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젊은 작가의 시선으로 아트선재센터 200% 즐기기

김희윤 2023. 9. 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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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8일까지 '오프사이트' 展
아트홀,백스테이지,기계실 등 다양한 공간 활용
능동적 관람 통해 미술관 공간 새롭게 경험

실재와 가상, 현상과 지각을 바라보는 동시대 작가들의 새로운 인식과 태도는 신선하면서도 예리하다. 공간과 실재에 대한 감각은 시대와 세대를 지나 재구성되고 또 새롭게 만들어진다. 수직으로 구축된 미술관 건축, 사분원으로 방사되는 전시장. 이 공간을 연결하는 계단과 시설물들을 활용한 이들의 시선은 전시장인 아트선재센터의 내부정원과 옥상정원 등 미술관의 전체 사이트로 확장돼 조각적 실천과 감각으로 다시 연결되고 분리된다.

현정윤, '필링 유 앤 필링 미'(2023) 설치 전경. 사진: 홍철기. [사진제공 = 아트선재센터]

아트선재센터가 10월 8일까지 개최하는 전시 '오프사이트'는 아트선재센터의 내외부 공간을 다각도로 활용한 동시대 작가 여섯명의 시선을 조명한다. 전시에 참여하는 그레이코드 지인, 오종, 이요나, 최고은, 현남, 현정윤은 아트홀, 백스테이지, 분장실, 정원, 계단, 기계실, 옥상 등 미술관의 기능적 공간을 전시 장소이자 재료로 삼고, 각자의 조형 언어와 조각적 실천을 미술관의 건물 안팎에서 실험하고 관객들을 맞는다.

이번 전시는 1995년 아트선재센터가 미술관 건물을 착공하기 전 기존 사이트의 공간적 의미를 전유하며 개최한 장소-특정적 전시 '싹'과 연결된다. 당시 전시에 참여한 박이소, 안규철, 이불, 최정화 등 열일곱 명의 작가들은 장소를 구성하는 논리에 반응하는 작품을 제작했다. 이러한 시도는 미술관으로 변화될 공간에 대한 작가들의 상상력뿐만 아니라 기존 주택으로 사용된 장소에 대한 기억을 환기하고, 작가-작업-관객이라는 전통적 전시 구조를 넘어서는 새로운 소통과 다중적인 네트워크의 작동을 촉발했다.

'싹'에서 시작된 이러한 아트선재센터의 역사는 전시장이 아닌 공간, 특히 기능이 존재하는 공간에 조각 및 설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다양한 ‘오프사이트(off-site)’ 전시들로 확장됐다. 이러한 시도는 우리가 감각하고, 사고하고, 소통하는 모든 행위에 전제되는 시공간에 대한 동시대적 조건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에 대한 지속적인 질문이었다.

그레이코드, 지인, '+3x10^8m/s, 빛의 속도를 넘어〉와 〈35부터 20,000'을 겹친 악보, 2023. 사진: 홍철기. [사진제공 = 아트선재센터]

현남은 외부와 단절된 공간인 기계실 안에서 배관과 덕트에 조각을 연결해 공간을 점유하고, 이요나는 미술관 내부정원에 오래전부터 있던 돌로 만들어진 낙수 연못에 분수처럼 기능하는 조각을 설치한다. 오종은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연결된 층계 공간에 있던 조명을 대체하여 LED 조각을 매달고, 최고은은 건물 내부에 숨겨진 산업용 배관을 조각의 형질로 전환해 옥상정원으로 꺼내 올린다. 현정윤은 아트홀 백스테이지와 분장실에 기형적인 신체를 닮은 조각을 마치 연극이 시작하기 전 배우들처럼 위치시키고, 그레이코드, 지인은 반대편 아트홀 무대에서 우주 너머 비가시적 현상의 실재를 느끼게 하는 미디어 작업을 선보인다. 한편 지하 1층 복도에 마련된 아카이브 공간에는 작가들의 개별 자료와 인터뷰 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전시는 관객의 관람 방식에서도 차별점을 뒀다. 관람객은 안내데스크에서 받은 지도를 펼쳐 안내된 동선을 따라 미술관의 내외부 공간을 탐험하고, 탐험 과정에서 작가들의 작업을 발견하게 된다. 분장실, 백스테이지, 기계실 등 평소 일반 관객에게 개방되어 있지 않은 공간으로 가는 길이 다소 낯설고 어려울 수 있다. 이때 건물 곳곳에 붙어있는 ‘off-site’ 스티커는 작품을 찾는 길라잡이가 된다. 스티커가 주변에 보인다면, 작품으로 가는 올바른 길로 향하고 있다.

현남, '연환계'(2022) 설치 전경. 사진: 홍철기. [사진제공 = 아트선재센터]

일례로 지도에도 상세히 나와 있지 않은 현남의 신작을 찾으려면 기계실에서 힌트를 획득해야 한다. '적벽대전'에서 방통이 조조 진영에 사슬로 배를 연결하도록 유도한 후 조조의 군선에 불을 놓아 승리를 거둔 책략 '연환계'를 제목으로 한 이 작품은 쇠사슬에 묶인 채 연결된 조각들로 위태로운 구조 안에서 기계실 구조물에 기생해 공간을 점유한다. 평소 외부인의 접근이 통제된 이 공간에서 물질이 끝없이 순환하는 배관들과 큰 소음 속 작동하는 기계는 오늘날 지상과 해저, 우주를 가로질러 연결된 네트워크를 상징한다. 금융 거래, 통신, 물류, 군사의 영역을 넘나들며 세계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이 연결망은 국가 안보 문제나 국제 분쟁의 주요 배경으로 작용한다. 작가는 쇠사슬에 연결된 조각을 통해 기술과 권력의 관계, 속이 뚫린 구멍들의 네트워크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해 관객에게 제시한다. 이처럼 '오프사이드'는 관객이 미술관 곳곳을 능동적으로 찾아다니며 관람하는 방식을 통해 아트선재센터의 건물을 새롭게 경험해보기를 제안한다.

전시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후원을 받아 무료로 진행된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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