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황석영도 화딱지 나게 했던 이 영화
[조종안 기자]
▲ 이만희 감독 영화 <삼포가는 길> 스틸컷1 |
ⓒ 유튜브 |
영화 <삼포가는 길>은 이만희 감독 유작으로 1973년 <신동아>(9월호)에 발표한 황석영 작가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세 주인공(영달, 정 씨, 백화)의 여정을 그린 이 영화는 한국적 로드무비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1975년 개봉작으로 흥행은 실패했지만, 제14회 대종상 우수작품상 받았으며 '한국 영화 100선'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황석영 작가는 1960년대 이후 개발과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떠돌이 노동자와 술집 작부를 소설에 등장시켜 서로의 내면을 통해 인간적 유대감을 보여준다. 삼포는 가공의 지명으로 소외층이 안식 얻을 수 있는 이상적 공간을 의미한다. 작가는 산업화를 거치면서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린 삼포를 통해 하층민의 애환과 원초적 고향 상실의 아픔을 그려낸다.
지난 8월 26일 전북 군산시 해망로 인문학창고 정담에서 열린 '정담시네마 시즌2(<영화 장르의 세계>)' 앞두고 <삼포가는 길>을 다시 감상할 수 있었다. 정담시네마 프로그램은 2018 금강역사영화제 집행위원장 역임했던 인디라인 김대현 감독이 기획했다. 이날은 영화 압축본(약 6분) 감상 후 황석영 작가와 전찬일 영화평론가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국보급 입담'으로 알려진 황석영 작가. 그는 영화에 등장하는 백일섭(영달), 김진규(정 씨), 문숙(백화) 등의 관계, 명장면과 화딱지 나게 했던 장면, 이만희 감독의 결혼생활과 촬영 중 쓰러졌던 전후 사정, 소설 원작을 하룻밤 만에 완성한 배경, 정부 당국의 검열로 영화 뒷부분이 새마을영화 수준으로 편집된 이야기 등을 걸쭉하게 풀어냈다.
▲ 이만희 감독 영화 <삼포가는 길> 스틸컷2 |
ⓒ 한국고전영화 |
나는 왁자지껄한 장터, 시골정취 물씬 느껴지는 논-밭길, 허름한 대폿집 등의 장면을 군산 지역 시장 및 농어촌 풍경과 비교하며 감상했던 경험이 있다. 황량하면서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설경과 실험적인 사운드가 인상적이었다. 배우들의 게걸스러운 수다와 현실감 넘치는 액션이 흥미를 더했으며, 향토색 녹아든 대화에서 고향 사투리 걸러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나무가 많은 포구'라는 뜻의 삼포(森浦), 가상의 지명임에도 정겹게 다가왔던 이유는 왜일까. 군산은 서해로 돌출된 반도형 지형으로 예로부터 포구(나포, 서포, 월포, 궁포, 경포, 죽성포, 하제포구 등)가 많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군산 지역은 예로부터 농작물과 어족자원이 풍부했다. 따라서 개항(1899) 전부터 포구는 활기를 띠었고, 장시도 발달하였다.
금강·만경강 수계에 속한 지류(탑천, 미제천, 어은천, 둔덕천, 구암천, 경포천 등) 또한 많았다. 삼포와 유사한 '하포 가는 길'은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 하포길은 지역 문인들 작품과 옛 어른들 대화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였다. 군산문화원장을 지낸 이병훈(1925~2009) 선생이 1981년 시집 <下浦(하포) 길>을 출간한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군산에는 개항(1899) 전부터 하포라는 지명이 존재하였다. 옛 어른들은 군산시 옥서면 선연리 하제(下梯) 부근을 하포라 하였다. '하제포구'를 줄여 하포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선연리에는 하제 외에 중제(中梯)와 상제(上梯) 마을도 있었는데 소나무가 무성했던 이곳은 일제강점기 비행훈련장, 광복 후 미공군기지에 포함되면서 민간인은 접근할 수 없게 됐다.
▲ 진행자 질문에 답변하는 황석영 작가 |
ⓒ 이가령 |
소설 <삼포가는 길> 배경은 전라도 어느 해안가 마을일 것으로 막연히 추정해 왔던 나는 황석영 작가를 만나 전북 부안군 행안면 계화리(계화도) 간척공사(1963~1978) 현장임을 확인하였다.
▲ 육지 쪽에서 바라본 계화도(2012년 12월 찍음). |
ⓒ 조종안 |
- 부안 계화도는 제 외갓집 동네이기도 합니다. 황 작가님이 처음 내려갔던 1964년 그즈음 저도 다녀온 적 있지요. 그때는 돈지에서 자그만 발동선 타고 계화도에 들어갔습니다.
"아~ 그러세요. 돈지라는 마을 지금도 있습니까? 함바집(식당) 거기에서 쭈~욱 올라오면 계화 뭔가(면사무소) 있는데, 그곳에서 쭉 나와서 걸어가면 대야(군산시 대야면) 근처잖아요. 지금의 동군산 쪽. 거기서 며칠 빈둥거리다 이리역(익산역)까지 가서 기차타고 천안에 갔다가 신탄진 연초공장 공사장에서 뭣을 쫌 했어요. 그러다가 다른 일거리 구하려고 조치원 거쳐 청주까지 걸어갔죠.
그래서 청주 근방에서는 <삼포가는 길>이 저희 것이라 하고, 익산에서는 이리니까 지꺼(자기 거)라고 그래요.(웃음) 이 동네 이야기니 저 길을 새로 만들면 재미있겠어요. 다큐 영화를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고. 왜냐면 황석영과 문숙은 부르면 되거든요. 그 할머니(문숙)하고 이 할아버지하고 같이 걸으면서 삼포가는 얘기도 하고 주막도 들렀다가 가면 좋을 것 같아요..."
"이 동네 이야기이니 다큐 영화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대목이 귀를 솔깃하게 했다. 보석처럼 귀한 콘텐츠를 발굴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소설에서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로 묘사되는데, 영화에서는 눈밭이 배경인 것도 새삼스러웠다.
▲ 소설 배경을 질문하는 필자와 답변하는 황석영 작가 |
ⓒ 김대현 |
황 작가는 2001년 영화를 처음 봤는데 끝부분에서 뜬금없이 남해대교(국내 최초 현수교, 1973년 준공)와 호텔이 등장하는 등 새마을 영화로 편집된 장면에서 "화딱지 났었다"고 털어놨다.
"이만희 감독이 어디까지 찍었냐 하면, (세 주인공이) 초상집에 가서 소동 벌이는 장면 거기까지 찍은 거야. 그렇게 찍고 현장에서 쓰러졌지. 간암 말기인 것을 몰랐던 거지. 더는 찍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이만희 감독은 병원으로 실려 가고, 문숙(백화)이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고, 그래서 나머지 뒷부분을 제작자인 주동진이 찍은 거야.
저 영화가 어디에서 끝나야 되냐면 백화는 백화대로, 영달은 영달대로, 정 씨는 정 씨대로 다 떠나잖아요. 백화가 씨익하면서 마지막 장면에 그 간이역 같은데 서 있다가 두 사람은 삼포로 가버리고.. 어디로 갈까 이러고 있다가 역 바깥으로 쓰~윽 나오는데 거기가 마지막이에요. 따~악. 거기서 끝나는 거야, 기차는 떠나고...
그런데 새마을 영화로 만들어버린 거야. 우리 고향에 갈 수 없는데 삼포에 가보자 그리해서 갔더니 비까비까한 호텔도 서 있고 난리가 났어. 야~ 세상 참 살기 좋아졌네. 여기에서 열심히 일 좀 해보자. 어쩌고 그러면서 끝나. 그게 한 2분쯤 될까. 그게 '삼포가는 길' 정본으로 배급돼서 전 세계로 돌아다니고 있는 거지. 아 그걸 보구 얼마나 화딱지 났는지 몰라..."
영화 <삼포가는 길> 개봉한 1975년, 그때는 유신시절로 모든 게 다 그렇고 그랬다. 당국의 검열과 통제로 영상물은 대부분 국정홍보용으로 제작될 수밖에 없었다. '유신헌법은 독재다'라는 말만 해도 징역살아야 할 정도로 불안하고 살벌했던 시절. 호텔과 남해대교 등장이 무슨 대수이겠는가. 그렇게 이해하면서도 씁쓸함은 오래도록 지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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