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를 '동해'라고 못하는 국민의힘? 어디까지 양보할 건가
[이희동 기자]
지난 8월 29일, 서울 강동구의회 제303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가 열렸습니다. 지난 6월 정례회 이후 2개월 만에 열리는 만큼 의회는 오랜만에 활기찼는데요, 또 그만큼 긴장감이 돌기도 했습니다. 본 의원이 발의한 <미국 국방부의 '동해'에 대한 '일본해' 표기 행위 규탄 결의안> 때문이었습니다.
▲ 일본해가 맞다는 미국 국방부 |
ⓒ JTBC |
본 의원이 위 결의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15일 미국 국방부가 앞으로 '동해'라는 표현 대신 '일본해'를 공식적으로 표기하겠다고 밝힌 보도를 본 직후였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미국의 주장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일 공조를 외친다고 하지만, 그동안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첨예하게 논쟁이 되어왔던 동해 명칭을 그냥 일본이 원하는 대로 양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동해' 명칭을 양보하면 일본은 그다음 수순으로 독도마저 내놓으라고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에 본 의원은 시급하게 결의안을 만들어 선배, 동료 의원들에게 서명날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강동구에서는 조례에 따라 재적의원 1/5 이상이 서명할 때 의안을 발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결의안은 크게 문제가 없는 이상 모든 의원들이 함께 발의자로 서명을 합니다.
▲ 결의안을 발의하고 있는 이희동 의원(필자) |
ⓒ 강동구의회 |
다음날, 국민의힘 의원들은 의총을 통해 본 의원의 결의안과 관련하여 서명날인을 할 수 없음을 통보했습니다. 어차피 4명 이상 서명을 받았으니 발의는 될 것이고, 본회의에 올라가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통과는 될 테지만, 자신들의 이름을 결의안 발의자에 올릴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의총 전에 서명을 했던 두 명의 국민의힘 의원은 제 방에 따로 찾아와 자신의 서명을 빼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건 너무 심하지 않냐는 저에게 한 국민의힘 의원은 대답했습니다.
"미안해. 그렇지만 어쩔 수 없어. 중앙 눈치가 보이지. 하필 민주당 당론이잖아. 후쿠시마 오염수 결의안은 국민의힘 당론으로 반대였으니까 반대했지만, 이건 당론이 없어. 그러니 반대는 안 할 거야. 하지만 서명은 안 돼. 이해해줘."
어디까지 양보할 것인가
드디어 의장이 본 의원의 결의안을 상정했고, 저는 나가서 결의안의 제안설명서를 읽었습니다. 미국 국방부의 '일본해' 표기에 유감을 표한 뒤, 즉각 수정할 것을 촉구했고,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주문했습니다.
▲ 미국 국방부의 '일본해' 표기를 규탄하는 강동구의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
ⓒ 강동구의회 |
답답했습니다. 그리고 안쓰러웠습니다. 무슨 홍길동도 아니고 '동해'를 '동해'라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주민의 대표들이라니. 국민의힘 의원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도대체 누가 왜 이런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인가.
'동해'라는 단어를 보고도 머뭇거리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드는 걱정은 독도 영유권이었습니다.
일본이 이제는 아예 대놓고 '다케시마'와 관련된 홍보 동영상을 유포하며 압박하고, 미국이 '동해' 대신 '일본해'를 공식화하는 이 마당에 현 정부가 독도를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물론 독도가 국민 여론의 최후의 보루인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윤석열 정부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과연 국민 여론을 의식하여 독도 영유권을 끝까지 주장할지 걱정이 앞설 뿐입니다.
▲ 국민의힘 의원들은 저 주장을 끝까지 고수할 수 있을까? |
ⓒ 강동구의회 |
개인적으로는 의원들의 모든 말바꾸기가 그들의 신념은 절대 아닐 것이라고 믿습니다. 다만 중앙정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기초의원의 비애를 느낄 뿐입니다. 왜 기초의회는 이런 당연한 사실에도 눈치를 보아야 하는가.
'동해'도 '동해'라고 대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홍길동'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다시 한 번 심심한 위로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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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희동 기자는 강동구의회 의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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