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몰러~'는 금지어, 매주 한번 꼭 모이는 이 마을의 규칙

월간 옥이네 2023. 9. 3.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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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현장포럼사업 선정된 옥천 청성면 고당리... 활발히 소통하며 함께 마을발전 고민

[월간 옥이네]

 충북 옥천군 청성면 고당리 주민들
ⓒ 월간 옥이네
 
충북 옥천군 청성면 고당리. 높다란 산비탈에 자리 잡은 높은 벼루(고현), 옻샘이 솟는 강촌(옻샘마을), '원래의 집'이라는 뜻의 원당까지 세 개의 자연마을이 하나 된 마을이다. 아래쪽으로는 금강과 보청천이 합수되는 큰 강이, 뒤쪽으로는 산이 겹겹이 둘러싼 고당리. 오지 중의 오지라 불리면서도 인정으로는 예로부터 으뜸가는 이곳.

49가구 70여 명이 모여 사는 고당리가 최근 분주하다. 세 자연마을 주민들이 일주일에 한 번꼴로 한자리에 둘러앉아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발표해 뜻을 모으는 것인데, 이들의 논의는 다름 아닌 '어떻게 하면 고당리를 좋은 마을로 만들까'에 대한 내용이다. 고당리가 2023 시군역량강화사업의 일종인 농촌현장포럼 사업에 선정된 이후 벌써 네 번째 포럼이다. 함께할 일이 많아져 요즘 활기가 넘친다는 오늘 고당리의 풍경과 옛이야기를 담아본다.

고당리, 다 같이 혀

포럼을 시작하기에 앞서 행사를 진행하는 박수진 퍼실리테이터가 '오늘의 금지어'를 설명한다. 세 개 조로 나뉘어 각각 테이블에 앉은 주민들이 화면을 보며 세 개의 금지어를 따라 읽는데 '이장이 혀~', '반장이 혀~', '나는 몰러~' 느린 말투로 금지어를 다 읽고 나니 모인 공간이 금세 웃음바다가 됐다.

"자, 다들 약속하신 거예요. 이 말들은 오늘 금지어입니다(웃음). 모두 포럼에 참여하셔야 해요. 그럼 함께 외쳐볼까요? '고당리, 다 같이 혀~'"

4차 포럼은 앞서 있었던 포럼과 선진지(제천군 도화리) 견학에서의 경험을 나누고, 마을회관 활용방안을 논의하는 순서로 이루어졌다. 박수진 퍼실리테이터가 앞에서 행사를 진행하면 구체적인 논의는 조별로 한 후에 발표하며 결과를 공유하는 식이다. 개별 조에도 퍼실리테이터가 한 사람씩 자리해 논의를 돕는 구조인데, 주민들은 그 흐름을 따라 활발하게 의견을 이야기하고 퍼실리테이터는 가운데 놓인 커다란 종이에 이를 보기 좋게 정리한다.

선진지 견학으로 다녀온 제천군 도화리에서 서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어떻게 우리 마을에 적용해볼 수 있을지를 나누며 포스트잇에 하나씩 적어 붙이니 새하얗던 도화지가 제법 알록달록해졌다.

"도화리는 개복숭아가 특산물인데, 사람들이 이걸 참 잘 활용하더라고요. 마을 카페에서도 아이스크림에 개복숭아청을 올려주고, 농산물직판장도 운영하고... 개복숭아꽃이 만발하니 경관도 좋았던 것 같아. 우리 마을도 특산물을 잘 활용해서 마을에 이득도 되게 하고, 환경을 잘 가꾸어야겠다 싶었지요."

"옛길 복원한 것을 보면서 우리 마을도 옛 마을 문화를 다시 살려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당리에도 여러 전통문화가 있지요. 매년 가을, 겨울이면 만들던 섶다리가 있고 옻나무 관련된 옛 문화도 남아 있어요. 얼마 전 마을주민이 된 한기복 선생님도 마을 풍물패를 운영해보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고요."
 
 선진지 견학으로 다녀온 제천군 도화리에서 서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어떻게 우리 마을에 적용해볼 수 있을지를 나누며 포스트잇에 하나씩 적어 붙이니 새하얗던 도화지가 제법 알록달록해졌다.
ⓒ 월간 옥이네
 
곧 이번 포럼의 중요한 안건인 '마을회관 활용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어진다. 현재 고당리 마을회관에서 새로 만들 것, 더해야 할 것, 줄여야 할 것, 없애야 할 것 등을 나누어 이야기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현재 고당리의 고민거리가 확연히 드러난다.

"그런데 이 공간이 정말 '마을회관'이라 할 수 있는 걸까요? 마을회관이라 부르고는 있지만, 현판도 따로 달리지 않았고,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도 쓰이고 있는 형편이에요."

고당리 세 개 마을이 워낙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생겨난 문제다. 경로당은 세 마을 중 강 건너편인 원당에 있고 지대가 높은 고현에도 마을회관이 따로 있는 것. 현 공간(고당로2길 2)은 세 마을의 중간에 있기에 공식적인 마을 행사는 대부분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고당리 마을회관으로 위치가 등록은 됐다지만 경로당으로 활용하기 부적합한 건물이라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렇다 보니 마을 주민이 공간을 임대해 식당으로 활용하며 이곳을 운영하는 실정이다.

"마을회관에서 해볼 수 있는 것은 많겠지요. 특산물을 활용할 수 있도록 판매 시설을 갖출 수도 있고, 지자체의 지원을 받으면 문화 행사를 열어서 주민들의 즐길 거리도 만들고, 오다가다 평소에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해결할 문제가 있어 보여요."

그동안 수면 아래 있던 문제가 고개를 내민 순간이다. 한 주민의 지적에 다른 주민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당장은 어렵지만 고민해봐야 할 문제임에 동의한다. 

천문식 이장 역시 주민들이 마을회관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까움을 이야기하며 왜 현재 고당리 마을회관이 경로당지원사업에 지원받지 못하고 있는지 재차 설명한다. 그의 말에 주민들은 '상황을 이해한다', '앞으로 잘 해결해나가자'며 뜻을 모으고, 곧이어 마을주민들의 7·8월 생일 축하가 이어진다. 한자리에서 먹고 마시며 여유롭게 웃는 풍경이다.

자리에 모인 주민들은 이러한 마을 포럼이 마을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교류가 적던 세 자연마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생긴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황현상(74)씨는 "아무래도 세 개 마을이 거리가 멀어서 모이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같이 이야기할 기회가 생겨 좋다"고 했다. 한기복(57)씨는 "마을로 이주해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오늘 자리를 통해 고당리 사람들을 더 알아가고 만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이날에는 타지 생활을 병행하는 주민들도 일부 자리에 참석해 소통에 참여하기도 했다.
 
알아주던 오지 마을

 
 충북 옥천군 청성면 고당리
ⓒ 월간 옥이네
     
주민들로부터 고당리 옛이야기를 들어보면 역시나 '알아주던 오지 마을'이었다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주민 대부분의 주민등록상 나이가 실제 나이가 차이가 나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옛날 어른들 주민등록상 나이를 보면 기본 3~4살이 실제보다 적지요. 워낙 오가는게 어려우니까 즉시 출생등록을 하는 게 아니라, 면사무소 갈 일을 잘 모아두었다가 어쩔 수 없을 때 큰맘 먹고 한 번에 해결한 거예요(웃음)." (천문식 이장)

유영산(52)씨는 어린 시절 학교 다니던 기억을 회상했다.

"저는 청마초등학교(동이면 청마리, 1994년 폐교)를 다녔는데, 마을에서 5km 정도는 떨어진 거리에 있었어요. 배를 타고 건너다녀야 했는데, 비나 눈이 많이 오는 여름, 겨울이면 학교에 못 가는 날도 있었어요. 고당리 아이들은 공부도 너무 못하면 안 됐죠. 나머지 공부하고 늦게 끝나면 집에 못 돌아오니까(웃음)."

강촌과 원당마을을 잇는 원당교가 1990년 생기고, 폐고속도로가 군도로 개통, 경부고속도로 진입로가 생겨 교통이 나아진 것이 2000년대에 이르러서였으니 비교적 최근까지도 교통이 어려웠다. 그전까지 옥천읍에서 고당리에 오려면 청성면 양저리에서 5km가량을 걸어들어와야 했다.

* <옻 하나로 유명세 탄 동네, 다음 목표가 '마을만들기'인 이유> https://omn.kr/25fvn 기사로 이어집니다. 
 
 박기영·천문식·유영산씨
ⓒ 월간 옥이네
  
월간옥이네 통권 74호(2023년 8월호)
글·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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