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받은 소수만 가던 곳…사법부 엘리트 모임 '민판'이 뭐길래

김정연 2023. 9. 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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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밀어주는 손을 잡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좁은 문이 있었다. 법조계 엘리트 모임으로 알려진 민사판례연구회(민판) 얘기다. 올해 들어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권영준 대법관, 김형두 헌법재판관 등이 지명될 때마다 민판 소속이라는 점이 거론되며 다시 이 단체에 눈길이 쏠린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뉴스1

민판은 판사만 가입했던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 등과 달리, 판사·변호사·법학교수를 모두 포함한 범(汎)법조계 연구모임이다. 양승태·이용훈 전 대법원장도 민판 출신이다. 올해 2월 기준 회원수는 285명이다.

민판은 1세대 민법 전문가인 곽윤직 서울법대 교수(1925~2018)가 1977년에 만들었다. 교수와 판사가 각자 일만 하지 말고, 모여서 민법 얘기를 좀 해보자는 취지였다. 판사 수가 얼마 되지 않던 시절, ‘교수나 판사나 어차피 다 내 제자인데…’ 하는 점도 작용했다. 민판 회원이었던 판사들이 퇴직해 변호사가 되면서 지금은 변호사 회원도 있지만, 처음엔 현직 판사와 교수만이 대상이었다.

회원은 처음엔 곽 교수가 선발했고, 이후엔 그 선발된 회원들이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판사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받았다. 우수함의 기준이 꼭 성적순은 아니었다. 관건은 추천이었다. 사법시험·사법연수원 성적이 좋아도 누군가 추천해주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판사는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이나 이기택 전 대법관처럼 지명도 있는 분들이 왜 민판이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순전히 곽윤직 교수 마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018년 별세한 곽윤직 교수. 우리나라 민법의 거목으로 불렸다. 연합뉴스


서울법대 남성만 뽑다가…'우리법 해체'에 역으로 민판이 열렸다


사법연수원 정원이 300명일 때 민판은 한 기수에 4~5명 뿐이었다. 선발 과정도 알음알음 이뤄져 동기들조차 누가 민판인지 몰랐다. 초기엔 여성이 없었다. 선발 기준이 공개되지 않으니 ‘서울법대 나온 성적 좋은 남자’만 뽑는 것으로 알려졌다. “폐쇄적이란 말 들어도 싸다”는 민판 회원이 있을 정도였다. ‘사법부 내 하나회’라는 지적도 그래서 나왔다.

2010년 윤진수 서울대 교수가 회장을 할 때 회원가입 신청을 받는 방식으로 바꿨다. 회원 181명의 명단도 공개하고, 회칙도 만들었다. 당시 우리법연구회 등 법원 내 연구모임의 사조직화·세력화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며 폐지 요구까지 나오던 분위기를 반영한 변화다. 윤 교수는 “법학계와 법조계가 심각한 변동을 겪고 있고 그럴수록 연구회가 순수한 학술연구단체라는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었다.

이후 13년간 회원 수는 100명 가까이 늘었다. 여성 회원도 많다. 올해도 10여명이 회원가입 신청을 했다. 과거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다만 이름만 올려둔 휴면회원도 많다고 한다. 가입신청제로 바뀐 뒤에도 공부 잘하는 판사들에게 가입 제안은 여전히 하고 있다. 그래서 젊은 회원 중엔 대법원 재판연구관이나 사법정책연구원 소속 등 연구직 판사들이 많다.


조직 없고 공부만…"발표자, 틀리면 박살 나는 수준"


서울 서초동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는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대밥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후 민판에 탈퇴 신청을 했다. 연합뉴스
민판은 월 1회 판례 발표 및 토론을 하고, 1년치 자료를 모아 해마다 책을 펴낸다. 민판 월례발표는 어렵고 토론이 치열해, 발표 준비자가 느끼는 압박이 상당했다고 한다. 민판 회원인 한 변호사는 “판례 발표를 하고 토론을 하는데, 서로 말을 끊어가며 할 정도로 치열한 자리였다”며 “발표자의 논지가 틀리거나 뭘 잘못 대답하면 거의 박살이 나는 수준”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다만 10년차 이상이 되면 업무가 늘면서 월례발표회 참석은 줄고, 하계 심포지엄이나 연말 송년회 등 큰 행사만 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공부 외에는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는 모임을 추구한 곽윤직 교수의 의도에 따라, 민판은 2010년까지도 회장 1명, 간사 1명에 회칙도 없이 돌아갔다. 학회가 아닌 ‘연구회’라는 이름을 붙인 단체도 법조계 연구모임 중에선 최초였다고 한다. 회장 자리, 임원 자리에 신경쓰는 일이 없도록 한 것이다.

지금도 월 1회, 서초동에서 세미나실을 빌려 월례회를 연다. 다만 예전만큼 불꽃 튀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한다. 매번 20명 정도가 오지만 주제에 따라 참석자는 매번 달라지는 편이다. 과거에 비해 열혈 고정 참석자는 적고, 모임 참석률이 높았던 젊은 판사들이 이제는 너무 바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올해 하계 심포지엄은 ‘자본시장의 법적 쟁점 및 새로운 동향’을 주제로 강원도의 한 리조트에서 진행했다.


오해받을라, 고법 부장만 돼도 '탈퇴하라' 권유


맹렬하게 공부만 한다는 민판 내부의 설명과 다르게, 외부에서는 ‘우리법연구회와 대척점에 선 보수성향 법조계 사조직’이라는 시선이 있다. 군사정권의 사법부 개입에 반발한 사법파동을 계기로 우리법연구회가 생겼는데, 민판은 그때도 공부만 했지 않느냐는 비판이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령으로 집회가 금지됐을 때도 민판은 계엄사령부에 학술모임을 하겠다고 신고하고 모임을 그대로 열었다.
김명수 대법원장.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뉴스1

하지만 민판과 우리법연구회 초기 회원은 상당수가 겹친다. 이광범 법무법인LKB 대표와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등이 대표적이다. 한 판사는 “민판,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들은 민사·형사·젠더·노동 가리지 않고 여러 군데 가입하고 온갖 공부하는 걸 즐기는 성격”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외부에서 편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대법관·헌법재판관이나 법원행정처 요직을 맡게 되면 대개 자진 탈퇴 수순을 밟는다.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돼도 탈퇴 권유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형두 헌법재판관은 과거 법원행정처에 발령받은 뒤 탈퇴했고, 권영준 대법관과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는 지명 이후 탈퇴 신청을 했다. 임기를 마치면 다시 가입하는 경우도 많다. 양창수·김소영·민일영 전 대법관 등은 현재도 민판 회원이다.


"다 똑같이 하는데 왜 우리만?" vs "지적 수용하고 경계해야"


법원 내 다른 연구모임도 월례 발표 및 회원 교류, 여름 가족동반 심포지엄을 여는 곳은 많다. 그러나 민판에 유독 ‘카르텔’이라는 평가가 덧씌워진 이유는 초기의 폐쇄성 탓이 컸다. 민판 소속이 아닌 한 판사는 “법원 들어와서 맨 처음 만나는 그룹이 얼마나 중요한데, 제일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다 모인 엘리트 그룹이니까 당연히 들어가면 좋다”며 “다른 연구모임은 들어가고 싶으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데 민판은 다 들어가지 못하니까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판 내부에서도 스스로 경계하자는 말이 나온다. 한 변호사는 “학술모임은 나쁘지 않은데 조직화·세력화해서 이익단체로 변질하는 건 내부적으로도 조심해야되고, 외부에서 지적받는 부분은 반영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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