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차마 하지 못했던, 차지연의 이야기들 [D:인터뷰]

박정선 2023. 9. 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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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세상 밖으로 나온 느낌이 들어요. 배우 생활 17년 동안, 부끄럽지 않게 살았구나 싶더라고요. ‘그래, 너 괜찮게 살아왔다’고 비로소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씨엘엔컴퍼니

뮤지컬 배우 차지연은 2006년 뮤지컬 ‘라이온킹’으로 데뷔한지 17년 만에 첫 단독 콘서트로 팬들을 만난다. “누가 날 보러 올까라는 생각이 있었다. 두렵고 겁이 났다”던 차지연이 지금 단독 콘서트를 연 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바탕이 됐다.

“이제 자신감이 있어요. 사실 10주년 때만 해도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제가 17년간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관객 덕분이었어요. 마음 편하게 했던 작품이 단 하나도 없는데, 그때마다 힘을 낼 수 있었던 것도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 덕분이었죠. 이제 제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당차게 팬들을 만나려고요. 훌륭하진 않지만 꽤 괜찮은 배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사실 지금도 달달 거리긴 하지만요. 하하.”

차지연은 이번 콘서트의 주제를 ‘전시회’(EXHIBITION)로 지었다. 네이밍 그대로 배우로서 살아온 17년의 이야기를 ‘전시’하듯 들려주겠다는 의도다. 그만큼 무대에 올릴 곡들을 신중하게 택했고, 그 이유를 끄적이며 과거를 다시 되새겼다.

“하나의 곡을 고르고 개인적으로 이 곡을 왜 골랐는지, 이 곡을 불렀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대에서 어떤 느낌이었는지 일기처럼 써봤어요. 그것을 통해 저의 과거를 다시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사실 저는 굴곡이 많은 배우였던 것 같아요. 관객들은 늘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저의 모습을 봐왔는데, 노래와 함께 무대에서 내 진심과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과거를 곱씹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곡은 ‘위키드’의 넘버 ‘디파잉 그래비티’였다. 이번 공연에서 당시 함께 무대에 올랐던 정선아와 함께 이 넘버를 부를 예정이다. 2016년 ‘위키드’ 공연 당시 차지연은 예상치 못하게 아이가 찾아왔다. 당연히 기뻐해야 할 일이었지만, 공연을 앞둔 터라 걱정도 뒤따랐다. 주변에서 달가워하지 않는 소리가 들려 더 악착같이 버텨가며 끝까지 무대를 지켰다.

“‘위키드’는 제 인생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공연으로 기억돼요. 임신했다고 특혜를 받거나, 피해를 준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더 씩씩하게 굴었죠. 임신 7개월 정도까지 무대에 올랐는데, 배를 압박한 상태로 소리를 냈어요. 커튼 막 뒤에서 태명을 부르며 ‘엄마가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어요. 아파서 주저앉으면서도 아무에게도 티 내지 않고 무대를 마쳤어요. 그때 왜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는지…. 기회가 된다면 다시 ‘위키드’를 해서 그 한을 꼭 풀고 싶었어요.”

ⓒ씨엘엔컴퍼니

콘서트에서 부를 곡을의 면면은 그의 경력만큼이나 화려하다. ‘위키드’를 비롯해 ‘레베카’ ‘서편제’ ‘아이다’ ‘드림걸즈’ ‘마타하리’ ‘광화문 연가’ ‘잃어버린 얼굴 1895’ ‘마리 앙투아네트’ ‘노트르담 드 파리’ 등 대작 뮤지컬에서 탄탄한 실력으로 활약해왔고, 연극 ‘아마데우스’에선 힘 있는 목소리 덕분에 남성 역할인 살리에리를 완벽하게 연기하는 등 자신만의 경력을 쌓아왔던 차지연이다.

이번 콘서트에선 ‘위키드’의 ‘디파잉 그래비티’ 외에도 데뷔작 ‘라이온킹’과 지난 1월 마지막 공연을 마친 ‘서편제’ 등의 뮤지컬 넘버 8~9곡을 선보일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첫 자작곡을 공개하고 평소 좋아하는 아이유의 ‘러브 포엠’과 송창식의 ‘안개’도 자신의 스타일로 편곡해 들려준다. 그의 절친한 동료인 배우 정선아와 김호영, 개그맨 김해준이 게스트로 힘을 보탠다.

오랜 고민 끝에 여는 첫 콘서트인만큼 차지연은 팬들에게 줄 선물까지 하나 하나 손수 준비했다. “선물에만 중형차 한 대 값을 들였다”고 말했다. 그는 “저도 관객도 처음이기에 특히 공을 들였다. 콘서트를 본 팬들이 ‘차지연은 콘서트도 뭔가 다르게 한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번에는 처음이니까 관객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 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앞으로는 콘서트를 다양하게 만들어보고 싶어요. 기존의 넘버를 똑같이 커버하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소극장에서 어쿠스틱한 곡들로 꾸며 보고 싶기도 하고, 화려한 쇼처럼 꾸민 콘서트 등 다양하게 생각해보고 있어요. 이번에 콘서트를 준비하다 보니까 이런 것도 해보고 싶고, 저런 것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웃음).”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스스로의 17년을 되돌아 본 차지연은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멋있게 잘 늙고 싶고, 잘 내려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감당하기 힘들었던 당시의 일들에도 감사하는 법을 깨닫게 됐다고도 덧붙였다.

“그 나이에 감당하기 벅찬 일들을 너무 많이 겪어서,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어요.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죠.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흘렸던 눈물들, 아픔들이 다 무대 위에서 저마다의 색깔로 표현이 되고 호소가 된 것 같아서 이젠 너무 감사한 마음이에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고 하면 죽어도 싫지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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