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하고,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정승주 2023. 9. 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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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덕에 다시 시작한 그림 그리기... 전시까지 하게 되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정승주 기자]

<오마이뉴스>에 글을 쓴 지 어느덧 석 달. 그동안 열심을 내어 열 편 가까운 기사를 썼다. 글쓰기는 이제 은퇴자인 내가 하는 가장 비중 높고 뿌듯한 일이 된 것이다. 그런데 글을 쓰다 마지못해 그리게 된 그림 덕분에 또 마법 같은 일이 생겼다. 집 근처에 있는 어느 작은 도서관의 요청으로 야외 행사에 내 그림을 전시하게 된 것이다. 영광스러우면서, 조금은 겸연쩍은 일이다. 저간의 앞뒤 사정은 이러하다.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송고하려면 시민기자로 가입해야 한다. 그러면 '내방'이 생기는데, 그 과정에서 프로필도 작성해야 한다. 프로필에 '책 읽기와 산책을 좋아하며, 세상은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습니다'라고 썼다.

하지만 프로필 설명과 관련한 이미지도 넣어야 했다. 들뜬 마음으로 첫 기사(<요즈음 뭐하면서 지내세요?>)는 완성했는데 프로필 이미지로 쓸 사진을 찾아보니 마땅치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A4 종이에 검은 펜과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 썼던 색연필로 '책이 있는 거실 풍경'을 그려보았다.

결정을 잘 못하는 나는 아내에게 어떠냐고 의견을 물어보았고, 나쁘지 않다는 말에 힘을 얻어 '내방'의 프로필 이미지로 용감하게 등록했다. 그것이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게 되면서 그린 나의 첫 그림이다. 스케치가 아니라 색까지 넣어 마지막으로 그림을 그려본 게 중학생 때였으니, 무려 50년 만의 그림인 셈이다.

두 번째 그림은 작성한 기사에 넣기 위해 그렸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 기사를 좀 더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해서였다. 기사 목록을 보니 거의 모든 기사에는 제목과 더불어 사진이나 그림과 같은 이미지가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내 기사는 제목만 덩그러니 있으니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앞이나 뒤에 배치된 기사 제목인양 아쉬웠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기사에 맞는 그림을 직접 그려보았다. 다시 아내에게 기사에 넣어도 될 수준인지 물었더니 예기치 않게 최상의 칭찬을 해줬다. 그때 그린 것이 세 번째 기사 <가사 초보자로 살아도 끄떡없다>에 넣은 '식탁과 부엌 공간' 그림이다.

이후 나는 기사를 쓰고나서 마땅한 이미지가 없으면 그림을 그려 넣는다.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없는 것보다 나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지금까지 8개의 기사를 썼는데, 넣은 그림을 세어 보니 5개다.
 
 《일산 호수공원 작은 도서관》 앞 그림 전시행사에 제출한 <도서관 전경> 그림.
ⓒ 정승주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다 보니 이를 아는 지인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일산 호수공원 안에 정말 장난감 같은 조그마한 도서관 하나가 있다. 이름도 그에 걸맞게 '일산 호수공원 작은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는 아내의 지인도 그중 한 분이다. 아내가 광고한 덕분인지 그분이 내 기사를 본 모양이다. 기사에 넣은 그림을 칭찬했다는 말을 아내로부터 전해 듣기도 했다.

그러던 차 지인은 아내에게 도서관 앞마당에서 그림 전시회를 하는데 내 그림을 보내주면 전시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알고 보니 독서문화축제(<2023 대한민국 독서대전>) 행사가 호수공원에서 있어 작은 도서관도 부대행사로 그림 전시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 그림 수준에 무슨 전시냐고 마다했다. 그랬더니 아내는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여러 동아리의 회원 등이 그린 작품을 전시하는 거라 했다. 요컨대 그림을 배우고 있거나 배운 아마추어들의 전시회니 부담가질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내의 사나운 눈총을 마냥 거절하기 어려워 결국 받아들였다.

그런데 막상 그리려니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긴장해선지 그나마 있는 실력도 발휘하기 어려웠다. 어찌어찌해서 작은 도서관의 전경과 실내를 그린 두 점의 그림을 완성해 보냈다.
 
 《일산 호수공원 작은 도서관》 앞 그림 전시행사에 제출한 <도서관 내부> 그림.
ⓒ 정승주
 
드디어 9월 1일 호수공원에서 독서대전 축제가 시작된 첫날, 나는 궁금해서 행사장에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평일 낮인데도 누가 보는가 싶어 밤 고양이처럼 전시된 그림들을 곁눈질하면서 살펴보았다. 그림들은 호수공원 풍경들이 많았고 대부분 수채화였다. 애들 그림처럼 펜과 색연필만으로 그린 그림은 내 것이 유일했다. 전시작품 대부분이 주부들이 그린 것이었고 남자 작품은 없는 듯했다.

전시된 내 그림을 직접 보니 기분이 묘했다. 북경의 나비 한 마리가 한 날개 짓이 뉴욕에 폭풍을 일으킨다더니 글쓰기가 일으킨 나비효과임이 분명했다. 꿈인가 싶기도 했지만 은퇴한 중년 늙은이가 갑자기 능력자가 된 것 같아 뿌듯했다.

자수를 하는 아내는 내가 그림 그리는 재주가 있음을 부러워한다. 가끔 자수 밑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하곤 하는데, 이 전시 사건으로 나를 더 미더워하는 눈치다. 가사 열등생이라 의기소침(?)했었는데 이제 눈치를 덜 봐도 될 것 같기도 하다. 글쓰기를 시작한 게 여러모로 잘한 결정임을 새삼 느낀다.
 
 ?2023 대한민국 독서대전 축제 행사의 일환으로 《일산 호수공원 작은 도서관》 앞에 전시된 작품들.
ⓒ 정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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