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바람, 나비로 찾아오길”… 30만 교사들의 검은 눈물

조유정 2023. 9. 2.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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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주째 이어진 자발적 모임, 진상 규명 촉구
또 세상 떠난 초등교사 2명 사망, 슬픔 잠긴 교사들
2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앞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사들이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에 참석해 팻말을 흔들고 있다.   사진=조유정 기자

“지난 7월18일 이후 우리의 삶은 함께 멈췄습니다. 이번 여름 만나자고 했던 그 약속은 이제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됐습니다. 선생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누가 선생님을 힘들게 했나요. 우리는 모두 당신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빛을 함께 기억하고 추모할 것입니다.” (사망한 서이초 교사의 동료 A씨)

동료 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검은 옷을 입고 모인 30만 교사들의 눈물로 국회 일대가 물들었다.

2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일대에서 열린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에 총 30만명(경찰 추산 20만명)의 교사들이 모였다. 교사들은 “또 다시 동료를 잃었다”라며 “보이지 않은 곳에서 외롭게 세상을 떠난 교사들의 사망까지 진상규명을 촉구한다”라고 외쳤다.

이번 7차 집회는 지난 7월 사망한 서이초 교사의 49재날(4일)에 교사들이 추진 중인 ‘공교육 정상화의 날’을 이틀 앞두고 열렸다. 사망한 서이초 교사의 사건 진상을 규명하고 추락한 교권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7월29일 5000여명의 교사들이 자진해서 1차 집회를 시작한 이후 4만명(3차 집회), 6만명(6차 집회)을 넘어 이날 30만명으로 늘어났다. 7차 집회를 운영한 ‘교육을 지키려는 사람들’에 따르면, 전국에서 600여대의 버스를 대절해 집회 장소로 모였다.

예상을 뛰어넘는 인파가 이날 오후 2시 국회 앞을 가득 채웠다. 사전에 주최 측은 많으면 10~15만명이 참여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두 배가 넘는 인원이 모였다. 집회 시작 20분 전부터 집회구역으로 신고된 12구역이 모두 가득 차, 경찰과 진행요원들은 교사들을 여의도공원으로 안내하기도 했다.

2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앞에선 열린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 교육을 지키려는 사람들

사망한 서이초 교사를 기억하는 같은 학교 동료 교사들과 동기들이 이날 고인을 추모했다. 서이초 동료 교사 B씨는 “고인은 서이초등학교를 발령 받은 뒤 ‘이름이 참 예쁜 학교’라고 말하며 좋아했다. 설레는 시작이었으나 쓸쓸한 죽음으로 끝나 마음이 아프다”라며 “모든 선생님들이 그저 뽑기 운에 의해 1년을 버티는 것이 아닌, 안전하게 보호할 울타리에 기대 행복한 교육활동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호소했다. 또 다른 동료교사 C씨는 “집회가 지속됨에도 억울한 죽음에 진상규명이 없어 화가 나고 답답하다”라고 토로했다.

사망한 서이초 교사와 같이 공부한 서울교대 교육전문대학원 동기들은 이날 국화 꽃 바구니를 들고 고인을 추모했다. 심우민 외 36명의 동기들은 “친구가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도 아무 일 없던 듯이 수업을 하고 웃어야 했던 그날의 기괴한 기분을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고인은 삶을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와 축복으로 여겼다. 서이초 교사로, 신규교사로 표현되는 고인의 이름을 절대 잊지 않겠다”라고 추모했다.

서이초 교사가 사망한 지 한 달 반이 지났지만, 교사들의 죽음은 멈추지 않고 있다. 경찰과 서울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지난 31일 서울 양천구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 1일 전북 지역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가 숨졌다. 이들 역시 교직 생활에 어려움을 겪은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앞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사들이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에 참석해 팻말을 흔들고 있다.   사진=이예솔 기자

교사들은 또 동료가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비통해했다. 서울 강남에서 온 초등교사 D씨는 “서이초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반복돼 참담한 마음”이라며 “선생님들이 세상을 등지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이유에 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와 교육청이 교권 침해를 막을 수 있는 단호한 법적 대책을 마련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4일 ‘공교육 정상화(멈춤)의 날’을 제지하는 교육부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세종시 한 고등학교 교사 E씨는 “연가와 병가를 써서 고인의 49재를 기리는 일은 인간, 시민, 노동자로서 행사할 수 있는 마땅한 권리”라며 “그 누구도 겁박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경기 한 초등교사 F씨는 “교육부가 강조하는 ‘법과 원칙’을 지키다 돌아가신 동료 교사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고 추모하는 건 동료로서 법과 원칙”이라며 “우린 동료교사로서의 법과 원칙을 7주째 지켰고, 4일에도 지키려 한다”라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서 교사들은 ‘공교육 정상화의 그날까지 우리들은 함께 한다’, ‘아동복지법 즉각 개정하라’, ‘진실 없는 사건수사 진상규명 촉구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악성민원인 강경 대응’이라 적힌 손팻말을 흔들기도 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인 안민석·도종환·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집회에 참석했다.

2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앞 거리에 걸린 현수막.   사진=이예솔 기자

“올 여름 우리는 교사 생존권을 이야기하며 모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엊그제 또 다시 두 명의 동료를 잃었습니다. 서이초와 똑같은 사건이 재연됐음에도 학교는 침묵합니다. 우리 교사들이 공교육 정상화를 외치는 동안, 교육부는, 교육청은, 관리자는, 국회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집회에서 사회를 맡은 교사 G씨)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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