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억 들여 '최치원 기념관' 짓는 경주…이미 전국에 많은데, 왜

김정석 2023. 9. 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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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경북 경주시청 영상회의실에서 고운 최치원 기념관 건립 기본구상 및 타당성 조사 용역 최종 보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경주시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시청 영상회의실. 회의실 화면에는 ‘고운 최치원 기념관 건립 기본구상 및 타당성 조사 용역 최종 보고회’라는 글귀가 커다랗게 떠 있었다. 고운 최치원(857~908?)은 통일신라 6두품 출신의 문신으로 당대 최고 사상가로 평가받는다. 최승우, 최언위와 함께 ‘신라삼최(新羅三崔)’로 불렸다. 후대 고려·조선시대까지 유학과 문학에 큰 족적을 남겼으며, 최고 문인으로까지 추앙받는 인물이다.

이날 보고회엔 주낙영 경주시장을 비롯한 20여 명이 참석했다. 최치원 기념관 건립부지 검토, 주요 시설, 전시·교육·체험 등 공간 구성 등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총 사업비 약 150억원이 투입되는 최치원 기념관 건립 사업은 대지면적 9950㎡, 건축면적 600㎡ 규모로 향교와 서원 등 전통건축 양식으로 설계될 계획이다. 사업 착수부터 완공까지는 5년 정도 걸릴 전망이다.


“최치원 태어난 곳”…기념관 짓는 경주


경주시는 최치원이 태어난 곳으로서의 인연을 강조하고 있다. 최치원은 문성왕 재위 19년인 857년 통일신라 사량부(현 경주시)에서 최견일의 아들로 태어났다. 12세 때인 868년 당나라에 유학해 6년 만에 빈공과에 장원으로 급제했고 28세 때 통일신라로 귀국했다.

문제는 이미 전국 곳곳에 최치원 관련 시설물이 여러 개 조성됐다는 점이다. 경북 의성, 경남 함양, 경기 남양주 등이 저마다 최치원과의 인연을 내세우면서 기념 시설을 건립했다. 국내뿐 아니라 중국에도 최치원기념관이 있다. 이 때문에 경주가 건립을 추진 중인 최치원 기념관이 다른 시설과 차별성을 띨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예산낭비 논란도 제기될 수 있다.

경북 의성군 단촌면 최치원문학관 전경. 사진 최치원문학관


2019년 최치원문학관(단촌면 구계리)을 건립한 경북 의성군은 최치원이 시무 10조를 지어 신라 개혁을 추진했지만 집권 세력 반발로 이루지 못하고 관직에서 물러나 전국을 유람할 때 의성 고운사에 머물렀던 인연을 내세우고 있다.


의성·함양·남양주…저마다 인연 내세워


최치원문학관 홈페이지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전국을 유랑하던 최치원은 의성의 고운사에 잠시 머물렀다. 이때 최치원은 고운사에 머물면서 여지, 여사 두 대사와 가운루(駕雲縷), 우화루(羽花樓)를 지었다. 이후 고운사는 최치원의 호를 따 외로울 고(孤), 구름 운(雲)의 고운사(孤雲寺)가 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고 적혀 있다.

경남 함양군에는 최치원역사공원(함양읍 교산리) 내에 역사관, 최 선생 호를 딴 고운기념관 등이 있다. 역사관은 일대기, 문학, 사상을 정리한 공간이고 고운기념관은 영정이 있는 곳이다.

최치원이 진성여왕에게 시무 10조를 올린 시기에 그는 천령군(현 함양군) 태수로 재직 중이었다. 함양군은 최치원이 태수 시절에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강물을 돌리고 둑을 쌓은 뒤 나무를 심어 현재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숲인 ‘상림’을 만든 업적과 애민정신을 기리고자 공원을 만들었다.

최치원은 경남 함양에서 태수로 부임해 '상림'을 조성했다. 사진은 상림 숲을 조성한 최치원을 기리기 위해 1906년 건립한 사운정. 중앙포토


경기 남양주시에는 경주최씨 후손들이 2016년 자체적으로 건립한 최치원기념관이 있다. 3636㎡ 부지에 기념관 본관과 동재(자료전시관), 서재(문서보관실·접견실), 삼문, 편의시설 등 부속시설이 조성돼 있다.

이밖에 경남 하동에는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쓴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국보 제47호)가 있고, 경북 문경에도 최치원이 비문을 지은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국보 제315호)가 있다. 충남 보령에는 최치원이 글을 짓고 그의 사촌인 최인곤이 글씨를 쓴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국보 제8호)가 있다.

국내보다 앞서 중국은 장쑤(江蘇)성 양저우(楊州)시에 2007년 최치원기념관을 만들었다. 최치원은 당나라 때 반란군 황소(黃巢)를 토벌하자는 ‘격황소문(檄黃巢文)’을 썼다고 전해진다.

중국 양저우시가 정한 '최치원의 날'인 10월15일 최치원 기념관에서 경주 최씨 후손들이 제향(제사)을 올리고 있다. 중앙포토

경주시 “늦었지만 역사적 가치 재조명”


주낙영 경주시장은 “고운 최치원 선생은 통일신라시대의 대문장가로 한·중·일을 아우르는 대사상가이자 9세기 동아시아 한문학 정립의 초석이 된 인물”이라며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최치원 선생의 출생지인 경주에 기념관 건립을 통해 최치원 선생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주=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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