니며 기술을 배웠다. 김 목사는 “구석구석 교인들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며 “교회 인테리어 기간에는 공사판 같은 현장에서 수련회를 하며 모든 교인이 타일을 붙이고 전선을 감았다”고 했다.

김 목사는 “카페에 드나드는 분들 대부분 여기가 교회라는 사실을 안다”며 “카페를 오가며 본인은 교회에 안 다니지만, 자녀를 교회학교에 보내신 분들이 계실 정도로 입소문이 좋게 났다”고 했다. 그는 “폐지 줍는 어르신이나 택배 배달하시는 분들이 지나가면 어김없이 음료를 대접한다”며 “여느 카페에서 경험할 수 없는 친절을 베풀었더니 손님들로부터 교회가 이래야 한다며 칭찬이 돌아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김 목사는 “어렵게 꾸민 교회와 카페 공간이지만 5년 계약이 끝나면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며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어떤 모습이든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가 해 온대로 섬김과 나눔의 DNA를 지역사회에 펼쳐놓을 수 있도록 인도하실 것”이라고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예수이룸교회가 지역 청소년들에게 배달하는 반찬들. 교회는 반찬 위에 교회 이름 대신 긍정적인 메시지가 담긴 스티커를 붙여두었다. 예수이룸교회 제공

인천=글·사진 손동준 기자 sd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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