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골칫덩이 빈집에 생기 불어넣는 ‘우리 동네 해결사’
충북 옥천·영동 취약지역 개조사업
주민 똘똘 뭉쳐 빈집 허물고 ‘탈바꿈’
정책 만족도 높다…주민 사업 참여도↑
“마을 주민들이 함께 돕고 관심을 가지다 보니 마을에 웃음꽃 피더라니깐. 정말이야. 깨끗하니 좋고 사람들도 찾아와서 얼마나 좋아”
지난달 31일 충북 옥천읍 청산면 백운리 일원 마을회관에서 만난 박명한(90) 할아버지는 점차 바뀌어 간 마을 모습 들을 돌아보며 이같이 말했다.
박씨가 사는 백운리 마을은 옥천읍에서 25㎞ 떨어진 격오지다. 164가구, 300명 채 안 되는 주민들이 거주 중이다. 65세 이상 주민이 절반을 넘어섰고 독거노인 수도 18%에 달한다. 고령화를 넘어 초고령화에 접어든 마을 중 하나로 꼽힌다.
독립운동가 8명을 배출한 유서 깊은 마을임에도 빈집이 생겨나는 걸 막을 순 없었다. 취약한 인구구조와 노후화된 생활환경 탓에 마을은 고민이 깊어졌다. 2017년부터 지금까지 백운새마을회 이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선옥(73)씨는 어려운 숙제를 차근차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박 이장은 ‘우리 동네 해결사’로 불린다. 마을주민과 빈집 소유자 입장을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대안점을 찾아 동네를 더 살기 좋게 만든 평가를 받는다.
주거환경이 열악한 마을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박 이장은 농어촌 취약지역 개조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 2020년 백운지구 새뜰마을 사업에 선정돼 낙후된 빈집철거와 슬레이트 지붕개량, 재래식 화장실 개선 등 집수리는 물론 보안 가로등과 소화전 설치, 마을회관 리모델링 등을 통해 안전문제와 생활편의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게 됐다.
4년간의 사업 기간을 거쳐 올 연말까지 준공 예정인 백운리 마을은 빈집 25개소를 모두 철거했다. 빈집이 없어진 새 땅에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드러났다.
지저분했던 공간을 새로 개선해 지역 문화와 역사 예술 등이 합쳐진 문화 융합 공간을 형성할 계획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산한청년당, 조선중앙일보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독립에 크게 이바지한 조동호 선생 생가터를 활용해 사적지 기념공간과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박 이장은 “10년 후 백운리 마을이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궁금하다”며 “정부에서 지원해 준 사업비로 쓰러져 가던 빈집을 철거할 수 있었고, 노후화된 마을 정비 등으로 주민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마을에 살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자부했다. 이어 “앞으로 마을에 남은 숙제는 많지만, 마을이 다시 살아난 느낌이라 모두가 좋다”고 덧붙였다.
대숲을 품은 생활공동체, ‘수리실 마을’
충북 영동군 심천면 장동2리 일원에는 주민 38명이 사는 단란하고 가족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마을이 있다. 대나무로 둘러싸인 수리실 마을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72.3%, 독거노인 비율은 40%가 넘어 초고령화가 심한 곳 중 하나다.
지어진 지 30년 이상된 노후주택은 마을 전체에 76%를 차지했고, 1970년대 초 지붕재로 보급됐던 슬레이트 지붕은 68.4%에 달해 개선이 시급했다. 특히 방치된 공폐가를 중심으로 각종 폐기물 무단 투기 장소로 쓰여 대책이 필요했다.
수리실 마을은 지난 2019년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협의회(현 지방시대위원회) 공모사업에 선정돼 새롭게 단장할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총 사업비 18억원(국비 12억원·지방비 5억원·자부담 1억원)으로 4가지 계획을 수립했다. 우선 생활·안전·위생 기반 확보를 위해 마을안길을 정비하고 공동·재래식화장실을 정비했다. 또 위험에 노출된 노후담장을 수리하고 공동우물을 복원했다.
더불어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빈집철거와 슬레이트 지붕개량, 집수리 등을 완료했다. 농촌 지역에서 빈집 소유자에게 집을 철거할 때 동의를 묻는 과정은 대부분 어렵다. 그러나 수리실 마을은 달랐다. 마을주민 개개인의 욕심을 줄이고 이웃을 먼저 배려해 수월하게 처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마을엔 대문이 없다. 마을 안길 담장 노후화로 보행안전에 문제가 생기자, 정비작업을 거치면서 대문을 모두 철거했다. 문이 없어지자 대화가 늘었고 모두가 어우러져 이웃사촌처럼 다정스럽게 지낸다.
알록달록한 담장은 마을 자랑거리다. 이의조 청년이장은 “일반 담장 높이보다 조금 낮춰 설계해 마을 전체가 탁 트여 보기 좋다”며 “3가지 색을 다양하게 배치해 아름다움을 더했다”고 설명했다.
사업 과정을 돌아본 마을주민 이의근씨는 “주민들의 역량과 민주적인 절차에 순응하면서 모두를 위해 양보하고 협의하는 과정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고 말했다.
수리실 마을 장종식(67) 이장은 “우리 마을은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공동체성이 살아 있다”며 “아름다운 마을을 만들기까지 모두가 ‘함께’했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내 농촌지역개발과 지역특성화 성공사례로 꼽히자 다른 지역 마을 12곳에 견학·체험을 오며 운영노하우를 전달하기도 했다.
위기를 기회로…지방 소멸 막는다
전국 곳곳에 있는 오지마을이나 산동네와 같은 취약지역은 저출산·고령화가 가속화돼 점점 쇠퇴와 소멸 등 위기를 맞닥뜨리고 있다.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이다.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9년 이래 사상 최저치다. 이대로라면 내년 출산율 0.7명 선마저 무너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지방소멸 위기에 맞서 쇠퇴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는 도시재생에 힘쓰고 있다.
지방시대위원회는 오지마을 등 취약지역 주민 기본 생활 보장을 위해 2015년부터 안전·위생 등 생활인프라 확충, 주거환경 개선 등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달 공식 출범한 지방시대위원회는 국정과제를 총괄하는 대통령 소속 조직 중 하나다. 기존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지방자치분권위원회를 통합했다. 지방시대위는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정책 수립과 이행이 업무 핵심이다.
지방시대위는 사업지구 선정 등 총괄역할을 수행하고 농림축산식품부와 국토교통부가 사업관리 및 예산을 집행한다. 선정된 곳은 4년간 국비 15억원을 지원받는다. 현재까지 농촌 취약지역 총 529개소를 선정·지원했다.
앞으로는 재래식 화장실 4000개소를 철거하고 빈집철거 4000동, 슬레이트 지붕정비 9000동, 집수리 6000동 등 노후 불량 주택을 정비할 계획이다.
사업에 참여한 주민 만족도는 매년 상승세를 기록했다. 지난해 농식품부가 발표한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 만족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년 대비 3점 높은 90점을 획득해 주민 체감형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정부는 해당 사업 투자 확대로 주거 취약지역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지방시대위 관계자는 “2015년 300억원이었던 사업비(누적)가 올해 6598억원으로 늘었다”며 “건축자재 수급악화 등 대외여건을 고려해 주택정비 분야 정부지원 단가를 상향해 취약 지역 생활 여건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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